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열/신북면 용산리 출생/서강대학교 경영학부 교수/한국금융학회 회장/금융통화운영위원회 위원/서강대학교 부총장 역임

국어사전에 편견을 “공정하지 못하고 한 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라 설명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편견은 오해와 불신을 낳고 자신이나 자기가 속한 조직, 크게는 국가를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미국에서 유학할 때 24시간 여는 편의점에서 일 한 적이 있다. 외국 학생이기에 좋은 시간대는 얻지 못하고 밤 11시에서 7시까지 일하게 되었다. 어느 날 새벽 2시쯤 되었는데 몸 크기가 나보다 2배는 넘어 보이는 흑인 한 명이 들어왔다. 당시 밤에 편의점을 침범하여 돈을 훔쳐가고 때로는 점원을 살해하는 도둑이 있다는 보도가 종종 있을 때였다. ‘아! 나는 죽었구나.’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런데 그 흑인은 3달러를 내고 우유 한 병과 빵을 사서 나가는 것이 아닌가. 나의 속 좁은 편견에 얼마나 그 분에게 미안했는지 지금도 그 생각을 잊을 수없고 죄책감을 느낀다.

요즈음 주말 연속극 징비록이 인기를 끌고 있다. 위기 상황에 철저히 대비하자는 유성룡을 비롯한 대신들의 진언을 묵과하고 선조의 지나치게 명나라에 국운을 맡기려는 대명 의존심과 존명심도 따지고 보면 조선 백성과 조선군을 불신하는 지나친 편견의 발로라 여겨진다. 당시 조선은 유성룡, 이순신 같은 대신과 명장의 덕분에 운 좋게도 왜의 통치를 면하기는 했지만 그러한 사고의 연장선상에서 주체의식을 갖추지 못한 조선은 300년 지난 후 결국 일본의 지배를 당하는 비운을 겪게 된다.

국가 지도자의 편견이 국민 화합과 통합에 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이다. 대통령은 한 정파의 수장이 아니고 국민 전체의 지도자다. 선거과정에서 지지했던 아니던 당선이 되면 반대했던 사람도 자기 국민으로서 껴안고 포용하고 가야 화합이 됨은 기본 상식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아직도 정권이 바뀌면 과거 정부에서 일했던 사람, 자기를 지지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자기 사람이 아니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인사상 불이익을 줌으로써 국민화합을 해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며칠 전 6주기를 맞은 노무현 대통령 때의 일이다. 필자는 당시 국민경제자문위원과 규제개혁위원으로서 나름의 역할을 많이 하였다. 퇴임 직전 각종 위원들을 만찬에 초청하여 식사하고 마지막 한 사람 한 사람과 작별 인사하는데 나에게 "그동안 많이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걱정이 됩니다. 나를 도와주었다는 것 때문에 다음 정부에서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겠습니다." "대학 교수인데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고 답을 드렸다.

그런데 MB정부 들어 몇 차례 노 대통령이 우려했던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전문가로 보지 않고 '저 사람은 지난 정부 사람'이라는 편견의 결과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탕평, 대화합, 100% 국민행복시대 등 시대의 요청에 부응할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어 많은 국민들이 큰 기대를 하였다. 그러나 쓰는 사람들을 보면 철저하게 자기 구미에 맞는 사람, 특정대학, 특정지역에 편중된 것을 읽을 수있다. ‘의도는 아니었지만 전문가를 찾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기자회견 장에서 대통령의 답변이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저 사람은 내 사람이 아니야’라는 편견이 국민화합을 얼마나 깨뜨리고 있는가?

경선 과정에서 감정의 골이 깊었겠지만 당선 후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임명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이 왜 우리나라에서는 나타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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