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 통기타 동호인들의 스승 김철희씨

주5일 근무제 정착으로 저마다 자신만의 취미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최근 지역에는 7080세대들을 중심으로 통기타 동호인들이 점차 많아지면서 동호회도 많아졌다. 시나브로, 다섯손가락, 청춘기타 등 최근 2~3년 사이에 동호회도 잇따라 생겨나 이들 동호회에서 활동중인 회원들만 해도 100여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 100여명의 통기타 동호인들에게 기타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바로 시나브로에서 활동중인 김철희(57·사진)씨이다.

김 씨가 기타를 시작하게 된 것은 학창시절때로 거슬러올라간다.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아 거동이 다소 불편한 김 씨는 사춘기 시절부터 음악과 기타에 빠졌다. 우연한 기회에 형이 건네준 통기타를 계기로 기타에 빠져들었고 당시에는 기타를 가르쳐줄만한 사람도 없었기에 혼자 독학으로 배워야만 했다. 기타에 관련된 서적을 통해 이론을 공부하고 열심히 연습을 하며 기타를 배워 김 씨가 20살이 되던 해에는 기타로 공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갖추게 됐다.

몸이 불편해 취업에 어려움을 겪던 김 씨는 자신의 기타실력을 갖고 돈을 벌기 위해 야간업소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공연을 위한 기타를 구입하기 위해 악기가게를 찾았다가 상가주인의 권유로 기타지도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 때 악기가게에서 기타를 지도했던 경험으로 자신도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은 김 씨는 서울의 한 음악학원에 취직해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2년정도 근무하며 인맥을 쌓았고 이후 1986년에는 작은 규모의 음악학원을 인수해 자신이 직접 기타학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당시 1980년대에는 통기타 음악이 주를 이뤘던 시대였기 때문에 기타학원은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작은 규모의 학원에서 150명에게 아침부터 밤시간까지 기타를 지도했다. 이 때 벌었던 돈으로 작은 아파트를 구입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1990년대가 넘어가면서 통기타 음악에서 댄스음악으로 장르가 옮겨가면서 음악학원들이 잇따라 문을 닫기 시작했고 김 씨도 이를 피할수 없었다. 경제적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사업도 시작해봤지만 실패하면서 자신의 고향인 영암으로 돌아오게 됐다. 지난 2009년 영암으로 돌아온 김 씨는 자신의 특기인 기타를 살려 동네아이들에게 기타를 지도하기 시작했다. 이후 김 씨의 실력이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도포중, 영암중 등 관내 학교와 지역아동센터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때 자신이 가르친 첫 제자들이 동신대 실용음악과에 진학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09년 ‘시나브로’라는 이름의 그룹사운드가 탄생됐고 김 씨의 소문을 듣고 지역주민들이 기타를 가르쳐달라는 요청에 문화원의 장소제공으로 10여명의 주부들에게 기타강습을 시작했다. 얼마가지 않아 강습이 종료됐다. 이후 평소 음악을 좋아했던 김성대 회장의 적극적인 활동과 지원으로 영암군에서 최초로 통기타동호회 ‘영암군음악동호회’가 탄생됐다. 이후 김씨의 적극적인 지도로 2012년 12월 마지막날 통기타공연을 갖게 됐고 이 공연이후 관내에는 통기타 바람이 불게 됐다. 이 공연이후 영암군음악동호회는 시나브로로 이름을 바꾸고 1대 김성대 회장에서 2대 최문일 회장이 취임하게 됐다. 또 시나브로외에도 종합사회복지관을 중심으로 다섯손가락, 군청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청춘기타 등 통기타동호회가 잇따라 생겨났고 이들 동호인들의 기타실력 향상을 위해 김씨가 지도를 맡게 됐다. 김 씨를 중심으로 열심히 기타를 연습해 가을에는 통기타동호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통합연주회도 가질 예정이다.

김 씨는 “우연한 기회에 기타를 배우게 돼 지금까지 기타와 함께 인생을 살아왔다”며 “앞으로도 기타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나 환영하며 동호인들과 열심히 연습해 가을연주회때 멋진 공연을 군민들에게 선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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