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인 ·금정면 출생 ·전 재광 금정면향우회장

울긋불긋 곱게 물든 오색단풍을 구경가는 차량행렬이 전국의 고속도로마다 북새통을 이루고, 맛있는 음식을 찾는 미식가들이 가족동반 문전성시를 이루는 활기찬 모습과 달리 10월 중순이면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수확의 기쁨을 맛볼 시기인데도 누렇게 익은 나락이 썰렁한 논바닥에서 썩어가는 광경을 보면 가슴이 아려온다. 고된 농사일에 무릎관절이 닳아 절뚝거리고, 척추가 닳고 휘어져 편히 눕지 못하고 고통을 참느라 뜬눈으로 밤을 새운 농민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어린자식을 키우는 심정으로 애지중지 가꾼 농산물이 판로를 잃고 애물단지가 되어 수확을 포기해 버린 삭막한 풍경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참담한 기분에 젖어들게 한다.

부양할 가족도, 목을 매고 달라붙는 일가친척도 없어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열정을 바쳐 헌신하겠다고 만천하에 공약한 대통령이 하는 짓거리나 정신 상태를 보면 실망의 도를 넘어 따귀라도 때려주고 싶은 건 나만의 생각일까. 측근 비리나 대기업 총수들의 비자금을 뿌리뽑아 색출하면, 해외에 투자했다 날려버린 국민의 혈세를 제대로 사용했다면 농민들의 숨통을 열어줄 수 있는 충분한 예산이다.

기름이 좔좔 흐르는 백미 20kg 한 포대를 3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모든 농자재며 인건비는 매년 폭등했는데도 쌀값은 10년 전으로 돌아갔고 판로마저 꽁꽁 막혀있다. 식자재 마트에선 쌀이 미끼상품으로 추락했다. 농민들의 한숨 소리는 애간장을 끓게 하는 절규다. 생명의 창고요 마지막 보루 농촌이 무너지면 모든 농산물을 외국에서 수입해온단 말인가. 돈이 아까워 기름진 고깃국 한 그릇 사먹지 못한 농민들이 상상할 수 없는 국가예산을 빼먹다 발각됐다는 뉴스를 보면서 의욕을 잃고, 국가를 불신하고 저주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질 일이다. 한 개인의 힘으로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기는 어렵지만 국가는 국민이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하고 도와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농촌인구가 줄어들어 온종일 차량 몇 대 왕래하지 않는 쾌적한 도로가 사통팔달 거미줄처럼 펼쳐있는데도 광주-강진 간 고속도로를 30m 콘크리트 교각을 설치해 만들면 귀청이 멍멍할 정도의 소음공해에 시달려야 하고, 타이어 가루와 흙먼지 둘러쓴 농산물을 먹게 될텐데 그런 불요불급한 예산으로 쓰러져가는 농촌을 회생시켜 살기 좋고 인심 좋은 농촌으로 복원시킬 수는 없을까. 고향떠난 출향인의 입장에서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면 너무 많은 허점이 보인다. 외화내빈, 속빈강정과 다름없다. 내 살림 같으면 이렇게 함부로 낭비할 수 있을까. 복지예산은 후손들이 짊어질 무거운 짐인데도 전국의 지자체마다 인기에 연연해 너무 방만하게 운용되고 있다. 너나없이 못살겠다고 아우성인데 전국이 축제로 들썩거린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남구 건강타운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 노인정에 모여든 수가 극소수에 불과한데도 매일 잔치마당이다.

핵가족 시대에 쌀 소비량은 매년 감소추세다. 이젠 값을 따지는 시대는 아니다. 수확이 적더라도 미질이 우수한 품종을 선택해 소비자의 입맛에 충족시킨다면 판로 걱정은 없지 않을까. 대안으로 미꾸라지나 메기 양식도 고려할만 하다. 수지타산과 상관없이 몸을 돌보지 않고 고생하는 농부들의 주름살이 활짝 펴질 날을 기대하면서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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