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재 홍 정치학 박사 서호면 몽해리 아천 출신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초빙교수 가나문화콘텐츠그룹 부회장
늦은 가을 아침, 구르는 낙엽들을 밟으며 산길을 걸었다. 곧 흰 눈이 내리고 찬바람이 몰아치는 차디찬 겨울이 성큼 다가올 것 같았다. 이제 곧 겨울이 온다. 겨울이 오면 한 해가 또 간다. 자연의 사계절은 자꾸만 되풀이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은 원점에서 시작하여 다시 되풀이 되니 서글플 것이 전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처럼 되풀이 되는 삶이 아니다. 한번 가면 영원히 되돌아오지 않는 삶이다. 그래서 자연과 달리 서글픔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필자는 올 한 해가 가면 젊어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칠십의 나이가 목덜미를 잡을 것 같다. 새삼 나이에 대한 공포감으로 초조해진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정말 100세 시대를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초·중·고·대학 동창생 모임과 30여 년 근무했던 퇴직 방송기자 모임 그리고 각종 친선단체 모임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점이 있다. 필자는 아직 젊다고 크게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각종 모임에서의 흰머리에 주름살이 크게 늘어나고 힘이 없는 노인이 된 동료들의 실상을 자주 보게 된다. 그 동안 늙지 않았다고 크게 자부했던 필자도‘아! 이제 나도 늙었구나’하는 생각을 이제야 깨달아 충격을 받기도 한다. 100세까지 건강하게 잘 산다는 것은 꿈이요 희망일 뿐 잘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보면 노인의 이미지가 그렇게 슬픈 것만은 아니다. 아주 긍정적인 면도 있다. 동양에서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노숙(老熟:오랜 경험으로 익숙함)이라고 했다. 또 노련(老練:오랜 경험으로 능숙함)이라 하여 노인의 긍정적 이미지와 연결시켰다. 100세 장수가 현실화되고 있는 지금 노인의 이미지와 역할이 새삼 관심사가 되고 있다. 즉 노인은 노숙하고 노련한 존재로 가치와 역할을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황희(黃喜 1363-1452)는 69세에 영의정에 올라 88세까지 20년간 현직에 머물렀다. 좌의정을 지낸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은 80세에 좌의정에 임명되었다. 남인(南人)의 영수인 허목(許穆 1595-1682)은 84세까지 판중추부사 벼슬을 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75세에 정승이 된 심수경(沈守慶 1516-1599)은 75세에 아들을 낳은 뒤 이어 81세에 또 둘째 아들을 낳아 장수무병을 과시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장수 인물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키고 정묘·병자호란까지 겪었던 이약(李?1572-1689)으로 118세까지 장수했다. 이와는 달리 조선 519년동안 국왕의 수명은 장수했던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단명했다. 조선국왕 27명 가운데 환갑을 넘긴 왕은 다섯 명 뿐이었다. 태조 74세, 정종 63세, 광해군 67세, 영조 83세, 고종 68세이다. 54세까지 산 세종은 밥상에 고기가 없으면 식사를 하지 않는 육식애호가다. 운동을 전혀 하지않아 비만으로 이어져 당뇨와 관절통에 시달리다 단명했다. 반면 83세까지 장수한 영조는 김치와 장(醬, 간장·된장)만으로 밥을 먹는 등 소박한 서민적 식단을 즐겨 장수했다고 한다.
결국 나이가 든다는 것은 덕이 깊어지고 성숙해 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죽음도 인간의 성숙이 완결된 상태라고 할 수있다. 노환은 심신이 노후해서 쓸모없는 과정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자아(自我)의 완성이 군자(君子)로 가는 여정(餘情)이라고 한다. 100세 시대의 나이 듦은 삶을 완결하는 새롭고 참다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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