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정 용/도포면 출생/전 농협대학 겸임교수/전 농협중앙회 해외협력실장/목포 문태고 교사

 

세계사적으로 비폭력 무저항 운동은 한 시대를 규정짓는 사회변혁의 굵은 획을 그었다. 17세기 말 영국의 명예혁명은 의회민주주의를 태동시켜 이후 대영제국 200년 전성기의 기틀을 마련하였고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주의는 식민지 인도에 독립을 가져다주었다. 1960년대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 무저항 운동은 흑인들의 인권이 법률에만 있던 선언적인 권리에서 실제로 흑인들의 참정권과 인종차별을 현저히 개선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나라에도 비폭력 무저항 운동정신을 계승한 자랑스러운 전통이 있다일제치하 3.1운동은 중국을 포함한 다른 식민지 국가들에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비록 임시정부 형태였지만 상해에서 태동하는 결과를 가져왔다헌법 전문에도 나와 있듯이 이후 3.1운동 정신은 이승만 독재에 항거한 4.19혁명박정희 군사독재를 종식시키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 부마항쟁전두환의 신군부 세력에 항거한 광주민주화운동그리고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선출하는 헌법을 재탄생시킨 6월 항쟁으로 면면히 우리 사회의 시민운동의 정신적인 근간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특히 요즘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비선실세인 최순실그리고 하수인들의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데 있어서는 세계사에 유래를 찾기 힘든 비폭력 평화시위의 장대한 드라마를 연출해내고 있다벌써 여러 차례 주말마다 10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한 자리에 모였음에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질서를 유지하면서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또 이러한 요구를 예술적으로 승화하여 한바탕 축제로 만들어오고 있다더군다나 집회가 끝나고 나서 현장을 말끔하게 청소하는 시민들을 보면서 가슴 뭉클한 감동과 더불어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국민 서로에게 각인시키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이번에 일어나고 있는 비폭력 평화 촛불집회는 이전의 집회들과 양적인 면에서 그리고 질적인 면에서 현저하게 진일보한 면이 돋보인다참여하는 층이 다양해졌고 참여형태도 다양해졌다나이어린 학생들부터 할아버지·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온 국민이 동참하고 있다민주주의 현장을 학습시키기 위한 가족단위의 참여가 늘었다가족의 손을 잡고 자기의 주장을 평화적이고 생산적으로 예술과 축제적인 분위기로 승화시켜 표현하는 수준이 너무나 놀랍고 아름답다화가들은 그림을 그리고뮤지컬 배우들은 뮤지컬 무대를 만들고가수들은 노래를 부르며 장엄한 촛불집회의 수준을 높이고 시민들의 박근혜정권에 대한 분노를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표현해내는데 앞장서고 있는 장면을 지금까지 이 세상 어느 곳에서 볼 수 있었단 말인가?

이런 놀라운 장면의 발단은 이미 지난 뜨거웠던 여름을 더 뜨겁게 달구었던 이화여대 학내 시위에서 시작되었다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맛본 신세대 젊은 대학생들은 이전에 없었던 캠퍼스 시위문화를 만들어냈다. SNS를 이용한 소통방식을 통해 학교 당국의 일방적이고 비상식적인 학교운영 방식에 제동을 걸면서 주동자도 없고 시위 주체도 학생들 모두인그러면서 평화적이고 이성적으로 자기들의 의견을 주장한 것이다최루탄과 화염병그리고 짱돌이 난무하던 지난날의 캠퍼스 시위 문화와는 완전히 차별화된 시위문화를 보여준 것이 너무나도 놀랍고도 새로운 모습이었다시위 주동자를 찾아 처벌하여 시위를 무력화시키려고 했던 구태의연한 경찰은 새로운 시위 문화를 만들어낸 학생들의 전략에 전혀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엄청난 수의 경찰병력을 학내에 진입시켜 강경진압하려던 시도도 무력화되었다그리고 결국 학생들은 불합리한 학교의 결정을 포기하게 만들고 또 그런 결정을 독단적으로 강행한 자신들의 스승인 총장을 자리에서 끌어 내렸다유연함이 강함을 제압한다는 말을 실제로 보여준 것이다

경찰은 시위진압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게다가 1년 전 민중총궐기 시위에서 고 백남기 농민이 경찰이 직사로 발사한 물대포에 맞아 1년 여간 사경을 헤매다가 숨진 일은 너무나 가슴 아프게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다그래서인지 이번 촛불집회에 대응하는 경찰들의 대처방식이 처음부터 폭력을 사용하여 진압하지 않는 방식을 취했고 여기에 시민들도 호응하여 대통령에 대해 분노를 표시하는데 폭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다행이었고 이런 놀라운 드라마가 매주 토요일마다 광화문 광장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스스로 이룩한 평화적인 시민저항 정신은 어제까지의 절망을 넘어 내일의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촛불의 축제에 참여한 시민들이나 집에서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이를 바라보고 공감하는 시민들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우리의 미래가 밝다는 희망의 촛불을 마음속에 밝히기 시작했다이번 평화적인 시민운동이 아직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지만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온몸이 짜릿한 행복한 희망을 가져다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런 평화적인 집회에서 표출된 시민들의 분노를 넘어선 희망을 구체화시켜 주는 일은 정치 지도자들의 몫이다모두가 참여하는 정치과정을 통해 이런 시민들의 희망이 구체화되고 실천이 되어야 할 것이다여야를 막론하고 정치 지도자들은 지금처럼 시민들의 여망과 분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이다일부 정치 지도자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미성숙한 말이나 결정들을 뒤로하고 사리사욕을 떠나 단 한 번만이라도 국가를 생각하고 국민을 위하는 마음가짐으로 지금의 시국에 임해주었으면 하고 간곡히 부탁한다국민들이 깔아준 이 훌륭한 멍석을 두 번 다시 걷어 차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한다영국의 명예혁명이 유럽의 후진국이었던 영국을 세계 최강자로 군림하게 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면, 3.1운동 정신을 이어받은 지금의 촛불평화 집회가 우리나라가 한 걸음 더 도약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되도록 우리 모두가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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