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홍/서호면 몽해리 아천 출생/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초빙교수/(주)가나문화콘텐츠그룹 부회장/전 KBS 제주방송 총국장

 

 

필자는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지 16년 만에 다시 학생이 되었다. 나이 45세에 신문방송대학원 박사과정 방송전공을 시작했다. 1990년 KBS 보도국 기자로써 부장진급을 앞둔 차장시절이었다. 박사학위를 하겠다는 강한 집념으로 30대 초반인 후배들과의 치열한 박사과정 입학시험 경쟁에 나섰다. 3수 끝에 겨우 입학할 수있었다.

늦깎이 대학원생이 되어 무엇보다 모교 캠퍼스를 다시 다닐 수있다는 젊은시절의 기분이 되살아나 초조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했다. 고학했던 대학시절부터 미래를 준비하며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강한 집념 때문에 모교의 두 번째 학생이 되었다. 당시 박사과정 대학원 입학시험은 지금은 없어진 제2외국어가 필수였다.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3년동안 바쁜 기자시절 때문에 출근전 새벽반 일본어학원을 다녔던 때가 가장 힘들었다. 당시 대학원생이 되면서 큰 걱정이 생겼다. 현직 방송기자의 바쁜업무 속에 어떻게 박사과정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할 수있을 것인가였다. 석사과정은 야간 강의여서 바쁜 현역 기자시절에도 퇴근후 빠지지 않고 강의를 들어 석사학위를 받을 수있었다. 그러나 박사과정은 야간이 없다. 방송은 신문과 다르다. 방송은 매 시간 뉴스를 해야 한다. 그리고 기자들은 숨쉴 틈이 없이 바쁘다.

필자는 박사과정 강의를 듣기 위해 취재부서에서 보도특집을 제작하는 보도제작국으로 옮겼다. 이 부서에서는 일주일에 2~3일 동안 대학원 강의를 들을 수있는 시간을 낼 수있었기 때문이다. 박사과정 대학원 수업은 학부와 석사과정과는 달랐다. 교수의 강의 위주의 수업이 아니다. 학생들은 주어진 과제와 영어원서로 된 책 1권씩을 공부해 그 연구결과를 발표해야 한다. 교수는 학생의 발표를 평가하고 문답식 토론에 이어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며 보충설명 등으로 강의가 진행된다. 한 마디로 이 수업은 본인이 공부하지 않으면 강의를 들을 수가 없었다.

젊은 후배들과 함께 강의를 들을 때마다 이들과 경쟁에서 이길 수있는 길은 열심히 강의를 듣고 공부할 수밖에 없다. 후배 대학원생들은 나이가 많은 선배가 늦깎이 대학원생으로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함께 어울려 학습 분위기를 잘 이끌어주어 무엇보다 반갑고 즐거웠다. 교수진들도 현역기자의 늦깎이 향학열에 많은 격려와 용기를 주어 열심히 공부 할 수있었다. 당시 교수들은 일부 학생들이 필자처럼 직장을 갖거나 어려운 사정이 있을 때는 학생들의 편의를 봐줬다.

가끔 늦은 시간에 혹은 주말에 강의시간을 변경해서 강의를 진행하기도 해 교수들의 고마움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당시 교수들은 강의후 학생들과 가끔 식사모임이 있었다. 교수들은 학생들이 제의한 고급 음식점은 사양하고 소머리 국밥 등 학교 주변의 값싼 음식점만을 고집하였다. 교수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아 사회에 나갈 수있도록 필자에게 전력을 쏟아주어 매우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교수들은 학위논문 심사에는 매우 엄격했다. 필자의 경우 KBS 보도국 부장직위 때문에 누구보다 학위논문이 우수해야 한다며 심사를 까다롭게 진행했다. 결국 교수들은 필자의 예정된 학기논문 심사를 보류시켰다. 그후 한 학기 6개월이 지나 학위논문을 보충하여 어렵게 통과되었다. 필자는 현역업무와 논문작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겹쳐 학위논문이 통과되기 전 2주일 동안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라는 병을 얻어 보름동안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결국 45세 차장 때 대학원에 입학해 5년만인 50세 부장 때 박사학위를 받는데 성공했다. 필자는 KBS 박사1호가 되었다. 당시 KBS TV뉴스에 필자의 박사학위 수여 소식이 뉴스로 보도되기도 했다. 포기를 몰랐던 늦깎이 대학원생의 강한 집념과 노력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서 정년후, 박사학위를 받을 때보다 더 어려운 길을 가야 했다.

TV뉴스 취재와 보도, 방송기자로 성공하는 길 등 방송 실무서 2권 이상을 출판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필자는 2004년 KBS 정년 3개월을 앞두고 경기대학교 언론미디어학과 정교수에 합격해 8년의 교수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을 할 수있었다. 이어서 성균관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초빙교수로 4년 째 강의하고 있다.

필자가 학위를 받고 대학교수가 되자 KBS 기자, PD, 아나운서 등 10여명의 후배들이 현재까지 모교의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아 대부분 KBS 정년후 서울과 지방의 대학교수로 크게 활약하고 있다. 포기를 몰랐던 늦깎이 인생의 강한 집념으로 성취한 대학원 시절의 추억은 영원히 잊을 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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