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오 ·영암읍 장암리 ·전 동덕여대 인문대학장 ·동덕여대 명예교수 ·한국문화연구원장

 

내 청장년 시절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을 때 간혹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죽고 싶어도 한 말을 못다 해서 죽을 수가 없다.” 이 넋두리 같은 궤변이여지금 생각해 보면 부끄럽고 창피하기만 하다실수로 빚어냈던 공허하고 무책임한 언어들광주리에 되담을 수만 있다면...

공자님께서는 눌변이 달변이라고 하셨다왜 그러하셨을까이는 아마도 쓰잘 데 없는 언어가 빚어내는 공허함과 그 해악을 경계하신 것이리라해서 정자(程子)는 천하의 명문 사물잠(四勿箴)중 언잠(言箴)에서 언어는 길함과 흉함과 영광스러움과 욕됨을 불러 들인다고 경계했으리라곧 감정 섞인 언어는 폭력으로 전이되고 물리력 행사로 변이 되는 에스컬레이터의 현상을 경계한 것이다

공원을 거닐면서 꺾이어진 장미송이를 두고 우리는 흔히 두 가지 내용을 담아내는 언어표현을 한다혹자는 장미꽃이 꺾이어져 있네장미꽃을 누가 꺾어 버렸지가 그것이다전자의 표현에는 그 누구를 향한 악의가 없다그러나 후자의 표현에는 그 누군가를 지칭하는 악의와 폭력이 함의되어 있다그래서 우리네 속담에 ” 다르고 ” 다르다는 시쳇말이 생겨났으리라.

한 나라의 지도자는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다우선 말을 할 줄 아는 자여야 한다지도자는 개인 이전에 공인이기 때문이다그러니 말을 할 줄 모르면서 지도자 되기를 꿈꾸는 자 있다면 그 꿈을 접어야 한다그들이 마음 내키는 대로 내뱉는 언어폭력그 결과는 우리가 화상을 입었을 때 간헐적으로 밀려오는 고통을 국민 모두에게 안긴다.

이 나라 정치 지도자 중 말을 제대로 할 줄 몰라 몰락한 자 그 얼마였던가한 때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모모씨들

이런 모자란 지도자들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것만은 아닌 상 싶다미국 공화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 트럼프의 여성비하 발언과 무슬림 폄하 내지 혐오발언 등이 미국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는가 하면 일본의 부수상 아소라는 자는 90세가 넘어 TV에 출연한 어르신네가 노후를 걱정한다는 발언을 두고 언제까지 살아 있으려고 저러나” 생각하면서 그 프로를 봤다는 막말을 스스럼없이 했다고 하니 그의 인격 미완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 씁쓸타 못해 한숨마저 나온다우리들의 청각을 사정없이 할퀴어 놓은 저 언어폭력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높은 자리에 오르고 지도자랍시고 거드름을 피우는 걸 보면 나는 구토 현상마저 일으키곤 한다내 잘은 모르겠으나 언어폭력의 구사는 그들의 전매품이거나 아니면 필수품(?)쯤 되는가 보다해서 그들은 그 구사를 능숙히 해야만 지도자의 자격을 갖춘다고 여기는 모양이다그러나 그 언어폭력의 결과는 대부분의 경우 당사자를 나락의 구렁텅이로 함몰시키고 마는 것이니 이를 어찌할까.

지금 세상이야 대명천지 시대라 목숨도 부지되고 되레 승승장구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과거 전제주의 국가에서야 어디 가당이나 했던가.

세계 서예사를 바꾸어 놓는데 일조했던 당(태종 때의 명필인 저수량(褚遂良)은 선왕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측천무후(測天武后)를 왕비로 삼겠다는 고종(高宗)의 억지에 대해 아니 되옵니다라는 바른 말 한마디 했다가 중앙정부에서 쫓겨나 이국만리 베트남 태수로 좌천되고좌천된 지 일년도 채 못되어 한스럽게 죽고 말았으니.... 저수량의 직언 한 마디가 인류가 두고두고 누려야 할 안복(眼福)마저 함께 데불고 가버렸다고나 할까.

내 칠십 중반을 보내온 생평을 뒤돌아본다그동안 알게 모르게 저질렀던 말의 업보들그 높이가 내 고향 월출산 천황봉 보다 높은 것 같다광주리에 되담을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노자의 말씀이 내 가슴을 후빈다언자(言者)는 부지(不知)라는 높 깊은 가르침

이제껏 나는 무식했기에 그 많은 말들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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