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석 홍

내무부 지방개발국장 때의 일이다.
1981년 3월 제11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던 날 저녁, 선거업무를 관장하는 내무부에 남덕우 국무총리께서 방문하였다.
경제학자이며 경제기획원 부총리로서 경제개발을 이끌었던 남 총리께서는 서정화 내무부장관과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는 방안을 논의하여, 도에서 관리하는 지방도 포장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사업비 규모는 2천억원으로 정하고 지방채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이 사업의 대상 노선을 선정해, 추진계획서를 수립하여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총리께 제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다음날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하기 때문이었다. 시간적으로 너무나 촉박했다.
급할 때는 늘 하던 방식이지만 추진계획서는 내가 직접 작성하고, 직원들에게 한 도씩 맡겨 대상 노선을 받도록 했다.
서울특별시와 광역시, 제주도를 제외한 8개 도에 사업비를 배정하고, 1km당 공사비는 1억원으로 산정하여 도당 10개 내외의 노선을 선정, 우선순위를 정해서 전화 보고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2천km 지방도 포장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영암읍에서 독천까지의 지방도는 국도처럼 중요한 도로이면서도 지방도이기 때문에 포장이 안 되어 있었으나, 이때 전남 우선순위 1번으로 책정되었다.
이 도로 포장사업을 추진할 당시 영암군수는 함평출신인 정병섭 군수이었다. 박경원 내무부장관의 비서관 출신인 정 군수는 맡은 일에 열성적인 공무원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는 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포장계획에 포함되지 않았던 버스터미널을 기점으로 한 우회도로부터 포장을 하였기 때문에 사업비 부족현상이 생겼다.
우선 저질러놓고 나에게 부족한 사업비를 더 달라는 것이었다.
나를 믿고 그리했을 것이다. 군수로서는 잘 한 일이다. 내가 군수라도 그리했을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다른 곳에서 사업비를 마련하여 추가해주어 포장이 제대로 이루어졌다.
도로포장이 되자 영암군에서는 영암읍에서 독천까지의 16km 도로변에 벚나무 가로수를 심었다.
참으로 잘 선택한 수종이다. 가로수 선정은 매우 중요하다. 가로수 수종에 따라서 그 지역의 경관이 달라지고 관광자원이 되기도 한다.
초등학교 때 구림 벚나무길은 유명했다.
봄이면 구림의 화사한 벚꽃길을 걸어서 도갑사 소풍나들이를 하곤 했다. 그때의 구림 벚나무길 추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오랜 풍상을 이겨온 그 벚나무 몇 그루가 새로 심은 벚나무 사이에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서 있다.
정병섭 군수 때 벚나무 가로수를 선택한 것도 역시 구림 벚나무 가로수와 영암 초·중·고등학교 주변의 벚나무를 염두에 둔 실무자(당시 실무자 이부봉)의 건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 한다. 이와 같은 하나하나의 과정을 거쳐서 지역은 발전해가는 것이다.
벚꽃은 지역의 기온 차에 따라 개화기가 다르나, 같은 지역의 벚꽃은 한꺼번에 활짝 피어 사람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준다.
피어있는 기간이 너무 짧다는 점이 아쉬움이다.
따라서 때를 놓치지 않으려 개화기에 상춘객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왕인박사 비가 서 있는 일본 우에노공원 벚꽃은 유명하다.
개화기가 되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며칠 전부터 자리를 잡아 둔다고 한다. 우리나라 벚꽃은 진해와 여의도 국회 주변 등 이름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우리 영암의 벚나무 가로수도 당당히 성장하여 현란한 벚꽃길이 형성되고 개화기에 상춘객이 밀물처럼 몰려들고 있다.
1987년 왕인박사유적지가 정비되어 왕인사당이 들어섰으며 봄에 춘향대제가 열리고 있다.
이 시기를 맞아 구림청년회에서는 1992년부터 벚꽃축제를 개최했으며, 1997년부터 군에서 주관하는 왕인문화축제로 발전하여 벚꽃 피는 시기를 택해 축제기간을 정하고 있다.
벚꽃과 왕인축제는 뗄 수 없는 관계가 형성되었으며 이름 높은 축제로 발돋음 했다.
벚나무 가로수는 우리 고장의 관광자원이다.
역사가 쌓여가는 이 가로수를 잘 관리하는 일은 심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벚나무 가로수 가운데 고사목이 있으면 교체해주고, 빈자리가 있으면 벚나무 묘목을 심어 보완해 주어야 한다.
벚나무 사이에 다른 나무(예, 소나무-소나무는 가로수로 적합한 수종이 아니다)를 심는 일은 삼가야 한다. 벚나무 가로수 길의 명성을 퇴색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노선의 가로수는 같은 수종으로 식재하는 것이 원칙이다.

서호면 장천리
전 전남도지사
전 국가보훈처장관
왕인박사현창협회 회장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