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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의 역사가 잘 어우러진 서호강 갈대숲과 학파동 들녘은적산 마실길에 나서다(13) … 쌍풍리 학파동 ③

학파다리 걍조개 국물맛은 옛 추억 속으로
엄길마을에서 서호동과 학파동을 거쳐 무송동에 이르는 길을 학파로라고 부른다.

학파로는 철암산 동쪽 기슭에 접한 마을을 품어 안으며 너른 들녘을 따라 서호강이 끝나는 지점까지 거침없이 펼쳐진 길이다. 

영풍리와 신풍리가 서호로를 따라 은적산과 철암산 사이에 위치한 산골마을이라면 학파동은 탁 트인 전망을 갖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학파동 마을에는 현재 4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현준호가 간척사업을 한 이후 형성된 마을로 여러 성씨들이 어울려 화목하게 잘 살고 있다.

이 마을에는 특히 필자의 고등학교 친구가 졸업 후부터 고향마을에 정착하여 살고 있어서 더욱 정이 간다.

아름다운 서호강
서호강의 시작은 월출산이다. 월출산 홍계골에서 발원한 시냇물이 구림천을 따라 굽이치며  흐르다 상대포를 지나 대섬에 이르러 제법 큰 하천을 형성한다.

은적산에서 발원한 시냇물도 장동마을과 엄길마을을 지나 서호강에서 합류한다.

지금은 하천에 불과하지만 성재리와 양장리 사이에 제방이 완성되기 전에는 구림마을 상대포, 용산리 아천포에서 출항하는 어선들과 상선들의 뱃길이었고 가까이는 목포와 영산포까지, 멀리는 일본과 중국에까지 연결되는 무역항로였다.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항주와 소호의 아름다움에 빗대어 이곳을 서호라 부르면서 시인묵객들이 꼭 한 번 들러보고 싶은 소풍장소로 손꼽히는 명소로 떠올랐다.

수 천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물길을 따라 왕래했을지 모를 일이다. 만일 일제 강점기 때 현준호가 이곳을 간척지로 조성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다면 어찌되었을까? 그러나 부질없는 생각이다.

어차피 1980년대에 목포 하구 둑을 쌓음으로써 간척지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자연을 그대로 두지 않는 법을 습득했다.

그 시절에는 쌀이 최고의 가치였고 쌀 생산을 위해서는 너른 들녘이 필요했다.

현준호 이전에도 고산 윤선도, 월당 임구령 등 당대의 지식인들은 농토를 확보하기 위하여 병목구간에 제방을 쌓아 갯벌을 매립하는 간척공사를 진행했다.

서호강과 갈대
얼마 전부터 갈대가 인기다. 순천만 갈대숲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어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연중 이어지고 있다.

요사이에는 이웃 지역인 강진에서 강진만 남포마을 일대에 갈대숲 공원을 조성하여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유혹하고 있다.

타 지자체들이 훼손되지 않고 남아 있는 자연을 잘 보전하여 생태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부럽기 짝이 없다.

우리 영암도 목포 하구언만 없었더라면 순천만이 감히 넘볼 수 없는 환상적인 자연풍광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의 영암만은 강진만이나 순천만보다 훨씬 더 깊숙이 내륙을 파고들어 왔다. 시종, 도포, 해창, 덕진, 성재리 무송동, 동호, 성지촌까지 밀물이 들어왔으니 월출산은 사실 바닷가 산이었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은 찰지고 비옥한 갯벌로 말미암아 최고의 맛과 품질을 자랑했다.

영암 어란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영산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크고 작은 하천을 따라 하염없이 펼쳐진 갈대밭과 그곳에 서식하던 수많은 철새들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었고 시인묵객들과 예술가들의 발길을 유혹하는 관광명소였다.


하지만 예전의 규모에는 턱도 없이 못 미치지만 우리 영암에도 갈대밭이 없는 게 아니다. 옛 학파들녘 중앙을 관통하여 흐르는 서호강을 따라 광활한 갈대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 중간 지점이 학파동 마을이고 서호강 갈대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지점이 학파동 다리 위다. 학파다리 위에 서면 강변 양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 뿐만 아니라 사방으로 펼쳐진 너른 들녘, 모정마을 너머 동편 월출산과 학파동 서쪽으로 안온하게 자리잡은 은적산, 그리고 들녘 가까이에 산재해 있는 여러 마을들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영산강 하구둑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이 학파다리는 걍조개(재첩)를 잡는 사람들로 몹시 붐볐다.

