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병 호 영암읍 장암 출생 호남미래포럼 선임운영위원 전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대표 국가인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
속담에 ‘못되면 조상 탓’ 이란 말이 있다. 그에 대한 대구(對句)로 ‘잘되면 제 복’이란 말을 붙여 쓰기도 한다. 그런 정서는 지금도 이어져 “부모를 잘 못 만나서” “고향을 잘 못 타고나서” 자신의 처지가 뜻같이 풀리지 않는다는 취지의 이야기들을 농반 진반으로 한다. 
지역차별이란 이름으로 현실에서 호남에 대한 견제가 아직 있는 것이 사실이기에 호남인들에게는 이 말이 꼭 틀렸다고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긴 하다. 그럼에도 을미년 새해 첫 컬럼 소재를 이런 주제로 잡은 까닭은 그보다는 좀 더 근원적인 성찰을 해보자는 뜻에서다.
이웃 나주 출신으로 금호 그룹을 창업한 고 박인천 회장(1901~1984)은 쉰 살이 다 된 1948년 공직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이제 그만 쉴 나이에 무슨 사업이냐”고 말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은 태어나서 세 단계 인생을 산다. 25살 까지는 부모가 만들어 주는 삶이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면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다. 그 이후 50세 까지의 삶은 부모의 힘이 반이고 반은 자기 능력이다. 좋은 배우자를 찾고 직장에서 승진하고 사회에서 인정을 받는 일들이다. 50을 넘으면 온전히 자신의 능력과 선택만으로 결과가 평가되는 자기 인생이다. 나는 이제 내 인생을 시작하려 한다”
후생들에게 용기와 감명을 주는 일화로 전해 오고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부모는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다. 고향도, 모국도, 시대도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조건이다. 결국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서 25세부터 자기 삶을 모색해 50세 이후 온전히 자신의 실력으로 평가받는 것뿐이다. 개인차가  있지만 인생경영의 표준 모델, 최대공약수가 되는 셈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경구처럼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조건이라면 그 것을 받아들여 자기발전의 동력으로 활용하는 선택 밖에 없다. 여기서 사람의 운명이 갈린다.
누군가는 가난 때문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가난이 동력이 되어 세계적 기업을 일구기도 한다. 권위적인 부모에 주눅 들거나 피해 다니는 선택도 있지만 누구는 놀라운 유연성과 포용력을 길러 큰 리더가 되기도 한다. 용렬한 남편이나 악처는 일생의 굴레가 되는 것이 보통이나 드물게는 남모를 인생의 진미를 맛보게 하고 더 큰 성취를 이루는 위장된 축복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진리를 압축한 표현이 ‘일체 유심조’다. 모든 것이 생각하기에 달렸고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부처님의 깨우침이자 가르침이다.  
이 같은 각성을 전제하면 조상들에게는 감사 밖에는 할 일이 없다. 탓을 할 대상은 오직 자기 뿐이다. 이것이 어른의 마음이다. 자기 아닌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 생각이 한 구석에라도 남아 있다면 나이가 몇이든, 겉모양이 어떻든 아직 미성숙한 아이다.
올해는 해방 70년이 되는 해다. 국민 개개인이 어른이 되어야 국가 사회도 어른이 된다.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롭기 위해 서로 서로 어른 되기를 다짐하는 뜻에서 올 설에는 마음속으로 이런 구호를 외쳐보면 어떨까.
“조상님 감사 합니다. 잘 된 것은 다 조상님 덕이고 잘못된 것은 모두 제 탓입니다.”
세상에 올 때 우리 모든 것은 부모님을 통해 조상들로 부터 받았고 이승에 태어남 자체가 “기적 같은 축복”이니 조상에 대한 감사를 부모에게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이 있겠는가. 부모의 그늘을 벗어난 어른으로서의 독립된 자기 인생이 바로 거기서 시작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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