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1일 토요일 오후 설명절 이틀 후다. 순천향병원의 김종필 전 총리 아내 박영옥 여사의 병실에는 주치의가 박여사의 임종을 알려왔다. 김 전총리와 딸 예리씨, 아들 진씨등 친인척들은 갑자기 통곡의 울음소리로 병실을 매웠다. 영원한 이별의 순간 구순(九旬)의 남편은 아내의 오른손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

임종의 순간 자신의 주머니 속에서 꺼낸 목걸이를 아내의 목에 걸어 주었다. 64년 전 결혼식장에서 나누어 꼈던 금반지로 만든 목걸이였다. 아내의 숨이 멈춘 순간 여보! 멀지 않은 장래에 갈테니까 외로워말고 잘 쉬어요.” 그러면서 아내에게 마지막 입맞춤을 했다. 가족들은 이 순간 더 큰 울음 바다가 되었다. 김종필 전 총리의 부인 박영옥 여사는 이날 오후 843분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86세 지난해 8월 척추 협착증과 요도암 진단을 받고 6개월 동안 투병했다. 필자는 1989KBS정치부 차장으로 국회와 신민주공화당 출입기자로 기자단 간사를 맡았다. 김종필 총재와 3년간 취재한 인연으로 교수가 된 지금까지 26년째 교분을 갖고 있다. 이 때는 노태우 대통령 집권 2년째로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 평화민주당 김대중 총재,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총재 등 3김시대의 전성기였다.

그 당시 정치적 이슈는 노태우 대통령 중간평가 5공청산 광주 민주화운동 후속문제 3당통합 문제 등이었다. 김종필 총재는 매일 아침 청구동 자택에서 출입기자들에게 해박한 지식으로 덕담을 자주 나누었고 정치9단의 실력을 발휘해 당시 정치 현안들을 자신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 정치문제를 쉽게 풀어간 사례도 많았다.

이른 아침부터 매일 자택을 찾아오는 20여명의 기자들에게 박영옥 여사는 젊은 사람들이 아침을 안먹으면 건강을 크게 해친다며 우유와 맛있는 빵등 푸짐한 음식을 잘 챙겨주어 기자들은 따뜻하고 인자한 모정을 느끼기도 했다. 박영옥 여사의 서울 아산병원 빈소는 5일장내내 여야 구분없이 현대사의 중요한 장면들이 복원되었다. 정치9JP의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정치훈수가 따라붙었다.

하루 8~10시간 빈소를 지킨 JP는 박근혜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이휘호 김대중 대통령 부인등 많은 조문객들에게 일일이 안부를 물으며 덕담을 나누었다. 그러다가 후배 정치인들에게는 정치훈수를 두었다. 이완구 국무총리에게는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여성이고 섬세하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할말이 있으면 조용히 건의드리고 밖에서는 자랑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는 걸음걸이부터 언사까지 여유가 있어 좋다. 대통령은 외롭고 고독한 자리인데 잘 좀 도와 드리십시오라고 부탁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게는 대통령 단임제는 큰 일을 못한다. 내각책임제는 국정운영을 잘하면 2017년에도 계속할 수있다고 조언했다. 이밖에 많은 후배 정치인들에게는 정치를 잘 하면 열매는 국민이 대신 따먹고 정치는 허업(虛業)”이라며 정치인은 국민을 호랑이로 알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325일 이른아침 서울 아산병원에서 박영옥 여사의 안장식을 마쳤다. 운구행열은 친인척 등 조문객 100여명과 함께 청구동 자택에서 노제(路祭)를 지냈다. 김 전총리는 부인에게 마지막 술잔을 올리고 영정사진을 만지면서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추모공원에서 화장을 마친 뒤 오후에 김 전총리의 고향인 충남 부여 선영 김해김씨 가족묘원에 안장되었다. 김 전총리는 집사람과 같은 자리에 눕기 위해 자신은 국립묘지로 가지 않기로 했다며 유택에 세워둔 묘비에 손수 비문을 새겼다. 이 비문에는내조의 덕을 베풀어 준 영세반려(永世伴侶)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고 되어 있다. 90세의 김 전총리 아내 사랑은 최근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크게 흥행했던 영화 님아 저 강을 건너지 마오를 연상시킨다. 이 영화에서 76년간 오순도순 살아온 98세의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의 강계열 할머니의 주인공처럼 김종필 전총리의 부부사랑이 100세 시대의 많은 우리 부부들에게 큰 귀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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