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 홍 서호면 몽해리 출생 장천초등학교 졸업 전 목포교육장 전 전남교육청 장학관
나는 노래방엘 자주 간다.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마음이 울적해지는 날, 대부분 아내와 노래방엘 간다. 한 시간 남짓 소리를 지르다 보면 온몸에 땀이 베이고 새로운 분위기가 찾아온다. 에너지도 176㎉정도가 소진되어 곁들여 성인병을 다스리는 효과도 거두는 셈이다.
노래방에 들어간 사람들은 대부분 부를 노래를 생각하고 노래방 책에서 번호를 찾는다. 그러다 뜻대로 되지않아 분위기를 망쳐버리는 경우가 있다.  어르신을 뫼시고 가는 경우 번호를 찾다 고조되어가는 흥겨움을 반감시켜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점수라도 딸 요량이었다면 더더욱 난감해지는 것은 뻔하다. 조명은 어둡고, 글씨는 작고, 또 누군가 노래방책을 찢어버려 찾는 노래가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재빨리 찾았다 하더라도 같은 곡명의 노래가 하도많아 바라는 노래가 아닌 번호가 눌러지기도 한다. ‘사랑’만하더라도 나훈아의 사랑부터 시작해 임재범의 사랑까지 열세 곡이나 되고, ‘당신’도 배호부터 김경남까지 다섯 곡이나 된다. ‘상처’의 경우는 무려 열여섯 곡이나 된다.
그래 나는 반대로 생각했다. 늘 기억되는 번호, 예를 들자면, 516이나 518같은 번호에 무슨 노래가 담겨있는 가를 알아봐, 도저히 부를 수 없는 노래라면 모를까, 웬만하면 익혀서 불러버리면 될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예정에 없이 어쩌다 한번 노래방엘 가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하필 그 날이 운명의 날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평소 잘 외우던 번호도 잊어 버리고 책을 뒤지다 보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흘러가고 분위기가 가라앉아 여흥이 끝나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어떻게 맞은 기회인데 후회막급임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 후 나는 그냥 생각나는 국가적인 숫자에 무슨 노래가 저장되어 있는가를 알아내 그 노래를 몇곡 연습해두었다. 가령 4·19혁명 기념일은 문성재가 부른 ‘부산갈매기’다. 그렇게 하여 나와는 인연이 없는 부산갈매기를 배워두었고, 얼른 생각이 나지 않을 때면 419번을 눌러 부산갈매기를 불렀다. 노래를 잘 부르는 것보다 분위기를 깨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처님 오신 날인 사월 초파일을 나타내는 408번에는 민혜경의 ‘보고싶은 얼굴’이고, 성탄절인 1225번에는 조미미의 ‘여자의 꿈’이다. 기미 독립선언일인 301에는 정종숙의 ‘둘이 걸었네’가, 메이데이로 불리는 501에는 이승철의 ‘소녀시대’가, 어버이날인 508에는 백영규의 ‘슬픈계절에 만나요’가, 학생독립기념일인 1103에는 이광조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들어있다. 또 범죄신고 112에는 혜은이의 ‘감수광’, 114에는 조용필의 ‘강원도 아리랑’, 119에는 한마음이 부른 ‘갯바위’가 담겨있다. 기억하기 쉬운 번호인 500번에서는 송대관의 ‘세월이 약이겠지요’, 700번에서는 김상희의 ‘참사랑’, 7000번에서는 최신곡으로 서클이 부른 ‘It’s all right’가 흘러나온다. 상대방이 노래를 부르려하지 않을 때 독촉하는 노래 ‘안나오면 쳐들어간다’는  5000번이다.
그러다보니 어느 사이 내 노래 18번은 ‘싫다 싫어’(516), ‘십오야’(518), ‘우연히 정들었네’(610), ‘이거야 정말’(629)이 돼버렸다.
며칠 전에도 나는 동기생들과 어울리다 갑자기 지명당해 516번을 눌러 현철의 노래 ‘싫다 싫어’를 불렀다. ‘당신 아닌 다른 사람도 얼마든지 많고 많은데, 왜 하필 당신만을 사랑하고 이렇게도 애를 태우나…’
요즘은 한 발 더 나아가 숫자를 앞뒤로 바꿔 419 대신 914번 ‘생각이 나면’(들고양이)을 연습한다. 516 대신 615번 ‘울긴 왜울어’(나훈아)를, 518 대신 815번 ‘관광열차’(김상희)를 반복한다. 아무튼 나는 지금 아내와 함께 금영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다. 석사과정이 끝나면 조용필의 ‘상처’를 유난히도 좋아하는 아내와 함께 박사과정에 도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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