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각 집영재 화재로 한때 아픔 겪어최근 일부자료 모아 ‘대동계지’ 발간
은곡동계의 동각인 집영재 전경
최근 발간된 은곡대동계지
1734년 마을의 미풍양속을 지키기 위해 동계를 조직한 학산면 은곡동계(隱谷洞契)가 282년이 흐른 지금까지 선인들의 위업을 이어가고 있다.
은곡동계는 현재 우리나라에 몇 안남아 있는 동계(洞契)로, 한때는 구림대동계와 버금 갈만큼 번성했다. 당시 송제 양지하 공께서 쇠퇴한 마을의 기풍을 되살리고자 은곡동계를 창계하고 덕업상권, 과실상규, 예속상교, 환난상휼 등 자치향약의 4대강목을 권장했다. 창립당시 자치규범으로 본문 22조와 추약(追約) 7조의 엄격한 규율을 정하고, 쌀 3두씩 추렴해 조직했다.
그리고 이자를 길러 춘추로 강신(講信)하면서 환난 때는 구휼하고, 애경사 때는 상조하며, 노약자는 공경하고, 풍속 문란자는 손도(損徒)로 다스려 온 마을이 화목하고 협동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계원의 구성은 제주양씨, 밀양김씨, 순천김씨, 선산임씨, 옥천육씨, 해주오씨 등 여섯 성씨들이 주도하였고, 그 후손들이 오늘날까지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당초 계원의 거주지역은 은곡(가마골) 마을에 한정했으나 세월히 흘러 외지 거주자가 많아지면서 어느 지역에서나 여섯 성씨의 후손이면 입계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동각(洞閣)인 집영재(集英齋)는 1815년 건립돼 후진교육을 위한 학당으로 이용돼오다 마을주민들의 공회당과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투쟁의 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그리고 1944년 학산서초등학교가 문을 열기까지 신학문의 산실이 되었고, 새해 정초에는 주민들의 합동세배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영재들이 모이는 집이라는 뜻을 가진 집영재는 이웃 마을에서도 유학을 올 정도로 항상 학생들이 넘쳐났다고 한다. 독특한 건축양식의 집영재는 1986년 전라남도 지방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으나 1999년 3월 문간채를 보수하는 과정에서 화재를 당해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으나 당해년도 곧바로 중건되었다. 이때 화재로 인해 창립기와 중수기를 비롯한 각종 현판 100여개와 대동계의 중요사적을 기록한 문안과 선비들의 시문 등이 모조리 불타버렸다. 불타다 남은 일부 자료들을 모아 최근 ‘은곡대동계지’가 발간됐다.
문배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