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현(영암읍 회문리)

일본군은 목포 삼학도에 대공 고사포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1945814일까지 나는 급우들과 함께 일본군의 고사포 진지 구축을 돕는 근로 동원에 참여하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815일 아침 8시에 삼학도 앞의 선창가에 나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담당 해군장교가 와서 오늘은 작업이 없으니 학교에 가라고 하기에 가뜬한 마음으로 학교로 갔다. 오랜만의 등교였다. 교실에 들어가니 어떤 낯설은 청년이 교실에 들어왔다. 칠판 앞의 교단에 서더니 나는 임시정부의 지령을 받고 여러분을 찾아왔다.” 고 말한 뒤 태극기를 펴 보이면서 이것이 우리나라 국기라고 하였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를 보았다.

우리는 36년간 왜놈들의 식민지 노예로 살아왔다. 오늘 일본은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을 하고 우리들은 해방되었다. 오늘 이 시각부터 첫째, 왜놈 선생님들의 말을 듣지 말 것. 둘째, 내일 아침 조회 때는 일본식 창씨명의 명찰을 가슴에서 떼어 버리고 동방예배(東方禮拜:아침 조회 때 동쪽을 향해 일본 천황께 인사하던 관례)를 하지 말 것. 셋째,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서 해방이 되었다는 것을 고향 주민들에게 알릴 것 등의 세 가지를 지시하였다.

다음날 아침 조회시간 동방예배 때 우리들은 모두 일본식 창씨명으로 된 명찰을 떼어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아침 조회가 끝나고 교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모두 구두를 신은 채로 교실에 들어갔다. 신발을 신고 교실에 들어가다니! 평상시에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본인 선생에 대한 반항의 표시였다. 의기양양...구두 소리가 요란하였다. 이층 계단으로 오르려는 찰나 문을 열고 나온 교장 선생님. “멈춰라!” 대갈 일성. “이 멍청이들!!”(馬鹿野郞...바카야로)

잠시 후 너희들은 이제 해방이 되었다. 연합군의 힘으로 된 것이다. 해방은 쉽지만 독립은 어려운 거다. 이제 너희들의 힘으로 독립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구두발로 실내에 들어오다니...자국의 독립을 이뤄야 할 너희들이 무질서한 행동을 하다니. 구두를 벗어! 이 멍청이들! 연합군의 도움은 공짜가 아니야. 정신 차려! 이 바보들! 해방은 쉬었어도 독립은 어렵다는 것을 잊지 마라... 건투를 빈다.”

훈시를 마친 교장 선생님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대노한 교장 선생님의 호통에 우리들은 누구 먼저 할 것 없이 신발을 벗어 들었다. 교장은 일본인이었다. 橫田峰三郞(요꼬다 미네 사부로오廣島(히로시마) 고등사범학교 영문과 출신. 당시 63세였다. “해방은 쉽지만 독립은 어렵다.”고 대갈(大喝) 하였던 교장은 이슬 맺힌 눈물을 감추면서 교장실로 들어 가셨고 우리들은 침통한 심정으로 2층 교실로 올라갔다.

다음날. 우리 모두는 각자 고향으로 흩어졌고 교장 선생님은 자국으로 인양하셨다. ‘해방이 곧 독립인 것으로 착각한 제자들을 단호하게 훈도한 교육자. “연합군의 힘으로 해방은 됐다. 하지만 독립은 어렵다. 정신차려! 이 바보들!”하고 대갈하시던 스승의 모습이 국경을 넘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오늘은 71번째의 광복절이다. 그러나 통일 독립은 요원하다. “남의 도움에 공짜는 없어. 정신차려 이 바보들! 독립은 어렵다는 스승의 절규가 자꾸만 메아리친다.

얼마 후 해방된 역마차에 태극기를 날리며...’의 노래와 함께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말고 조선아! 일어나라는 말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다. 동족살상용 핵무기에 광분한 북한. 전시 작전권까지 타국에 내주고 사드 배치로 시끄러운 작금의 국내외 정세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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