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오/영암읍 장암리/전 청주대 한문교육과 교수/전 동덕여대 인문대학장/동덕여대 명예교수

 

갑질그것은 약한 자가 감내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형태다부모님으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은 우리는 억세게 살아야 한다그런데 그 삶의 영위과정에서 우리는 헤일 수 없는 부정적 통과의례를 만나야만 한다그 부정적 국면은 참으로 다양하다그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만나야 하는 갑질이다그러니 삶의 영위를 위해 우리는 갑질의 연속상황을 우리네 의지와는 무관하게 만나고 극복해야 한다그런데 이는 인간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어찌 보면 우주와 자연세계의 질서는 이에 의해서 지속되어지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니 적자생존의 한 단면이랄 수 있다강한 자가 약자에게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에게큰 회사가 작은 회사에게힘 있는 나라가 약소 국가에게,..비 이성적으로 행해지는 그릇된 생존방식의 질서유지의 축이 되는 갑질이라는 생존전략.

내 학문을 해보겠다고 겁 없이 들어섰던 대학원 시절당시 어느 대학교 대학원을 막론하고 대학원생들 사이에서는 은어 비슷한 생경한 신조어가 크게 유행을 하고 있었으니 곧 아더매치유란 단어가 그것이다아니꼽고 더럽고 매스껍고 치사하고 유치하다의 첫 글자만 따서 만들어진 이 신조어는 대학원 학생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했던 은어였다.

세칭학문의 권위주의자들이 자신에게 지도를 받아야 하는 제자들에게 군림하는 갑질의 세계를 잘 보여주는 이 단어의 위력은 대명천지인 현재도 어느 구석에선가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으리라.

어찌 학문의 세계에만 갑질이 존재하리오개인과 사회의 범주를 넘어 국가간에도자연세계의 피조물에게도 연속적 진행형으로 공고히 유지될 수밖에 없는 저 폐기처분해야 할 이 짓!

지난 여름 나는 미국 동북부와 캐나다를 주마간산 격으로 여행을 다녀 온 바 있다이 거대한 두 나라에서 받아지는 인상을 한 단어로 축약 표현한다면 방대함”. 그것이였다땅 덩어리의 거대함은 말할 것도 없고 빌딩의 규모도 거리를 누비는 행인들의 육신도 방대함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재입국하는 버스 안에서 문득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단어그것은 바로 갑질과 획일화였다거대하고 선진화 된 나라(서구국가)들은 무언의 갑질을 보다 부족한 나라들에게 감수하기를 강요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그것이였다변기 문화로부터 의식주의 문화에 이르기까지 자기네들의 문화가 표준이니 그 표준에 따르기를 강요한다이 현상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은연중 갑질과 획일화로 진행된다해서 그들은 자기네 기준에 도달하면 선진국이라 치부해 주고 이에 미치지 못하면 후진국 내지 미개국으로 메모해 버리는 저 무서운 이분법 사고의 갑질.

그런데 이 갑질은 인류사 아니 자연사에 지속되어져 왔다고 하리라국가간의 이같은 갑질 역사우리나라의 경우 여조(麗朝)때는 원()나라의 갑질조선조대는 명청(明淸)의 갑질을 당하면서 살 수 밖에 없었다조선조의 경우 우리나라 사절단이 중국에 갔을 때 사절단 구성원의 상위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저들의 고약스러운 갑질을 처절하게 당했던 사실들이 조천록(朝天錄여기저기에 기록되어 있다사절단 일원마저 당할 수밖에 없었던 저주스런 이 횡포이를 꾹꾹 감내해야만 했던 우리의 서글픈 과거.

지금도 이 나라는 거대강국인 미국과 중국의 틈새에 끼어 간어제초(間於濟楚)의 쓰디쓴 갑질을 당하고 있으니...이를 어찌할까?

이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할 못된 짓그러나 그것은 우주의 질서요자연의 질서며 인간 삶 영위의 불가피한 질서가 인니던가이리 생각하니 암연히 수수롭기만 하구나그러나 이 갑질은 왼통 부정적 측면만이 전부는 아니다왜냐면 더러의 경우 슬픈 갑질을 분노로 승화시켜 인류발전에 기여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이의 예를 우리는 모짤드와 베토벤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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