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호/영암읍 장암출생/호남미래포럼 공동운영위원장/전 중앙일보 시사미디어대표/국가인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신입사원을 뽑을때 면접시험을 직접 보고 그 면접시험에서 관상을 보았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필자도 중앙일보 기자로 입사할 때 바로 그 이병철 회장의 면접시험을 통과했다. 애초 필자의 사회진출 진로선택은 언론계가 아니었다.

당시 시골 출신들이 선호하던 법조계 진출을 목표로 사법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1차 합격후 2차 준비를 하는 막간에 '내 실력으로 언론사 시험을 보면 붙을 수 있는지 테스트를 한 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별다른 준비없이 신문사 기자공채에 응시했었다. 연륜이 가장 오랜 동아,조선 두 신문은 그 해 기자를 뽑지 않았고 한국일보와 중앙일보만 기자를 뽑았다. 중앙일보는 그 때 창간한지 7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매체 였던데다 삼성그룹에 대한 이미지도 지금처럼 좋지는 않았기에 당연히 한국일보에 원서를 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무렵 한국일보 창업주 고 장기영 회장의 장남 장강재씨가 영화배우 문희씨와 결혼한다는 뉴스가 언론에 보도됐다. 보니 장강재씨의 나이가 나보다 한살 위인데 직함이 한국일보 이사였다. 만일 내가 한국일보에 응시한다면 장씨가 면접을 볼 판이었다. 마감 직전 중앙일보에 원서를 냈다. 나중에 보니 양쪽 다 경쟁율이 100대 1을 훨씬 넘는 '언론고시'였다.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1972년 10월초 3차 면접시험장에서 고 이병철 회장을 처음 만났다. 필기시험 합격자를 1차는 10명씩, 2차는 3명씩, 3차는 한 사람씩 단계적으로 걸러내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서소문 일대에서 작은 건물이 됐지만 당시엔 가장 높은 10층 신축빌딩이던 중앙일보 사옥 6층 임원실에서 있었던 3차 면접시험 장면을 필자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이병철 회장이 가운데 앉고 홍진기 당시 중앙일보 사장, 김덕보 동양방송 사장, 홍성유 중앙일보 부사장등 임원들이 좌우로 배석했는데 당시 중앙일보 이사로 재직중이던 30대 초반 이건희 회장도 끝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이병철 회장이 시거 담배를 피워 물고 지긋이 지켜보는 가운데 질문은 홍성유 부사장이 주로 했다. 홍 부사장은 첫 질문을 이렇게 던졌다.

"자네는 중고등학교는 일류를 나왔는데 대학은 이류를 다녔구만. 어떻게 된건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지만 즉각 반격을 했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씀을 한다면 이해를 하겠습니다만 사회를 계도한다는 언론사의 임원이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실망입니다. 대체 대학의 일류, 이류는 어떤 기준으로 말씀하십니까" "동국대가 이류이지 그럼 일류인가. 다 아는 사실인데 새삼스럽게 무슨 기준인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국내 대학 중에서 굳이 일류,이류를 가르라면 동국대학 만이 일류대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대학이 일류다,이류다, 하는 기준은 우리 대학은 이런 학문을 하노라고 세계적으로 내세울 만한 분야가 있느냐 없느냐가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버드나 예일의 법학, 경제학, MIT의 공학 등이 그런 예 아닙니까. 우리나라 어느 대학이 그런 전통과 업적을 가지고 있습니까. 서울대 입니까, 연대 고대 입니까. 그나마 꼽는다면 동국대학교의 불교학 정도라고 봅니다. 그러니 동국대학교 만 일류대학 아닙니까" "에이 이 사람아, 그거 궤변이지" 홍성유 부사장과 필자의 말싸움이 10분 가까이 계속되자 미소를 머금고 지긋이 지켜보던 이 회장이 한 마디를 던졌다. "자네 기백이 좋구만" 최종합격자 발표는 그해 10월 17일에 있었다.

그날 필자는 공부 중간에 머리를 식힌다고 전국대회에 출전한 모교 광주일고 야구 응원차 몇몇 친구들과 지금은 헐리고 없는 동대문야구장에 갔었다. 점심 때쯤 당시엔 석간으로 발행되던 중앙일보 가판을 사든 필자는 쇠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빠졌다. 1면 머리기사가 유신헌법 선포였다. 그리고 2면 수습기자 최종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도 있었다. 법을 공부한 양심으로 민주헌정 질서를 원천 파괴하는 유신체제에서 하수인 노릇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럼 무얼하지. 최종합격만 확인하고 끝낼 생각이었던 언론사 입사가 대안이 됐다. 신체검사를 마치고 중앙일보에 입사한 것이 그해 11월 6일. 언론계 첫발이었다. 입사해 보니 13명 기자 합격자 중 박준영 전 전남지사와 여기자 1명 모두 고향이 영암이었고, 전북출신 한 사람까지 호남출신이 4명. 유신을 선포한 박정희 대통령도, 이병철 회장도, 홍진기 회장도, 장강재 회장도 다 고인이 되었지만 사람의 인연은 이렇게 얽혀 각자 한 생을 엮어가는 셈이다.

오래 전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상황이 어렵더라도 기는 죽지 말라는 뜻에서다. 취업도 결혼도 어려운 '3포', '5포' 시대라지만 젊음의 패기까지 잃어서는 안된다. 특히 월출산을 바라보고 자란 영암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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