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시종에 시집 온 딘티투이 씨노모 모시며 알뜰살뜰…주위 칭송 자자

시종면 효자길에 사는 베트남 며느리 딘티투이(30)씨는 효부 며느리로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다힘든 타국살이지만 한마디의 불평불만 없이 며느리이자 아내로서 때론 아이들의 엄마로서 바쁜 일과를 살아가는 딘티투이 씨의 가정을 찾았다.

지난 2005년 4월 박병호(52)씨에게 시집온 딘티투이씨는 홀로되신 고령의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셔온 것은 물론 벼농사로 바쁜 남편과 더불어 지역에 위치한 공장에서 일하며 2남을 두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결혼소개소를 통해 첫 만남을 가진 남편 박씨와 딘티투이씨는 우스갯소리로 첫 눈에 반해 결혼을 하고 부부의 연을 맺었다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가 고향인 딘티투이 씨에게 영암생활은 녹록치 않았다자신이 태어나 자랐던 생활환경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어와 문화적 차이로 인한 어려움이 가장 컸다하지만 90세 노모와 2명의 자녀를 살펴야 하는 딘티투이 씨로서는 한국생활에 빠르게 적응해야만 했다가장 급한 것은 한글이었다틈틈이 한글을 배웠지만 두 명의 아이들을 키우며 자연스럽게 한글을 접하면서 빠르게 한글과 한국말을 습득했다.

어느 정도 한국생활에 적응될 즈음 딘티투이씨는 농사일로 바쁜 남편의 무거운 어깨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지역의 김치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가사 일에 직장일까지 더해지면서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지만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것도 소홀하지 않았다

항상 당차고 부지런한 그녀이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고국을 떠나 홀로 타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젊은 여성에게는 쉽지않은 길이었다여기에 넉넉치 않은 살림에 자주 찾아갈 수 없는 고향생각에 눈물을 훔쳤던 적도 적지 않았다.

그때마다 자신을 일으켜 세워준 것은 남편과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어나 준 현빈(10)군과 현웅(9)군이 외롭고 지칠 법한 한국생활에 활력소가 되었다딘티투이씨가 한국생활에 점차적으로 적응해 나가면서 그에 대한 칭송도 높아졌다.

  

올해 면민의 날, '효부상수상

또 60·70대가 많은 시골마을에서 30대의 딘티투이씨가 할 일은 너무나 많았다이 때문에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은 자신의 일로 여기며 마을에 발생하는 문제를 마치 내 일처럼 해결하고 마을을 위한 일에 앞장서서 솔선수범하면서 똑 소리나는 영암댁으로 정평이 날 정도다이런 저런 마을 일에 귀찮을 법도 하지만 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마을 어르신들에게도 예쁨을 독차지하고 있다

부지런하고 억척스러운 모습에 지난해에는 마을주민의 소개로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있는 한 젓갈 공장에 직장을 옮기면서 금전적시간적으로 조금의 여유가 생겨 지난 3월에는 자동차면허증도 취득했다그리고 지난 17일 시종면민의 날에는 효부상을 받으며 현대판 심청이로 인정을 받았다.

약 10여년의 한국생활에 대해 묻자 딘티투이씨는 한국에 시집와서 가장 좋았던 적은 첫째 아들 현빈이를 임신하고 첫 눈을 봤을 때가 지금도 잊지 못한다며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4계절이 있고 가족들이 있는 한국생활이 너무나 좋다고 했다.

남편 박병호씨는 이런 딘디투이씨를 예쁜 듯 쳐다본다평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않는 무뚝뚝한 남편이지만 노모와 자식들을 알뜰살뜰 살피는 아내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고맙고 소중하다는 마음이 다 들어 있다또 바쁘고 빠듯한 살림에 결혼하고 10여년 동안 가족끼리 가까운 나들이를 못한 것이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박씨이다

딘티투이 씨는 가족이 생겨 병간호하랴 아이들 보살피랴 몸은 힘들지만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정을 줘 감사하고 기쁘다며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고 돈도 많이 벌어 고향에 다녀오는 게 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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