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오/영암읍 장암리/전 청주대 한문교육과 교수/전 동덕여대 인문대학장/동덕여대 명예교수

 

한 인간의 세속적 성공여부는 여러 변수가 있겠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개체의 강인한 의지에 좌우되지 않을까 싶다작심삼일이란 말이 있다이 성어의 본뜻은 인간들 마음의 팥죽 끓듯한 변화와 의지의 박약함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오영수(吳永洙단편소설 속에 한달새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이 새는 동남아 적도근처 숲속에 사는 새인데 평생토록 둥우리를 틀지 않는다 하여 밤이 되면 한기가 몰려온다어한할 둥우리가 없으니 밤새껏 오돌오돌 떨며 밤을 지샌다오돌오돌 떨면서 강고한 맹세를 한다. “내일이면 둥우리를 틀어야지 둥우리를 꼭 틀어야지” 그러나 다음날 아침이 되고 뜨거운 햇볕이 밤새 얼었던 자신의 몸에 내리쬐면 어젯밤의 강고한 맹세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다시 밤은 오고 추위가 몰려온다그러면 한달새는 지난 밤에 했던 맹세를 반복한다. “내일이면 둥우리를 틀어야지 꼭 틀어야지”.

조선조 중종 때 학자였던 양연(梁渕)의 강인한 의지와 성공담이 대동기문(大東奇聞)에 실려 전한다양연은 청소년 시절에 세속에 얽매이기를 싫어해서 호방하고 방일하게 젊음을 보냈다그는 나이 40세에 이르러서야 마음을 가다듬고 의지를 굳게 하며 학문하기를 결심하고 왼쪽 주먹을 꽉 쥐면서 맹세하기를 내 문장을 이루지 못하면 결코 이 주먹을 펴지 않으리라 맹세하고 북한산 중흥사(中興寺)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한지 1년여 만에 문리가 통하고 시의 품격이 높아져 맑고 고운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지필묵을 마련할 돈이 없자 장인께 편지를 올려 문방사우를 보내줄 것을 청하기도 했다이렇게 굳게 작심하며 공부하기를 수년간을 지속한 결과 양연은 훗날 과거에 합격하게 되었다그제야 비로소 꽉 쥐었던 왼쪽 주먹을 펴니 그동안 길게 자랐던 손톱이 손바닥을 뚫는 조갑천장(爪甲穿掌)의 상태였다.

197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1억불 수출탑을 달성해 대통령 표창을 받은 기업인으로 동명합판 사장 고 강석진씨가 있다강사장은 빈한한 집에서 태어나 일인이 운영하는 가게 점원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그는 타고난 성품대로 정성껏 근무했다세계 제2차 대전에 일본이 패배하자가게주인도 일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일인은 그 동안 성실하게 근무하면서 자신의 부의 축적을 도왔던 고 강석진 사장께 가게를 비롯해 모든 것을 넘겨주고 얼마큼의 퇴직금도 쥐어준 뒤 떠났다고 강석진 사장은 이 돈을 은행에 정기예금한 뒤 행여 그 돈을 찾아 쓸까봐 은행문을 나서자 마자 거래통장 도장을 깨부셔 버렸다이것만이 아니였다어려운 신혼살림을 근근히 꾸리고 있을 때 어쩌다 친척이나 친구가 찾아와 한끼 식사라도 하고 떠나는 날엔 이들 부부는 자신들의 몫으로 마련해 두었던 식량의 손실을 보충키 위해 손님이 축내고 떠난 양만큼 굶음으로 이를 보충하곤 했다젊은 부부의 뱃속에서는 밤새껏 쪼르륵 꼬르륵 하는 허기의 소리가 신혼부부를 괴롭혔지만 이들의 부를 이루고 말겠다는 강고한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그가 먼 훗날 이 나라 최초의 1억불 수출탑 수상은 그때 깨부셔버린 도장과 굶음으로 보충한 식량의 절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회고담으로 털어놓곤 했다어찌보면 인색의 궁극으로 보이는 고 강석진 사장의 강고한 의지는 어벙하게 사는 현대인에게 몰이해의 경지일 수도 있으리라?

세속의 구성원은 다양하다한달새 유형도 있고 학자 양연과 고 강석진 사장의 유형도 있다

오늘도 나약한 인간들은 둥우리 틀기를 맹세한다그러나 단지 맹세로 그칠 뿐해서 생겨간 속언이 똥누러 갈 때 마음 다르고 똥누고 나서 마음 다르다고 했으리라우리 스스로를 자조하는 이 속어.

나는 오늘도 크고 작은 마음속 다짐을 한다그러나 그 다짐들은 한숨의 미풍이 되어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곤 한다내 마음속 저 깊이 그리고 단단하게 잠재되어 있는 한달새의 못난 속성이여!

세속의 성공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만 한달새의 생리의 틀에서 벗어 난 자의 몫일 것이리라그래서 우리는 학자 양연을 추앙하고 고 강석진 사장을 존경하는 것이다.

그간 내 모자란 글을 읽어 주신 영암신문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내 고향 영암이여 영원하소서영암신문이여 찬연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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