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17일(제157호)

▲ 본사 대표이사 발행인

 어느덧 9월도 반이 지나 가을이 완연하다. 농촌들녘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피어나 있고, 태풍을 이겨낸 벼이삭의 누런빛은 풍요로움을 안겨다 준다. 얼마 있으면 추석. 수년전만 해도 가을걷이를 끝내고 한판 늘어지게 놀아봤음직한 10월이 저만큼 다가서 있다. 하지만 예전의 그 풍요로움과 여유는 온데 간데 없고 가을 하늘엔 먹구름만 잔뜩 끼었다. 사상 최악의 수해를 극복하고 오롯이 자란 벼이삭의 씩씩한 모습도 농민들의 아픈 가슴을 달래기엔 역부족이다. 정부에선 올해 추곡수매가를 내리고, 내년부턴 아예 추곡 수매제를 폐지하겠다고 언론에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 몰린 농민들이 가만히 앉아 당할 리 만무하다. 정부가 그나마 농민을 보호해왔던 빗장을 완전히 걷어버리겠다고 나선만큼 그 저항이 만만치 않다. 전국에서농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민중봉기’에 나서고 있지만 힘없는 그들의 외침은 한낱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고도 정부에선 수도권 규제완화라는 정책을 발표, 농촌 주민들에게 또 다른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포화상태에 있는 수도권의 인구 억제를 위해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극약처방까지 내놓은 마당에 ‘규제완화’는 앞뒤가 맞지 않은 정책으로 비쳐진다. 더구나 ‘지역균형발전’을 외쳐대고 있는 정부가 국가경쟁력이라는 미명하에 공장들이 들어설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지방 공동화를 더욱 가속화 시킬 것임이 자명하다. 한 통계에 의하면 지난 일년 동안 서울에 집 한 채를 갖고 있는 봉급자가 불과 일 년 사이 자신이 받았던 연봉만큼이나 집값이 뛰었다고 한다. 그나마 수천만 원을 받고 있는 고액 연봉자가 연봉외 부수입이 그만큼 올랐으니 농촌지역 주민들 입장에선 입이 딱 벌어질 일이다. 당연히 소득격차는 갈수록 키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정부가 농민을 대하는 꼴을 보자. 쌀 농사가 주 수입원인 농민들의 입장에선 쌀 개방이 가져다 줄 파급효과를 감안,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절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라는 곳은 개방의 불가피성을 내세워 농민들의 피맺힌 외침을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책이라 해봤자 실효성도 없이 막대한 예산만 낭비한 채 농민들에게 부채만 더 안겨주고 불신만 키워왔지 않는가. 지금까지도 갈피를 못잡고 우왕좌왕하는 꼴은 앞으로 그 댓가를 얼마만큼 치러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지 막막하다.

피폐해진 농촌생활은 지역경제에도 영향을 미쳐 갈수록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빈 상가는 늘어만 가고 소비는 계속 둔화되면서 투자를 꺼리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광주 등 도시 변두리가 아파트 건축으로 계속 확장일로에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영암군이 ‘지역경제 살리기’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범군민 운동으로 확산시켜 나가려는 것도 바로 이같은 현실을 계속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됐다고 여겨진다. 때문에 기왕 시작한 일인 만큼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치밀한 대책과 강력한 추진력이 요구된다. 지역제품 사주기, 내 고장에서 생활하기 등 지역경제 살리기 운동이 꼭 이번만은 아님을 상기해 볼 때 또다시 일과성에 그치는 행사로 전락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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