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암마을 조동길 씨 “내가 아는 큰골의 모든 것”

월출산 자락 큰골이라 부르는 녹암부락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70여년의 세월을 보내온 조동길씨(74. 영암읍 회문리 녹암마을)가 본사를 찾아와 월출산이란 곳은 외부에 많이 알려졌지만 아직도 많은 것들이 알려지지 않고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며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마을에 살며 듣고 보고 알아왔던 모든 것을 정리했다면서 장문의 글을 보내왔다.

그는 글에서 자신이 살아온 마을과 큰골(大洞)이란 곳이 어디인지 소개했는데 월출산 자락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라고 하며 월출산 골짜기에서 내려온 냇가(큰골천)를 중심으로 영암읍 회문리와 군서면 월곡리에 걸쳐있는 여러 유적지와 얽혀있는 지명, 전설에 대해 소개했다.

 

영암읍 회문리 녹암부락은 월출산을 등지고 위치해 있으며 마을 위로는 대동제와 더 위쪽의 상수원으로 쓰이는 작은 저수지가 있는데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사람의 출입이 통제돼 있다.

예전에는 자유롭게 산길을 다녔던 마을 사람들도 고령화 영향도 있지만 통제구역이라 함부로 산을 오르내릴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월출산국립공원관리공단의 허가아래 구역 내의 유적 답사나 옛 산길을 돌아보는 것이 허용되고 있다. 그나마 용암사지는 천왕봉에서 내려오는 길에 들러 볼 수있고 유적이 있는 곳은 문화재 관리때문에 길이 정비가 돼있지만 나머지 산길과 골짜기들은 빽빽이 들어선 관목들로 사람의 출입이 거의 불가능하게 돼버렸다. 특히 군서면 몽염사지로 가는 길은 아는 사람 아니면 거의 가기가 힘들어졌다.

기찬묏길
조동길씨에 따르면 월출산 자락의 큰골의 위치는 큰골천을 중심으로 동쪽은 영암읍 회문리, 서쪽은 군서면 월곡리라고 한다. 녹암마을 위 대동보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세워졌는데 규모는 크지 않지만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목적이었다. 더 위쪽은 녹채골짜기와 삐득제 골짜기가 있으며 그 사이에는 상수도 사업을 위한 수원지인 제1대각교(大各穚)가 있어 사람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이곳에서 더 오르면 빈대골, 작은소암태골과 큰소암태골 있으며 작은 암자 터가 3곳이 있다. 다시 더 길을 오르면 제2 대각교가 있다. 이곳에서 더 오르면 ‘큰바탕’을 지나고 ‘사슴목재’가 있으며 여기엔 사슴목재 절터가 남아있고 이곳 위에는 ‘도방골’과 ‘성지골’이 있고 능선에는 ‘성지바위’가 있다. 계곡을 따라 오르면 좌측에 ‘희정이골’과 우측에 ‘석벽골’이 있으며 더 올라가면 ‘애맹재 절터’가 나온다. 애맹재 절터에는 칼로 무를 자른 모양의 잘 쌓아진 석벽이 남아있다. 아직까지 계속 올라가야 하는데 애맹재 절터 석벽을 지나 오른쪽은 작은톱밥골, 더 올라 큰톱밥골에 서면 왼쪽으로 천왕봉, 정면은 바람재가 보인다.

이곳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영암읍과 군서면을 가르는 하천(큰골천)이 나오고 이를 따라서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면 ‘작은운체골’과 ‘큰운체골’이 있으며 그 위에 ‘큰여골’에는 절터가 있다. 더 오르면 ‘백예나뭇골’에도 절터가 있다. 이곳 근방에는 용암사지와 몽염사지가 있다.

용암사지와 몽염사지

용암사지는 큰골에서 가장 큰 골짜기인 용암골에 있으며 여기에는 고려시대 삼층석탑(보물 제1283호)이 남아 있는데 일제시대 보물을 노린 도굴꾼들에 의해 훼손됐다가 최근 복원됐다. 또 탑터와 함께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5층석탑 있는데 드물게 낭떠러지의 좁은 면적에 세워져 있어 어떻게 세웠는지 신비스롭기까지 한다. 이와함께 용암사지 윗절터에는 큰골 주민들이 ‘학송군’이라 부르는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호)이 묵상에 젖은 그윽한 눈길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우물터에는 아직도 맑은 물이 고이고 있다고 한다.

