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오/영암읍 장암리/전 청주대 한문교육과 교수/전 동덕여대 인문대학장/동덕여대 명예교수

 

매스미디어를 통해 하루가 멀다고 흘러나오는 가정을 무대로 한 천륜파탄의 비극적 뉴스들일회성으로 끝나기를 그리 기원해 보지만 이젠 일상화된 듯한 슬픈 소식들.

지금이야 흔치 않지만 60~70년대에 이발소마다 걸려 있었던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액자들그런대로 운치가 있었고 이발소라는 공간에 잘 어울린 장식품이었다왜냐면 당시 이발소는 사내들의 머리털만 다듬어주는 곳이 아니었고 더러는 당시 사회현상의 단면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었으니 세속사가정사 등 갖가지 이야기가 오고가는 공간이기도 했다어느 가정의 비극적 스토리(사내의 바람피운 이야기 등)가 수식에 수식을 더해 퍼져가는 장소이기도 하고 누구네 자식 출세담이 더더욱 미화되어 전파되기도 한 장소였다그러니 당시 이발소는 세속사의 만화경 장면들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런 곳에 딱 어울리는 이 한자성어 액자는 크나큰 무게로 손님들께 어필키도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젊은 시절 이 성어의 의미를 하찮게 여겼고 단지 허전한 공간을 메꾸는 실내장식용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해 버리곤 했었다그러나 젊어서 가볍게 여겼던 이 성어는 최근에 일어나는 비극적 사태를 접하면서 이젠 천금의 무게로 다가온다흘러온 세월이 내 사고의 무게를 무겁게 하는 것일까아니면 윤리 도덕적으로 타락한 현실이 그 성어에 무게를 실어준 탓일까 생각사록 무거워지는 가화만사성의 성어.

맹자님은 삼락(三樂중에서 제일락을 가정의 평온함이라고 설파했으니 곧 부모님이 함께 건강하게 생존해 계시고 형제간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것이 그것이다.(父母俱存 兄弟無故 第一樂也). 생각해 보라부모님께서 중병에 걸리시지 않고 가족과 함께 한 하늘아래서 웃음꽃을 피우시면서 같이하는 행복감을형제간에 무고하다는 것은 건강을 전제로 형제간에 우애와 겸양이 충만한 상태일 것이니 사욕에 매달려 목숨을 내놓고 싸움판을 벌리지 않는평화가 충일한 우애의 가정이리라몇 푼의 금전(유산 등때문이거나 소소한 다툼으로 형제간에 원수가 되지 않는 그런 가정이리라.

맹자는 가정 평온의 중요성을 이리 환하게 꿰뚫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2% 부족함이 있으니 핵 가정에서 제일 중요한 부부간의 사랑과 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언급을 빠뜨렸다는 점이다.

현대인의 안목에는 조금 서운타 하리라그러나 2400여년 전의 사회현상을 감안해 보면 이 말씀 속에는 벌써 부부간의 관계나 사랑이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휴전협정을 맺은 뒤 획기적으로 취했던 쾌거가 남북간 포로 교환이었다자유진영을 대표해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었던 미병사들 중에 유독 공산주의국가로 가기를 지원한 병사가 21명이었다이상하게 여긴 미 당국에서 이들의 가정환경을 조사해 보았더니 19명의 병사가정이 부모가 이혼한 가정이었단다.

맹자의 제일락인 가정평온의 중요성이 오늘의 현실에 이리도 가슴 저리게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가화만사성의 깊고 높은 가르침을 현대인들이 외면한데서 비롯된 것이리라.

조선조 500년간 우리 선조들께서 가정평온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해 청소년들에게 윤리도덕교육 교과서로 가르치셨던 소학(小學제일권엔 피교육자들을 향해 이렇게 호소한다. “슬프고 슬프구나배우는 학생들아(小子). 존경해서 이 가르침을 받아들여라내 말은 노망한 늙은이의 말이 아니고 오직 성현의 가르침이다”(嗟嗟 小子 敬受此書 非我言耄 唯聖之謨也

오늘날 내게 천 근의 무게로 다가오는 저 가화만사성과 맹자의 제일락.

초스피드로 변해가는 세상에 나의 외침은 반세속적 일런지도 모르겠다그러나 어쩌랴모든 인간들의 삶에서 사람 됨됨이가 최우선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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