은적산 마실길에 나서다(14)
■ 쌍풍리 월평마을 ①

학파로에서 바라본 월평리 전경 멀리 서쪽으로 은적산이 펼쳐져 있고 마을 뒤로는 죽산봉이라 불리는 조그만한 야산이 자리하고 있다.

학파다리 위에서
그 동안 필자의 개인 사정으로 ‘은적산 마실길’을 연재하지 못했다. 마음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으나 큰 틀에서 마음을 다독이며 다시 마을 순례길에 나서기로 했다.
학파동 마을을 떠나기 전 학파다리 위에 서서 끝없이 펼쳐진 서호강 갈대밭을 바라보며 수 년 전에 생명평화 탁발 순례단을 이끌고 우리 영암고을에 도착한 도법스님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당시에 도법스님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모정마을 앞 들녘과 영산강 길을 걸으며 세상의 평화와 개인의 깨달음을 기원했다.
저녁에는 모정마을 폐교에 깃든 예술인촌 '달터'에서 정리모임을 갖고 도법스님과 보다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 자리에 '야생초 편지'의 저자 황대권 선생님도 오셨다. 지금은 영광의 태청산 자락에서 농사를 지으며 공동체 마을을 조성하고 있는 중이다.

도법스님과의 대화
그 자리에서 도법 스님이 이렇게 말했다.“개인이 평화롭지 못하면 세상도 평화롭지 못하다.
개인의 생명이 위태로우면 세상의 생명도 위태롭다.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를 되찾자.
나눔과 모심의 정신이 중요하다. 한 사람을 만날 때나 한 물건을 대할 때도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정성으로 모시고 아껴야 한다.
현재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통해 자기성찰이 부단하게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바로 '평화'이다.자본과 소비의 높은 파도가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현실에서 지구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한 곳이 못된다.
자원은 고갈될 것이며 생태계는 파괴될 것이다.
인간은 지구의 모든 자원을 다 고갈시켜 후손들에게 재앙만을 남겨주게 될 것이다.
더 이상의 환경 파괴를 막고 생명과 평화를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대안은 있는가? 가능한 많은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돌아와 친환경 농사를 짓는 것이다.
그것이 한 방법일 수 있다.”그때 나는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도 젊은이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떠나는 열차에 몸을 싣고 있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문화적 욕구 때문에, 생계문제 때문에 그렇다.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해주는 사회안전망은 형편없이 부실하고, 아직도 구조적인 모순들이 구석구석에 남아있다.
청년실업이 늘고 있고, 젊은이들은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한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 사회는 급속도로 노령화될 것이고 나중에는 후손들이 없어질 것이다.
아이들이 없는 세상에 미래가 있을 수 없다.
후손들이 없다면, 이런 생명평화의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도법스님은 이렇게 답했다.“지구가 부양할 수 있는 인구는 15억 정도이다.
지금은 60억을 넘어서고 있다. 가히 인구폭발이다.
사회 시스템을 효율적인 것으로 바꾸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구조만 바뀐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70년대, 80년대 독재정권과 싸울 때는 세상의 틀을 바꾸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서 엄청난 성과를 이룩했다. 이제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들이 스스로 내재하고 있는 맑은 영성을 깨우쳐 생명의 존귀함을 깨닫고 개인과 이웃의 평화를 추구할 때이다.
언제까지 남 탓만 하고 있을 것인가? 변화는 나 자신으로부터 와야 한다.
상대 비교에 의한 박탈감을 극복해야 한다. 농촌이 도시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
각 지역마다 지역문화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마을 곳곳에 그 지역의 특성을 살린 지역대학을 만들 필요가 있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만들어가는 대학이어야 한다.
실업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도시 중심적 사고방식, 기계문명 중심적 가치관을 버리지 않는 한 실업은 해결될 수 없다.
실업은 사회 문제임과 동시에 개인의 양심과 가치관의 문제이다.
지나친 도시 중심적 사고방식 때문에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다.
도시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지만 오히려 지금 농촌은 일할 젊은이들이 없어서 피폐해져가고 있지 않은가?”

