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오/영암읍 장암리/전 청주대 한문교육과 교수/전 동덕여대 인문대학장/동덕여대 명예교수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어머니는 어머니다워야 하며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신라 경덕왕은 어떻게 하면 나라를 태평케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당시 대덕고승(大德高僧)인 충담사를 초청해 자문을 구한다. 그러자 충담사는 논어의 말씀을 원용해서 군군(君君) 신신(臣臣) 민민(民民) 이라고 답한다. 곧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백성은 백성다워야 한다고 대답한 것이다.

먼동이 트기가 무섭게 내 집 매화나무 가지 위에 앉아 울어대는 참새. 내 단잠을 깨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기저기에 쏟아 내놓은 배설물은 나의 인내를 한계점까지 이끌고 간다. 소리, 모양, 행위 그 어느 하나 사랑스런 점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참새. 그런데 그 참새가 유별나게도 시끄럽게 울며 소란을 피울 때가 있다. 이때쯤 참새무리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노랑부리의 새끼들을 데불고 있다. 시기적으로 따지면 음력 5~6월 쯤이다. 이때가 되면 참새들의 먹거리는 여기저기 지천으로 널려 있다 곤충, 보리알맹이 등등. 그러니 참새의 어버이는 온 천지가 꽁꽁 얼어붙은 겨울철을 피해 새끼를 낳고 길러야 할 시기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자연순환의 법칙을 터득해 새끼를 낳고 그 새끼들을 온전하게 기르려는 본능적 사랑. 포식자의 공포를 도무지 알지 못하는 노랑부리의 새끼들을 풀 덤불사이로 이리저리 이끌며 먹이를 구해 먹이는 어버이 참새. 어디 그뿐이랴. 자신의 몫까지 새끼들에게 나누어 준다. 어버이 참새의 자애와 숭고한 희생, 어버이 참새는 찍찍찍새끼참새는짹짹짹”, 부자자수(父慈子隨)의 정연한 질서의 현장이다. 하여 어버이는 어버이답게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종족을 보존한다.

나는 어쩌다 외식을 할 때 우렁 된장찌게를 즐겨 먹는다. 흙냄새와 우렁 특유의 단백질 내음이 특이한 향을 냄으로 해서 입맛을 돋우기 때문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농부들은 논둑을 다스리고 논에 물을 욕심껏 가둔다. 찰랑찰랑한 논물 위로 상큼한 봄바람이 불어대면 으례껏 우렁 껍질들이 둥둥 떠다닌다. 나는 이 우렁 껍질을 볼 때마다 추운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골아서 죽은 껍질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우렁은 알을 낳는 게 아니고 새끼채로 제 몸속에 지녀 그 새끼들로 하여금 자신의 육신을 먹이로 삼아 생장케한다. 새끼들이 성체가 되어 어미 몸속에서 빠져 나오면 어미 우렁은 빈 껍데기로 물위에 둥둥 떠오른다. 자신의 생살 점을 자식들의 생장 먹거리로 제공하는 우렁어미. 어미의 육신공양이 있어 새끼는 생장하고 그 새끼는 다시 다음 세대의 희생의 모태로 논바닥을 기어 다닌다. 그러니 우렁어미는 자신의 생살점의 아픔을 미래를 향한 기쁨으로 환치시키면서 일생을 마친다. 어머니의 어머니다운 저 숭엄한 희생이여!

시경(詩経)엔 까마귀에 대한 묘사의 시구가 있다. 아아모반포(啞啞母反哺)가 그것이다. 까악까악 울어대는 어둡고 둔탁한 소리는 첼로의 저음과도 흡사 하리 만큼 묵직하다. 소리만 둔탁한 것이 아니다. 새까만 깃털의 색감은 우리의 시각마저 어둡게 한다. 까마귀는 까악까악 운다. 그러나 까마귀 새끼는 성장하면 일정기간 자신을 길러 준 어버이를 봉양한다. 그래서 반포조(反哺鳥)라고 한다. 까마귀는 새끼시절 그들의 어버이가 베푼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답해 주기 위해 길러준 어버이를 일정기간 나뭇가지 위에 편히 쉬게 한 뒤 개구리, 미꾸라지 등 먹이를 구해 정성껏 봉양한다. 해서 김수장(金壽長)그 새끼 밥을 물어 그 어미를 먹이나니라고 노래했으리라. 그러니 까마귀 어미는 자식을 기르기 위해 희생을 하고 새끼는 길러준 어미에게 그 은혜에 보답키 위해 효성을 다한다.

요사이 신문이나 TV방송에서 보여지는 천륜파탄의 가정 비극들. 암연히 수수롭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어두운 저편엔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어머니는 어머니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살아가는 가정이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부부 모모 자자(父父 母母 子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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