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종 희(사도요한) 영암성당 주임신부 철학박사 광주카톨릭대학 교수 목포카톨릭대학 총장
이번 봄은 꽃들의 큰 잔치였던 것 같습니다. 시간차를 두고 피어야 할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서 들과 산이 온통 꽃으로 뒤덮인 것 같았습니다. 진달래, 동백, 목련, 개나리, 벚꽃 그리고 배꽃까지 이어서 피어 눈길을 어디 둬야할지 행복한 봄 시간이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산하, 사람도 이렇게 아름다웠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생각의 독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좁고 이기적인 생각들 때문에 다르고 독특한 생각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지 못함을 일컫는 말입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는 축제를 지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사형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죽음에 머물지 않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당신의 메시지가 하느님의 말씀임을 입증하셨습니다. 왜 유다인들은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생각의 독재 때문이었습니다. 예수가 전한 말씀이 백성의 지도자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였죠.
다름이 틀림이라는 생각, 인간의 역사 안에서 다름이 틀림이란 생각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난과 핍박을 받고 생명을 빼앗겼는지 모릅니다. 정치는 물론 종교 안에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었지요. 이 종교적 사고의 독재가 깨어지는데 6백년이란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정치적 사고의 독재, 종교적 독재처럼 무서운 결과를 빗어내지요. 우리 근현대사에서 너무 진하게 체험한 일들 아닙니까?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정치적 독재가 시작되었고 결국 불행한 결말을 보고 말았지요. 참 무서운 것이 이 생각의 독재입니다. 중세 라틴어 속담에 “이 세상에서 제일 경계해야 할 사람은 책을 딱 한 권만 읽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책 한 권에서 얻은 생각과 지식이 다 라고 생각하고 다른 것들은 다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사람이란 뜻 아닐까요?
귀가 둘, 눈이 둘, 코에 구멍도 둘, 많이 듣고 보고 맡아서 풍부하게 받아들이고 입은 하나니 적게 내 뱉으라는 의미랍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어떨까요? 특정 계층에게 자기들 생각과 다른 생각들이 배려받고 있을까? 자기 생각만이 옳고 다른 의견이나 생각은 틀린 것이라 여기고 찍어내고 몰아부치고 제거하려고 하면 새로운 경지에로 발전은 접어야겠죠? 현 정치와 경제계 안에서 여러 새로운 의견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최저임금제가 있으니 최고임금도 제한하자, 국정원의 여러 문제들을 쇄신하는 작업을 시행하자, 젊은 이들의 일자리를 위한 여러 방법이 제안되고, 노인과 장애인들을 위한 새로운 정책들이 나와도 정작 받아들여 시행할 사람들은 마이동풍 소귀에 경읽기 격이니. 생각의 독재, 생각할수록 무섭습니다. 그렇게 굳어진 생각들이 현실로 옮겨지면 어떨까요? 이런 생각을 가진 지도자들이 이끌어 가는 사회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참 불행할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으로 닫힌 마음이 열리는 부활이 되었으면…. 이번 부활대축일을 맞이하면서 더 절실하게 사람들 앞에서 이끄는 직분을 맡으신 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부활하시라고. 소통은 생명입니다. 소통의 욕구가 얼마나 본능적인지. 그래서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부르지요. 사회성은 공통체로 결성되고 공동체는 소통으로 살아가고 발전해 가지요. 소통이 없는 사회는 죽어가는 사회, 공통체 구성원 간의 소통, 지도자와 백성들 간의 소통, 나아가서는 인간과 하느님과의 소통, 소통으로 살고 소통으로 커나갑니다.
닫힌 돌무덤을 열고 부활하신 주님. 우리 사회도 닫혀있는 가슴의 돌들을 굴려내 활짝 펼친 소통 속에 살게 해주십시오. 남과 북, 정치가와 국민, 사업가와 노동자, 갑과 을,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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