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22일(제1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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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나라 元帝때 毛延壽라는 궁중 畵工이 있었다. 초상화에 능했다. 元帝는 그러한 毛로 하여금 궁녀들의 얼굴을 그려 바치게 해서 그중 마음에 드는 여인을 불러 총애하곤 했다. 궁녀들은 앞다퉈 毛에게 뇌물을 바쳤다. 예쁘게 그려달라는 청탁이었다. 하지만 王昭君이라는 궁인만은 뇌물을 건네주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이 예쁘게 그려질 턱이 없었다. 마침 漢나라는 흉노와 화친을 위해 궁녀 한사람을 그곳에 시집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밉상을 골라 보내는 것은 정한 이치. 마침내 그림을 보고 고른 여인이 王昭君이었다. 元帝가 시집보내기 전 王昭君을 불렀다. 그런데 그녀가 그림과는 달리 절세가인임을 알게 되었다. 약속을 깨뜨릴 수가 없어서 王昭君을 그대로 흉노 땅에 보내긴 했지만 元帝는 노여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畵工 毛延壽의 목이 베어져 나갔다. 이태백의 유명한 五言詩 ‘王昭君’의 이면에 숨겨진 일화다. 뇌물 좋아하면 죽는다는 이야기다.

옛날 일본의 어느 가난한 무사가 어린 아들과 단둘이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무사가 나들이에서 돌아와 보니 옆집 떡 가게의 노파가 아들을 다그치고 있었다. 떡을 훔쳐 먹었다고 했다. 아들은 결코 그런 일이 없었노라고 울면서 억울해 했다. 무사는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물었다. 아들은 그때마다 결백을 다짐했다. 노파는 계속해서 떡을 훔치는 것을 분명히 보았노라고 우겨댔다. 무사는 마침내 칼을 뽑았다. 그리고 자식의 배를 갈랐다. “자, 보시오. 떡이 있는가 없는가를!” 끔찍한 이야기다. 극단이 낳은 비극이지만 일본 사람들에겐 곧잘 입에 오르내리는 얘기다. “아무리한들 자식을 죽여서까지야...” 정상의 논리로는 도저해 이해할 수 없는 우직한 폭거(暴擧)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가치관 나름이다.

명예를 중시하는 武士道에겐 ‘正直’이상의 더 중요한 가치관은 없었을 것이다. 최근 안상수 인천시장의 ‘굴비상자’가 국민들의 머릿속을 오랫동안 헤집고 있다. 전남의 한 중견건설업체 사장이 보낸 것으로 밝혀진 이 상자 안에는 굴비 대신 2억 원의 현금이 들어있었다. 처음 굴비상자를 신고한 안시장은 ‘청렴성’이 부각되면서 영웅이 된 듯 싶었다. 하지만 잦은 말 바꾸기가 드러나면서 추락의 길을 걷더니 최근에는 뇌물수수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는 처지에 이르게 됐다. 안시장이 굴비상자를 포장한 보자기를 바꿔치기한 사실과 일면식도 없다던 뇌물공여자와 구속직전까지 통화한 사실까지 추가로 밝혀졌다. 그런데 안시장이 소속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최근 국감장에서까지 야당탄압 운운하며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안시장에 대한 수사가 수도이건에 반대하는 지자체장에 대한 탄압이라는 것이다. 도대체가 무엇이 ‘탄압’이고 ‘정략’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뿐더러 안시장의 처신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자진신고는 무엇 때문에 했으며, 잦은 말바꾸기의 정체는 무엇인지 복마전을 보는 듯하다. 뇌물을 신고한 사람에게 정부에서 포상이라도 내릴 법한데 감옥행에 직면하게 됐으니 도무지 아리송할 뿐이다. 하지만 딱 한가지, 배를 갈라 보일 수는 없으되 뇌물 좋아하면 죽는다는 사실은 영원한 진리임을 또 한번 터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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