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뤼순 곳곳에 안중근 의사 마지막 발자취
안중근의사, 중국에서더욱존경받아깊은감명
독립운동가항일운동사료한국보다잘보관돼

뤼순감옥박물관내 마련된 한국독립운동가들의 사적을담은 기념관의 안중근의사 흉상

 

 

 

 

 

 

 

 

 

 

 

<사진설명>중국랴오닝성대련시뤼순감옥앞에서필자와동행한친구안보순회장.

 

 

 2천명수용규모의뤼순감옥

지난 815일광복절기념식행사가있었다. 박근혜대통령은이날경축사에서안중근의사께서차디찬하얼빈감옥에서유언을남기셨다.”고말했다. 곧이어청와대대변인은기념식후에박대통령경축사의안중근의사서거는하얼빈감옥이아닌랴오닝성뤼순감옥으로정정사과를했던일이생각난다.

필자는지난 810일무더운여름에중국여행을했다. 안중근의사가서거한중국랴오닝성대련시뤼순(旅順)커우구뤼순감옥과주변관광지를둘러보았다. 외국인들에게여권을제시하게하면서안내된뤼순감옥의정문을통과했다. 뤼순감옥은본관은 2층건물로되어있다. 본관은흰색과회색기와지붕으로되어있다. 본관건물뒤편으로큰대()자형태의감옥이붉은벽돌로지어져있었다. 뤼순감옥은 1902 년러시아가중국동북 3성의중국인을제압하기위해서건축했다. .일전쟁후일본이점령해이감옥을증설하면서일본의위상을높이기위해큰대자형태로개축했다. 이감옥은1906년부터 30 년간 11개나라항일운동가와한국, 중국, 러시아인등 2 만명을수감했다. 이감옥면적은 226,000 평방미터에 2,000 명을동시에수감하는엄청난규모다. 중국정부는뤼순감옥을뤼순일아(日俄) 감옥구지(舊址) 박물관으로명명하고주요국가문화재로지정했다. 이감옥은 20098월안중근의사하얼빈의거 100주년을맞아외국인에게개방했다. 뤼순감옥수감자는 1940년까지 445,517 명이나되었다. 감방마다중국어, 한국어, 일본어등 3개국어로감옥의규칙이벽에붙어있었다. 감방안의공기는탁했고, .난방시설이전혀없다.

 

목메는밧줄과발판그대로

안중근의사는 19091026일만주하얼빈역의플렛폼에서러시아군의군례를받고있는일본총리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를사살했다. 안의사는경찰에검거되어뤼순감옥에수감되었다. 1910 214일일본국사범으로사형선고를받고수감 144일만에서거했다. 당시안중근의사의나이는 32세였다. 안의사는고국에뼈를묻어달라고유언했지만아직도실행되지않고있다. 당시일본은안의사의시신이한국에가면더거센항일운동이일어날것에대비했다. 그래서안의사의시신은다른수감자의시신과함께암매장해버려현재까지시신을찾을수없다고한다.

안중근의사의감방은국사범으로감옥을총괄감독하는간수부장당직실옆에있었다. 안의사를 24시간지켜보며특별감시를하기위해서다. 감방안에는낡은침대와변기, 생활도구등이있었다. 작은창문에서들어온빛이겨우안을보이게했다. 96년전안의사의고통스러운수감생활을상상할수있었다. 특히이감옥에서안의사의교수형을집행했던사형장은끔찍했다. 사형장 2층에는목메는밧줄과발판이있었다. 2층발판이열리면 1층아래판자조각으로만든항아리속으로시신이떨어지게되어있었다. 이사형장에서 1942년부터 3 년간숨진항일투사는 700명이넘는다. 일본은 1945 815일항복한다음날에도 5명의항일애국지사를사형시키는만행을저질렀다고한다. 사형장에서숨진수많은시신들을판자조각으로만든나무항아리에넣어이감옥주변땅에매장했던현장을보고모두가충격을받았다.

 

 

고문실당시의잔혹상보여줘

이무덤속에안중근의사의유해도어딘가있을것이라는생각으로마음이더욱아팠다. 이감옥의고문실도당시의실상을그대로보여주었다. 쇠막대기, 양발목을묶는쇠사슬과쇠뭉치, 수감자의고문틀, 고문에쓰이는호랑이의자, 고문을하는태형(笞刑) 등이당시의혹독한잔인성을그대로보여주었다. 이밖에수감규칙을어긴수감자들이벌을받는암방은암흑속이었고간수가감시하는작은구멍밖에보이지않아얼마나무서웠던형이었는지짐작이갔다. 이밖에형식상으로갖추어진의무계와교회실도있었다. 의무계는진찰실과약방, 병실등이있었으나, 치료가어려운중환자는빨리죽게하는최명침(催命針)”을놓아죽게했다고기록되어있었다. 교회실에도형식상수감자들을교화시킨다며승려 2명을두었으나이들은수감자의교화보다는사상과행동을보고하는대외선전용일뿐이었다고한다. 이밖에감옥안에는당시수감자들이입었던감색수의(囚衣)가누렇게변색되어 50 여벌전시되어있었다. 당시수감자들의고통과애환, 피땀의흔적들을이수의를통해느낄수있어마음이아팠다. 이감옥의공장은벽돌공장, 방적, 목공, 철공등 15 개분야가있었다. 수감자들은하루 10시간강제노동을시켜많은돈을벌어일본정부에송금했다고한다. 특히이감옥안에는당시수감자들의사진과함께감옥의만행에대한폭로내용이담긴증언들이써있는현판이여기저기걸려있었다. 한중국인수감자는강제노동을하면서부패한쌀겨와모래가섞인수수쌀밥을강제로먹이도록해건강에이상이생겼다고폭로해충격을주었다. 또한국인수감자는간수가자신을호랑이의자에묶어놓고고무관을입에넣어물을부어배가불러오면나무판으로배를눌러핏물이입, , 항문으로나왔다고한다. 벽돌을발에묶고손톱밑을찌르기도했다고증언했다. 또다른수감자들은증언을통해호랑이의자에묶어놓고대나무로죽도록때려, 온몸이피딱지투성이가되어견딜수없을정도로고문을당했다고폭로했다. 이밖에도감방안이너무좁아등을서로맞대고앉았고말을하면밥을주는구멍에손을내밀어끈으로묶고때렸고부역현장에서맨발로눈길을뛰어다니며일하다발톱에동상이걸려지금도상처가남아있다고폭로했다.

 

 

중국의한국독립운동전시관

중국정부는 2009년일본에대응하는한국정부와공조및상호신뢰를위해이감옥안에 600평방미터규모의국제항일열사전시관을마련했다. 이전시장에는안중근의사의흉상을세우고안의사항일운동사료들을정리해사실상한국독립운동가전시관이되어있어흐뭇했다. 이곳에는신채호, 이회영선생을비롯해유상근, 최흥식선생등독립운동가흉상과사료들이잘정리되어있었다. 특히안중근의사관에는안의사의약력과가족사진, 유서, 부모와아내에게보내는편지, 수많은서예작품들이진열되어마치서예전시회처럼돋보였다. 이가운데는옥중에서쓴안중근의사의서예작품한점이경매에서우리돈7억원에낙찰되어안의사의서예실력을세계에과시했다는기록도있었다. 한국보다중국에서독립운동가로더높이평가받고있는안중근의사등한국독립운동가의항일운동사료들이한국보다더잘보관되어있어대한민국을더욱빛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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