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호 <영암읍 장암 출생/호남미래포럼 공동운영위원장/전 중앙일보시사미디어 대표/국가인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

서울에서 활동 중인 광주전남고등학교 동창회 연합조직인 '연합동창회' 간부들의 단합을 위한 봄철 야외행사가 지난달 23일 있었다. 연합동창회 회장이면서 '대한민국을 생각하는 호남 미래포럼' 재정위원장을 맡고 있는 광주고등학교 출신 (주)골드라인 이홍기 회장이 몇해전부터 연례로 해온 초대행사라는데 필자는 처음이었다. 회사 직원교육을 위한 연수원을 겸해 20년전 경기도 안성에 마련한 대지 1천평 규모의 별장, 잘 가꿔진 잔디밭에 식탁을 차리고 한우 숯불구이로 저녁식사를 하는 모임에는 광주전남지역 40여개 고교동창회 임원진 1백80여명이 참석했다. 그 중 80여명이 여고 동창회원인 것이 눈에 띄었다.

일부는 자기 차로, 다수는 3대의 관광버스로 주말 교통혼잡을 무릅쓰고 안성까지 이동했지만 연중 가장 좋은 계절과 날씨에 모처럼 야외에서 봄밤의 정취를 만끽하며 동향의 정을 나누는 즐거운 자리였다. 호남미래포럼 운영위원장 자격으로 초대받아 인사말을 부탁받은 필자는 포럼의 취지와 현황을 설명하고 참여와 협조를 부탁하면서 "호남의 21세기 비전은 호남인들이 '5.18 시민군', '동학 농민군' 정서를 넘어서 1300여년전 장보고의 꿈 해상왕국을 재건하는 주역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배 구호를 "호남이" "미래다"로 제안해 모두 함께 목청껏 구호를 외쳤다. 박수도 호응도 뜨거웠지만 참석자들이 진실로 호남의 미래와 스스로의 역할에 대해 구호처럼 자신감과 패기를 갖게 되었을지는 물론 알 수없다.

어쩌면 그 자리의 분위기를 벗어나자 마자 평상시의 패배의식과 회의로 되돌아가 "인구도 줄고 경제력도 바닥인 호남이 더 이상 자력으로 무엇을 할 수있겠느냐"고 체념과 자조를 되풀이 하는지도 모른다. 호남의 현실에 대한 객관적 지표와 상황에 대해 필자라고 달리 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매우 이성적인 것처럼 현실의 부정적인 측면과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강조하려는 태도와 주장은 경계하고 반대한다. 현실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도 받아들이는 태도는 다를 수있다. 아니 달라야 한다. 그래야 현실을 타개해 나갈 용기와 기회가 생긴다.

호남이 인구가 줄고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정치적으로 소외된 것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아는 일이다. 이를 근거로 현실을 비관하고 미래를 어둡게 얘기하는 것은 별달리 공부나 연구가 필요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야 어떻게 새로운 미래를 열 수있겠는가. 현실의 제약을 뛰어넘을 용기와 발상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런 점에서 현실을 정확히 아는 것이 미래개척의 필요조건이라면 현실을 초월하는 비전을 갖는 것은 충분조건이다.

오랜기간 회의와 부정과 투쟁과 울분과 고립감, 열패감에 시달려 온 호남의 경우 특히 듣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고 갑자기 가슴이 뛸만큼 원대하고 거창한 비전과 목표가 필요하다고 본다. '청해진 재건'은 그런 관점에서 평소의 생각을 제시한 것이다. 어떤 것이든 호남은 담대한 목표를 설정하고 과감하게 도전해야 한다. 이판사판의 각오로 덤비지 않으면 끝내 기회를 잡지 못하고 낙오할 수 있다.

반가왔던 것은 그날 저녁 자리에서 영암후배 가운데 영암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는 준비작업을 시작한 구림출신을 만난 일이다. 충남예산 외암 민속마을 등 여러 곳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데 자기고향 구림은 못지않은 자원을 갖고도 그런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직접 나섰다는 후배의 패기있는 모습에 '역시 영암출신이 좀 다르구나" 느낌이 새로왔다. 그에게 필자가 조언한 것은 등재 지역범위를 구림으로 좁히지 말고 장천리 선사유적부터 필자 고향인 장암의 회계장부 고문헌까지 영암전체로 넓히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었다. 선정까지 많은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발의가 있고 나면 성사는 시간문제 아닐까 한다. 꿈은 결국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호남의 새시대를 여는 기수가 영암이라는 긍지와 패기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색다른 과제에 도전해 영암인의 시야를 세계로, 미래로 넓히는 것도 영암다운 발상이 될 듯싶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참여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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