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복전 ·도포면 목우동 출생 ·전 법무부 연구관 ·영암역사연구회 회장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1887-1948)는 일본 국민성을 국화와 칼에 비유하였다. 국화는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꽃으로 일본 민족의 적극성, 따뜻함, 고결함을 대변하며, 칼은 일본 무사계층의 상징으로 일본 민족의 음침, 잔혹, 악랄한 면을 대변한다고 위 학자는 지적하였다. 베네딕트는 일본국민의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전혀 다른 특징 두 가지를 표현하기 위해 국화와 칼이라는 전혀 상반된 인상을 주는 사물을 제시하였다.

필자는 지난 봄 마한문화축제 추진위원회 일본 해신제 연수단의 일원으로 현해탄을 건너 일본 후쿠오카 현의 무나카타시(宗像市)에 있는 신사(神社)를 방문하였다. 이날이 해신제를 지내는 날이다. 우리 일행이 무나카타 신사를 방문한 것은 해신제(海神祭)의 진행과정을 참관, 마한문화축제를 한 차원 격상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점을 찾고자 함이었다.

이 신사는 무나카타라는 신을 비롯하여 3여자 해신을 모시는데 이 신을 모시는 신사가 일본에 7천여 개소가 있고, 이곳 신사가 전국의 총본산이다. 일본의 황태자가 몇 년 전 이곳 해신제를 참배하고 기념식수까지 한 것으로 보아 이곳 해신제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었다. 2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제례는 수호신인 3여자 해신에게 바다의 액을 물리쳐 화평하게 해달라는 서원(誓願)을 하면서 신에게 주과(酒果)를 올리며, 경배(敬拜)하고, 현악기를 연주하면서 신을 즐겁게 하는 절차로 진행되었다.

우리 일행은 다음으로 큐수박물관을 참관하고, 이어서 가가와 현의 고토히라 정에 있는 신사와 마루가매 성()을 탐방하였다. 일본은 가는 곳마다 신사가 있고, 이곳을 방문한 일본인들은 정중한 자세로 합장하여 절을 올렸다. 결혼식도 신사에서 치르는 것이었다.

필자는 탐방기간 내내 일본에 관한 몇 가지 의문점을 품게 되었다. 왜 일본에는 그렇게도 신사가 많으며, 왜 국화와 칼로 대변되는 이중적 국민성이 형성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는 충분한 배경이 있을 거란 점이다.

일본의 개개인들은 우리가 폄하하는 쪽-발이이다. 키가 작고 유순하며, 친절한데, 뭉쳤다 하면 어디서 그 무서운 괴력이 나오며, 잔혹하고 악랄함이 그지없는가라는 점이다.

인간은 자연환경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다. 일본의 경우, 4면이 바다인 섬으로 예측할 수 없는 혹독한 자연환경 때문에 무속신앙의 영향력이 어느 나라보다 강했을 것이다. 빈번한 지진과 태풍, 해일과 화산폭발 등의 자연재앙은 그들 삶의 터전을 순식간에 처참한 폐허로 만들어버리고, 많은 사람들도 일시에 삼켜버린다. 그들은 폐허가 된 삶의 터전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집결하여 재빨리 복구작업을 해야 재앙과 아픔을 딛고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생활이 반복되면서 여러 자연재앙에 대한 두려움이 신앙으로 발전하고, 경외심이 생겼으며, 동시에 국민의 단결력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풍토적 배경 때문에 일본만큼 신이 많고 신사가 많은 나라도 없다. 일본은 그들의 대표 신으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라는 천조대신(天照大神)을 창시하고 태양의 신으로 받아들여, ‘천황을 신의 자손으로 신격화시켰다.

이러한 신앙이, 세계 제2차 대전 말기에는 가미카제 특공대를 급조, 젊은이들에게 천황폐하를 위하여 1인용 비행기를 타고 가 적의 항공모함 연통에 빠져 거함을 침몰시키고 자신이 죽으면 영웅으로 둔갑시켰다. 260여만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몰아넣어 죽게 했다. 그네들의 잘못된 신앙심과 단결력은 인류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잔인하고 처참한 결과를 초래했다. 일본에는 현재 10만개의 신사가 있고, 신자 총수는 213백만으로, 국민 1명이 복수의 종교단체에 등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종말에 접어들자 미국은 일본과의 전쟁 마무리를 위하여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여야 했다. 미국은 일본인의 상반된 행동이나 사고방식 때문에 미국이 지금까지 전쟁을 치룬 여러 나라 중에서 일본 만큼 곤혹스런 상대는 없었다고 여겼다. 그들을 상대로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하고 전쟁 종결 후에 그들을 통치하려면 사전에 그들을 철저하게 조사해야 했다. 그래서 미국정부는 1944년 문화인류학자 베네딕트에게 일본에 대한 연구를 의뢰했고, 그는 1946년 연구결과를 미국정부에 제출하면서 그 제목을 국화와 칼로 명명하였다. 우리는 일본인을 대할 때 국화와 칼을 연상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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