용암사지에서 더 올라가면 구정봉이다. 정상에서 동쪽으론 생애(상여)봉, 깃대봉이 내려다보이며 그 너머로는 천왕봉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제 군서면 쪽을 보면 구산 위로 장방골, 그 위로 널빤지 골짜기, 그 위로 남생이가 살았던 굴이 있어 이름붙은 남생이골짜기, 그 위로 농골, 또 그 위로 가장 큰 골인 몽염골이 나온다. 이곳엔 용암사지 다음으로 큰 절터가 있어 주민들은 ‘몽염사’라고 불렀다. 절터 위쪽 서쪽암벽엔 좌불상이 있어 용암사지 마애여래좌불상과 마주보고 있다. 큰 바위에 깊고 섬세하게 조각을 한 용암사지의 마애여래좌상과 대비가 되는데 몽염사의 것은 비교적 작은 바위에 얕게 조각했으며 크기도 작아 소박한 느낌을 준다. 이곳에도 삼층석탑이 있으며 훼손된 것을 최근 복원했다.

골마다 서린 이야기들

몽염골에서 더 올라가면 작은수도골과 큰수도골이 나오는 데 이곳에도 절터 같은 곳이 있지만 확실치 않고 숯을 구었다는 설만 남아있다. 더 올라가면 작은상재골 다음은 큰상재골 다음 작은밤재골의 이재를 넘어 내려가면 도갑로가 나오며 여기를 통해 이재에서 남쪽에는 큰밤재가 있어 여기를 넘으면 강진군의 무위사에 이른다. 용암사도 이재 인근에 있는데 옛날에는 이재를 통해 무위사와 도갑사를 갈 수 있어 산중에 인적이 많이 지나갔기 때문에 산도적들이 많아 도둑골이라 부르기도 했다.

다시 더 올라가면 길가에 덕석(멍석)바위가 있고 지나면 억쇠풀로 유명한 미앙재에 다다른다.

몽염골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초목동들이 쉬면서 팽매(팔매) 쳐서 넘기면 잘치는 사람으로 통하는 팽매바위가 있으며 더 올라가면 큰골에서 가장 깊다는 소(沼)로 어사방죽이 있으며 수심은 약 2m로 어사가 목욕하다 죽었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몽염사 마애여래좌상에서 서쪽으로 더 가면 배틀굴(구정봉에도 같은 이름의 동굴이 있음)이라는 곳이 있는데 큰골 사람들은 옛날부터 이를 접싸리굴이라 칭해왔다.

 


<인터뷰 조동길씨>

잊혀져가는 옛 이름들 아쉬워

대동제에는 중류 농바위엔 누가 언제 새겼는지 모를 大洞門松隱河學天(대동문송은하학천)이란 글이 새겨져 있어 이곳이 큰골이며 은둔해 하늘을 배우는 곳이란 것을 알리고 있다.

조 씨는 옛 선인들처럼 사라질 이름과 이야기를 바위에 글을 새겨 남겨 둘 수없는 시대에 태어났지만 후손에게 이를 남기기 위해 큰골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기록했다.

조 씨는 “큰골에 전해오는 옛 이름들에는 비바위, 문턱바위, 상자바위, 메기방죽, 양산이방죽, 대동폭포, 쌀가지(삵괭이)방죽, 벼락소 등이 남아있다. 하지만 우리 시대가 끝나면 이런 지명들이 사라질 것이다”며 안타까워 했다.

또한 “상수원 보호지역으로 지정돼 입산이 통제되는 것과 함께 신우대 등 각종 관목이 길을 막아 답사를 못하는 것도 아쉽다”며 “이곳은 월출산의 다른 등산로 보다 완만하여 중노년층도 천천히 돌아볼 수 있는 지역이라 보호지역이 해제된다면 새로운 등산로로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조 씨는 마지막으로 “농촌에 젊은 사람들이 없어 산과 문화재로 함께 답사하기 힘들고 우리가 알아온 지명들이 영원히 사라지기 전에 글을 남겼다”다고 밝혔다.

조 씨는 최근 영암문화원 관계자들과 함께 큰골을 답사해 사적지를 안내하고 지명과 전설을 이야기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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