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용 *도포면 출생 *전 농협대학 겸임교수 *전 농협중앙회 해외협력실 과장 *목포 문태고 교사

 

  

내가 하는 부탁이 남이 보면 청탁일 수 있습니다내가 하는 선물이 남이 보면 뇌물일 수 있습니다내가 하는 단합이 남이 보면 담합일 수 있습니다내가 할 땐 정과 의리지만 남이 볼 땐 부정과 비리일 수 있습니다남의 시선으로 나를 돌아볼 때 청렴한 대한민국이 보입니다.” 이 말은 요즘 방송에서 들을 수 있는 부패 없는 청렴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한 공익광고의 내레이션이다그런데 내용을 조금만 톺아보면 조금 마땅찮은 점이 있다과연 우리 국민들 중에서 이 말을 공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사회적으로 연줄이 없어서 청탁은커녕 부탁도 못하고돈이 없어서 뇌물은 고사하고 선물도 못주고배경이 없어서 담합은커녕 단합조차도 할 수 없어서 정과 의리를 보여줄 수도 없을뿐더러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려고 해도 저지를 능력도 안되는 대다수의 서민들에게 남의 시선으로 나를 돌아보자는 이 광고의 권고가 어떤 의미로 전달될까

지난 9월 28일부터 김영란법이라고 불리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우여곡절 끝에 발효가 되었다이에 대해 혹자는 9월 28일 전과 후의 한국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는 낙관론을 펴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법이 규정하고 있는 내용이 애매모호하고 형평성 문제 때문에 부작용이 커 그 실효성을 장담하기 어려워서 법안의 내용이 수정 되든지 아니면 결국 폐기될 것이라는 냉소적인 반응도 있었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연줄 없고 배경도 없는 서민들에게 일상생활 가운데 진정으로 불평등에서 오는 서러움을 주지 않을 사회를 만드는 것이 김영란법의 목적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김영란법’ 같은 법 제도가 없어서 무역량이나 국민소득에 비해 세계적으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국가청렴도 수준을 보여주고 높은 부패지수를 보여준 것은 아닐 것이다이미 지난 2001년에 부패방지법이 제정이 되었고기타 공직자들의 부정 청탁과 금품향응을 금지하기 위한 여러가지 법규들이 현존하고 있다따라서 이번 김영란법이 새로운 것은 아닌 것이다오히려 거대 재벌과 고위공직자들이 연관된 정경유착이나 대통령 측근비리 같은 것은 일반서민들의 간절한 바람과는 상관없이 김영란법이 이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래서 조만간 우리는 다시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부정과 부패가 나올 수밖에 없는 우리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최근에 호주국립대학 유종성 교수의 동아시아 부패의 기원이라는 책이 국내에서 출판되었다이 책에서 유 교수는 부패가 한 사회의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통념을 깨고 경제적 불평등이 부패를 낳는다는 점을 동아시아 3개국 한국대만필리핀을 비교하면서 논증해냈다이 세 나라는 과거 일정기간 일본의 식민지배를 경험했을 뿐만이 아니고, 2차대전 이후에는 미국의 영향을 아주 강하게 받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세 나라의 부패지수(2014년 아시아 국가별 부패지수)를 보면 필리핀이 7.85로 가장 높고대만이 5.31로 가장 낮다한국은 7.05로 그 둘 사이에 있다(참고로 싱가포르가 1.60으로 가장 낮다). 하지만 2차대전 직후 필리핀은 1인당 국내 총생산이나 교육기관 진학률에서 한국과 대만보다 높았다현재의 역전현상을 가져온 가장 큰 이유를 유 교수는 2차대전 이후에 토지개혁을 근간으로 하는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에서 찾고 있다한국과 대만이 토지개혁을 하면서 경제적 평등을 실현한 반면필리핀은 토지개혁에 실패하면서 토지자본 가문의 출현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했고 계속해서 이것이 정치부패관료부패기업부패로 연결이 되면서 사회전반에 걸쳐서 부패가 만연해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지금 현재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필리핀의 상황이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한편한국과 대만의 부패지수 격차는 토지개혁 이후에 한국이 재벌중심의 경제개발에 치중하면서 경제적 불평등을 양산한 반면대만은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개발 모델을 추구하면서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경제적 평등을 달성한 것이 오늘날 덜 부패한 사회로 나아간 것이라고 해석해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결국 동아시아 세 나라를 비교해 볼 때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적 부패를 초래하는 원인이라고 논증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따라서 김영란법의 성공여부도 우리사회가 얼마나 경제적 평등을 달성해 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부패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는 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핀란드 같은 북유럽 국가들이다그 중에서도 핀란드는 부패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다반면에 우리나라는 국제 투명성기구가 조사한 2015년 부패 인식지수에서 OECD 34개 국가들 중 체코공화국과 함께 27위를 기록했고 불행하게도 이를 지금까지 수년째 지켜오고 있다핀란드가 이런 평가를 받는 이유를 핀란드 의회 사무국의 Paula Tilhonen 박사는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핀란드가 국가 부패지수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원인에 대해 여러가지 요인들 중에서도 소득분배의 불균형이 적은 평등한 사회와 행정의 투명성과 공개성에서 찾고 있다. ‘공무원에게 따뜻한 맥주와 찬 샌드위치가 적당하고그 반대가 되면 위험하다라는 윤리강령을 핀란드의 공무원들은 신참 때부터 깊이 새기는 전통이 있다사실 핀란드에는 부패방지를 위한 별도의 법률이나 기구가 없다심지어 핀란드 형법에는 부패라는 말조차도 없고다만 공무원의 뇌물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고 한다핀란드의 행정은 평등객관성균형성합목적성 등의 네 가지 원칙을 잘 지키는 공무원들에 의해 처리된다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60년대 이후 모든 사람들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복지국가가 되면서 공공 행정 서비스가 투명하게 제공되자 뇌물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우리사회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속하게 신자유주의 물결이 밀려들어오면서 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졌다더군다나 글로벌화를 앞세운 신자유주의의 결실이 대부분 재벌기업들에게 돌아가는 바람에 사회적경제적정치적문화적 불평등이 더욱더 심화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게다가 국가 대내외경제 상황도 별로 좋지 못하다올해 OECD 사무국이 발간한 뇌물척결 보고서를 보면 부패가 민간부문 생산성을 낮추며 공공투자를 왜곡하고 공공재원을 잠식한다고 하면서 부패가 직접적으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부패 청산에 있어서 동아시아 국가들의 실패한 예와 북유럽 국가들의 성공한 예를 잘 살펴보면 김영란법’ 성패의 열쇄가 뚜렷이 보인다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완화시키기 위해 토지개혁에 버금가는 정책적인 노력이 없이는 김영란법의 성공을 가져올 수 없을 것이고부정과 부패가 없는 깨끗한 사회를 만들어 국민 대다수의 행복과 우리나라의 경제력에 걸맞은 국격을 담보해 줄 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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