깊은 밤 이팝나무 아래에서
밤이 깊어져서 토론 도중에 집으로 왔다.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무수한 별들만 또릿또릿 빛나는 한밤중에 이팝나무 아래 바위 위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도법 스님 말씀이 몇 번 생각해도 옳으신 말씀이다.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이 좀 다르지만. 지난 세월 우리 국민은 엄청난 일을 해냈다.
눈부신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루어냈다.
선거를 통하여 정권교체를 이루어냈고, 언론의 자유를 성취해냈으며 또한 IT 강국을 만들었다. 사회제도 또한 많이 개혁되었다.
이것은 세계대전 이후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대단한 일이다.
제 3세계 국가들의 모범이 되고 있으며 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러나 사회제도가 바뀌고 언론이 자유화 되었는데도 개인과 직장에서의 부정부패는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자연 생태계와 환경은 점점 더 파괴되고 있다.
대도시 인구 집중으로 농촌은 황폐화되고 있으며 국토의 불균형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남북간의 불화와 군비경쟁으로 적대적 긴장감은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전쟁에 대한 불안감은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경제가 발전하고 속도가 빨라졌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웬지 그 만큼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
지나친 경쟁과 인간소외는 정서적 불안으로 이어져 우울증과 온갖 범죄를 초래하고 있다.
아무리 사회제도가 개혁된다고 해도 그것을 운용하는 주체는 개인이다.
개인이 청렴하지 못하다면 그 시스템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까?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개인이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21세기에 살고 있으면서도 구시대의 부조리한 관행을 떨치지 못하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들이 많다.
다시 생각해봐도 도법 스님의 말씀이 옳다.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바꾸고 개혁하는 일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 못지않게 개인의 참된 영성을 개발하고 자기로부터의 개혁을 지향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세상이 살만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마당 이팝나무 아래 앉아서 다시 나 자신을 되돌아 보았다.
저들은 저렇게 세상을 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나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가? 어느 이웃들과 마찬가지인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고, 산에 가서 찻잎을 따다가 차를 만들고, 아이들을 키우고 또 가르치고, 아픈 어머니를 봉양하고, 고향 마을을 지키며 가꾸고 있다.
가끔 하찮은 일만 하고 산다고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던 때가 있었는데, 도법 스님 말씀을 들어보니 이런 작은 일들도 더 없이 소중한 일임에 틀림없다.
내가 아니면 이런 일을 누가 대신 해줄 수 있을까. 문득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가 함께 있는 사람들, 즉 가족에게 미소 짓는 것이 친밀하지 않은 사람에게 미소 짓는 것보다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절대 잊지 마세요. 사랑은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고 했다. 도법 스님의 말씀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미 우리 몸속에 충만한 생명과 평화의 기운을 간직하고 있고 그 기운을 생각과 행동과 말을 통해 세상에 펼쳐나가야 한다.'
그 말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할 힘과 용기를 얻는다.

반월(半月)형의 월평(月坪) 마을
학파동에서 학파로를 따라 북쪽으로 1km정도 가다보면 야트막한 야산 기슭에 자리한 작은 마을이 나온다.
옛날에는 마을 뒷면은 산이고 앞면은 바다여서 풍수적으로 반월(半月)형 형국이었다.
1892년 무과에 급제한 정유공 16세손 한봉규가 마을 앞 바다가 불원간에 평야가 될 것이라 예측하고 마을 이름을 월평(月坪)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마을 한 가운데에는 죽산제(竹山齊)라고 하는 이천 서씨 문각이 있는데 그 등성이를 죽산등이라고 부른다.
죽산제는 건축된 지 너무 오래되어 최근에 다시 헐고 새로 지었다.
옛날에는 마을 학동들을 가르치는 서당 용도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죽산제 바로 옆에는 최근에 귀촌한 한 농가가 있어서 건물을 관리하고 있다.
원래 전주 이씨 자손들이 많이 살았는데 지금은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인구가 줄어 10여 가구만 남았다.
마을 주변에 규모가 제법 큰 축사들이 들어서 있어서 마을 전체적인 분위기가 조금 산만해 보인다.
하지만 죽산제 앞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가히 선경이라 할 정도로 풍광이 아름답다.
서쪽으로 은적산, 동쪽으로 너른 들녘과 월출산이 자리하고 있어서 품이 넉넉하고 안온하다. 남쪽으로는 커다란 종을 엎어놓은 것처럼 여러 개의 야산이 산재해 있어서 풍경이 지루하지 않다.
월평마을을 지난 학파로는 다시 송산마을로 이어진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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