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호 장암출생
영암을 대표하는 역사인물 둘을 꼽으라면 왕인박사와 도선국사다. 한 분은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한 문명의 전도사, 한 분은 한국 풍수지리학의 종조. 5백년 가량의 시차를 두고 영암에서 태어나 한 시대를 풍미하고 돌아간 두 분은 월출산과 함께 고향의 후생들에게 영감을 주고 긍지를 느끼게 하는큰바위 얼굴들이다.

두 분 다 구림이 연고지라서 탄생 등 설화와 관련한 혼동이 있고 이때문에 빚어진 갈등과 논란이 아직도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영암 입장에서는 두 분 모두를 역사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지혜와 노력이 당연히 필요하다.

왕인박사의 경우 설화를 토대로 이른바 성역화 시설이 들어섰다. 올해로 열여덟 번째를 맞는 축제까지 이어져 지역브랜드로 어느정도 활용이 되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주 막을 내린 올해 축제에는 1백만 이상의 인파가 몰렸다니 행사도 정착단계에 들어선 셈이다.

아쉬운 것은 도선 국사다. 2006년부터 도갑사가도선국사 문화예술제를 기획해 매년 10월 행사를 갖고 있다곤 하지만 왕인축제에 비하면 규모도 작고 알려지지도 않았다. 도선국사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대접받는 이유와 배경이 무엇이든 재고할 때가 됐다. 왕인박사와 나란히 도선국사를 지역의 상징인물로 띄우고 발전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도선국사가 왕인박사보다 세계인에게 더 어필할 수도 있다.

왕인박사는 중국에 지적 소유권이 있는 천자문과 논어를 일본에 전해 동양3국의 문명교류를 상징하는 아시아의 인물인데 비해 도선국사는 자생 지리학을 독창적으로 발전시켜 아시아를 뛰어넘는 학문의 종조가 되고 지금도 제자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선국사를 띄우려면 풍수지리학이풍수도참이란 하나의 술어로 묶여 전근대의미신으로 치부되는 상황을 우리 고장에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동시에 풍수가 미신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의 여러 행태들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서구 과학으로도 납득할 수준까지 연구를 끌어올려 풍수학의 세계화를 해 나가야 한다.

풍수는 서구학문의 기준으로는 불합리한 미신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깊이 이해하면 서구과학의 논리와 지평을 뛰어넘는 초()과학이다. 크게는 국토계획부터 작게는 집안의 가구배치에 이르기까지 생활의 전 영역에 걸친 공간인식과 활용의 경험지혜를 집대성한 이론이다.

우주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면서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존재를 자각함과 동시에 생활을 자연계의 순환과 일치시켜 행복과 번영을 얻으려는 노력은 시대를 초월해 공감할 수있다.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이 자연과 하나가 될 때 개인은 건강하고 행복하고 공동체는 오래 번영할 수있다는 깨달음은 서구의 과학으로도 이해가 가능한 사유의 세계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동시 진행되면서 전국에서 난개발이 자행돼 세계의 전문가들로부터 부정적 의미로 연구대상이 된 우리 국토공간의 현 상황을 돌아볼 때 도선국사의 풍수이론은 시대의 특효약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멀리 갈 것 없다. 영암의 생활공간 구조와 경관이 어떤 상태인지 돌아보면 이해가 빠르다.

지난번 칼럼에서도 언급했듯이 읍내를 포함한 영암 전역의 마을과 도로, 각종 시설은 깊은 생각없이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질서도 맥락도 효율도 무시된 이런 공간에서 인간은 길게 깊고 큰 영향을 받는다. 길이 비뚤어진 만큼 마음이 꼬일 수있다는 것은 엄연한 과학이다.

한마디로 풍수에 어긋나면 일이 순리대로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고 행복하기도 어렵다. 길을 하나 뚫어도, 집을 하나 지어도, 자연에 합치되려는 노력을 영암서부터 이제라도 시작하면 어떨까. 개발에 풍수지혜를 접목하는 수준높은 심의기구 부터 구성해야 할 것이다.

건축을 하는 사람들은 땅에는 저마다의 무늬가 있다고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늬를 읽어내고 그에 맞는 집을 짓는 것이 제대로 된 건축이라고 말할 때 그것이 바로 풍수다. 난개발로 병든 지구촌을 다시 살려낸다는 차원에서 도선국사와 풍수를 세계에 알려야 한다.

연구홍보의 거점이 될 박물관을 짓고 봄에는 왕인박사, 가을에는 도선국사를 주인공으로 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 관광객을 집중 유치하는 국제수준 축제 연계진행 검토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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