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병 호
필자가 중앙일보 기자로 내무부를 출입하던 80년대 중반 어느날 서울 광화문 정부총합청사 내무부 복도에서 보자기에 서류 뭉텅이를 싸들고 이리저리 방을 찾는 일행과 마주쳤다. 지방에서 온 분들 같아서 필자가 어떻게 오셨느냐고 묻자 전남 영암에서 내무부 지방행정국장에게 지역민의 서명부를 전달하러 왔다는 답이었다.

알고보니 하대주 회장을 비롯한 영암유지들이 당시 논란이 되던 대불공단과 삼호면 일대의 목포 편입을 저지하기 위해 군민들의 서명을 모아 서울까지 들고온 것이었다. 영암출신이라고 밝히고 지방행정국장 방에 안내해 예기찮은 고향 민원접수를 돕게 됐다. 유지분들은 하늘과 땅이 생긴 뒤 영암과 목포는 영산강을 사이에 둔 다른 고을이다. 이를 인위적으로 쪼개고 합치려는 것은 하늘을 거역하는 일이라고 완강한 반대의사를 밝혔다.

필자도 영암군민들의 의사에 어긋나는 행정구역 개편은 안 된다고 거들 수밖에 없었다.

역시 그 무렵의 일이다. “정신약국 주변 관통도로 개설이 숙원사업인데 예산이 없다는 당시 군수님의 호소를 듣고 내무부를 함께 출입하던 영보 출신인 연합통신 최정 선배와 의논 끝에 장관에게 특청을 해 특별교부 지원금으로 국비 5억 원을 보낼 수있었다. 나중에 보니 도로는 개설됐는데 기대했던 직통로가 아니었다. 굽은 간선도로에 실망이 컸다.

오래전 얘기를 다시 꺼내는 까닭은 당시 논란이 됐던 현안이 실은 아직 미결이고 지역사회의 정책시행 구조 또한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에서다.

그 무렵의 행정구역 개편논의는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전국이 하루 생활권이 된 상황에서 중앙-시도-시 군구 3단계 행정체계는 비효율이다. 농어촌 인구의 급감, 재정자립의 어려움도 전국 공통현상이다. 언제 논의가 재연돼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모른다.

영암읍의 상주인구가 1만 명 아래로 떨어졌고 계속 준다고 한다.

삼호조선과 대불공단 덕에 당장의 형편이 다른 고장보다 조금 낫긴 하지만 삼호지역을 뺀 역량으로 보면 영암도 존립의 위기에 당면한 셈이다. 전체 지역이 고르게 활기를 유지하고 발전동력을 키워갈 수있는 긴 안목에서의 군세 유지 내지 확장대책이 필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영암전역 재개발 구상을 제안한다. 지금이 그 실행의 적기라고 본다.

현재의 농어촌 마을들은 소를 부려 농사를 짓고 지게로 짐을 나르던 시절에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구조가 그대로다. 트랙터와 콤바인으로 농사를 짓고 자동차와 오토바이로 운반, 이동하는 현재의 여건과는 맞지 않는다. 개량에는 한계가 있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남은 노인들이 한분 두분 돌아가시면서 빈집이 늘고 사실상 마을이 사라져가는 추세도 돌이키기 어렵다.

벼농사는 대형 농기계를 다룰 줄 아는 소수 젊은이들 손에 이미 넘겨졌고 다른 소득원이 거의 없는 마을에 흘러드는 외지인 들은 전통과 무관하다. 이런 상황에 근본적인 대처가 필요하고 영암에서 부터 도전해 보자는 제안이다.

자연취락 가운데 자생력이 있거나 특별한 보존가치가 있는 마을을 남기고 나머지는 거점 중심으로 과감한 통폐합을 해야 한다. 입지 조건상 자생기반을 갖출 수있는 마을이 거점이다. 1차로 면소재지 마을이 대상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보고 한 군데를 선정해 시범사업을 성공시킨뒤 점차 확대하는 방식이 어떨까 한다.

최소한의 문화, 복지서비스 공급이 가능한 규모로 현대적 기반시설을 갖춘 새로운 개념의 마을 공동체를 창조해 내는 것이 과제다. 마을 통폐합과 함께 경지도 3~3만 평 규모로 재정리해 실제 경작면적을 늘리고 관리비용을 줄여 경쟁력을 높이면서 요즘 거론되는 농업의 6차산업화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여러 여건을 종합할 때 관광과 첨단농업의 결합이 영암의 미래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국립공원 월출산을 둘러싼 자연경관과 역사문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관광서비스의 혁신과 확대에서부터 영암개조의 불을 댕겼으면 한다.

출향인사 중 연관분야 전문가를 포함한 전체 영암인의 능력을 총결집한 사업이 되어야만 정신약국 주변 등 난삽한 영암읍 도로망이 보여주는 것 같은 지역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에 형성된 마을과 도시를 바꾸는 일은 꼭 필요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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