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호 /영암읍 장암출생/호남미래포럼 공동운영위원장/국가인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전 중앙일보시사미디어 대표

몇 해 전 이웃 해남의 고등학교로부터 특강 요청을 받았다. 그래서 준비한 내용의 제목이 바로 ‘해남에서 세계로’였다. 지구촌 젊은 세대에게 종전과는 전혀 다른 문명이 현실로 다가왔기에 새로운 안목으로 세상을 보고 그 변화를 자신의 뜻을 펴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제안이었다.

정보화 혁명 이전 사회에서 해남이나 영암, 더 넓게는 호남을 비롯한 지방 모두는 중앙의 하부구조였다. 중앙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자원배분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늘 중앙을 바라보아야 했고 중앙에서 인정을 받는 것이 바로 성공이었다. 땅끝 해남에서라면 일단 호남의 중심 광주(과거에는 나주를 거쳐 전주)로, 다시 서울로, 서울을 거쳐 미국이나 유럽으로 나가는 중층의 단계 구조가 당연시 된 환경이었다.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은 그런 인식의 표현이다. 이런 조건과 환경에서 해남이나 영암 같은 변방은 원초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광주-서울로 단계를 밟는 사이 서울에서는 미국으로 유럽으로 한 걸음 먼저 나가기 때문이다. 이같은 구조적 격차는 심화되어 왔지만 극복의 방법을 찾는 것이 사실상 어려웠다.

그런 환경과 상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대표 사례가 가수 싸이의 성공담이다. 싸이 본인을 포함한 누구도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불과 3년 만에 23억 명이 시청하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의 기록을 세우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시청자는 아직도 늘고 있다)

스스로 ‘B급 가수’를 자처하는 싸이는 그저 자신이 신나게 노는 기분으로 다소 유치하고 야하면서도 풍자적 내용의 뮤직 비디오를, 별로 큰 돈을 들인 것 같지 않게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것도 아니고 전문업체와 사전협력을 한 바도 없다. 그런 비디오 한편이 인터넷 망을 통해 싸이를 단군이래 가장 유명한 한국인으로 만들었다. 아이디어가 좋으면, 능력만 있다면 이제 굳이 광주를 거쳐, 서울로 가지 않아도 된다. 바로 세계로 갈 수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세계와의 ‘직거래 대박’도 가능하다.

그래서 해남이든 영암이든 제주도든 울릉도든 서울로 표상되는 국내의 중앙만을 바라보는 일은 이제 착오이기 쉽다. 동서남북 전후좌우를 동시에 보는 전방위 시각이 필요하다. 무슨 일이든, 규모가 크든 작든 시작부터 세계를 염두에 두어야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얼까. 세계와 소통하는 능력이고 그 핵심도구는 언어다. 언어라고 말하면 대부분 영어를 생각하는데 그것도 종전의 관념이다. 중국어나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같은 동남아 여러 나라의 말들도 수요가 크게 늘어날 외국어다. 미리 준비하는 것이 선견지명이다. 컴퓨터, 법률, 회계 같은 실용지식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인성의 기본이 갖춰진 다음에 평가될 것이다. 이른바 명문대학, 명문학과 졸업장이 미래를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고 실제에서의 문제해결 능력이 진정한 경쟁력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열렸다.

과거의 타성대로 광주를 거쳐, 서울을 지향하고 서울이 경쟁의 종점이 되는 세상은 막을 내렸다. 능력에 따라, 하기에 따라 자신이 선 자리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 수도 있는 세상을 향해 젊은이들이 앞장서 나아가야 한다. 호남 입장에선 장보고의 청해진이란 선행 모델도 있다. 특히 영암은 왕인박사, 도선국사로부터 낭산 김준연에 이르기까지 국제적 활동가들을 배출한 전통을 가진 고장이다.

정보혁명의 물결에 올라타 지역과 한국과 세계를 바꾸는 대담하고 다양한 시도들이 영암에서, 영암인들 사이에서 경쟁적으로 일어났으면 한다. 농업을 비롯한 전통산업과 관광 등 미래산업에서 수없이 많은 기회가 있으리라고 본다. 그러자면 첫 단계가 일류대학 진학의 강박으로부터 청소년들을 풀어주는 부모세대의 결단이다. 해외 유명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와도 취업이 쉽지 않은 상황은 다 안다. 그리고 이것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그럴 바에야 우리 아이들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자기 모든 것을 던져보도록 풀어주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 아니겠는가. 정보혁명을 이끄는 세계의 기업가 대다수가 유명대학 졸업자가 아니라는 사실도 유념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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