이 서호강 학파다리 아래에서 잡은 걍조개는 여름철 별미였다. 섬진강 재첩이 요즘 유명하다지만 그 당시 서호강 걍조개 맛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걍조개를 잡을 때는 주로 달이 없는 날을 택했다. 달이 밝으면 잠을 못자기 때문에 알이 실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걍조개 국물에 보리밥을 말아 먹으면 반찬이 따로 필요 없었다. 영산강도, 서호강도 오염되어버린 지금, 이제 어디 가서 학파다리 걍조개 국물 맛을 봐야 할까?

서호강 갈대밭 탐방로 만들자
요즘은 청보리밭, 너른 들녘, 갈대밭, 억새밭, 유채꽃밭 등 이전에는 별것 아닌 것으로 등한시 했던 것들이 관광자원으로 각광받는 시대다.

고창 청보리 축제, 김제평야의 지평선 축제 등이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사실 보리와 벼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이었는가? 흔하디 흔한 농작물일 뿐이었다.

갈대밭과 억새밭도 마찬가지였다. 널린 게 갈대고 억새였다. 그런데 발상의 전환이 ‘그저 그렇고 그런 것들’을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가져 오는 ‘관광상품’으로 둔갑시켰다.

이곳 서호강 갈대숲과 학파동 들녘도 잘만 활용하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곳은 엄길 마을과도 가깝고 모정 한옥마을과도 가깝다. 구림마을 상대포도 그리 멀지 않는 곳이다. 왕인박사가 배를 타고 지나갔다고 전하는 곳, 장보고와 도선국사가 배를 타고 다녔던 곳, 은적산 의병들의 임진년 함성소리가 아직 귀에 들리는 곳, 현준호 일가의 일대기가 묻혀있는 곳이기도 하다.

자연과 인간의 역사가 이렇게 잘 어우러진 곳이 또 있을까?


나락이 차지게 익어가는 가을에 황금들녘과 너울너울 수작을 건네는 풍성한 갈대꽃의 율동도 멋지지만 하얗게 쭉정이만 남아 초록색 새싹과 대비를 이루는 봄 풍경도 그에 못지않다.

이 서호강 갈대밭을 배경으로 탐방로를 조성하고 양쪽 강둑을 이용하여 하이킹 도로를 만든다면 관광명소가 될 듯싶다.


농민들과 합의만 된다면 벼도 조생종이 아닌 만생종을 심어 늦가을까지 황금들녘을 감상할 수 있게 하고 서호강 갈대, 월출산ㆍ은적산 단풍과 결합시켜 영암만의 가을풍경을 연출할 수 있다면 훌륭한 관광상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학파다리 위에서
모정리와 학파동마을의 경계를 이어주는 학파다리 위에 잠시 서서 들바람에 서걱거리는 갈대숲을 바라보았다.

이름 모를 새들이 바짝 마른 갈대숲 속에서 각기 제 생김새에 걸맞는 울음소리를 내며 바쁘게 날아다닌다. 갈대는 쉼 없이 흔들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리지만 새들은 그 틈 속에서도 갈대와 갈대의 몸통을 잇대어 자손을 번식시킬 둥지를 튼다.

이제 곧 저 메마른 갈대 뿌리에서 새순이 나오고 시누대처럼 새파란 몸통 마디 마디마다 새잎을 내밀 것이다.

그 이파리들은 무덥고 습한 대지의 기운과 작렬하는 태양빛을 받아 사람도 독수리도 감히 내다볼 수 없는 컴컴하고 은밀한 공간을 만들어 낼 것이다. 바야흐로 물고기와 풀벌레와 새들의 낙원이 건설될 것이리라.


하지만 사람들은 갈대 잎 무성한 여름에 오지 않는다. 꼭 빛바랜 가을에 찾아온다. 갈대숲에 와서 한적함과 고요함과 쓸쓸함과 외로움을 느낀다.

때로 사람들은 겉으로 웃고 속으로 울기 위해 갈대숲을 찾는다. 강물은 영원히 흐르고 세월도 영원히 흐른다.

갈대들은 영원 속에서 피고 지고 나고 죽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갈대숲에 와서 속으로 흐느껴 울다가 갈뿐 다시 돌아올 줄 모른다. 신경림 시인은 그 심정을 이렇게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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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오  wangin6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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