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등불 큰바위얼굴 이야기②

도선국사 등 위대한 선각자들이 주목하다

향로봉과 구정봉
月出山 道詵의 千年 豫言이 / 큰바위얼굴로 되살아나 / 깊은 잠에서 깨어날 / 참 주인을 찾습니다 / 깊은 잠에서 깨어날 / 참 주인은 누구입니까 / 倍達의 옛 榮華를 되찾을 커발한입니까 / 이 땅의 恨을 풀어줄 人傑입니까 / 우리의 오랜 바램은 분단된 祖國보다 / 하나된 祖國 하나된 民族이  / 어우러져 / 땀 흘려 일한 만큼 살 수 있는 / 밝은 세상이 열렸으면 합니다 / 倍達의 魂이여 東邦의 仙人이여 / 오늘날 亂世의 英雄을 주시어 / 이 祖國 이 百姓을 되살려 주시고 / 다시는 꺼지지 않는 영원한 / 東邦의 등불이 되게 하소서 / 倍達의 魂이 되어 지켜주소서
-多勿 洪在三 作‘큰바위얼굴’

9개의 우물이 있던 봉우리, 구정봉
고려시대 이전부터 불려진 구정봉(九井峯:고려사 지리지)은 ‘9개의 우물이 있는 봉우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정봉의 정상에는 풍화혈(風化穴)로 생겨난 9개의 바위 웅덩이가 있다. 비가 내리면 이 웅덩이들은 물로 채워지는데, 가운데 있는 지름 3m의 큰 웅덩이는 웬만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지금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좁은 바위틈을 통과하여 조심스럽게 올라갈 수 있지만 과거의 구정봉은 사람이 함부로 오를 수 없는 신성한 장소였다. 이에 대해 불교민속연구가인 조용헌 선생은 구정봉은 천황봉을 바라보며 제사를 올린 제사터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월출산 구정봉(711m)은 천황봉(812.7m)과 마주하고 있는 봉우리로 향로봉(744m)에 이은 세 번째 봉우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로부터 구정봉을 주목하고 월출산 가운데 가장 많은 설화와 기록을 남겼다.

제왕의 기운이 흐르는 월출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영암과 월출산.

일찍이 월출산 자락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이 산의 기운을 꿰뚫어 본 선각자가 있었다. 한국풍수지리의 창시자로 신라말에서 고려초까지 활동한 도선국사이다. 도선국사는 당시의 국토를 배가 항해하는 모습의 행주형(行舟形)으로 보았다. 그는 태백산과 금강산을 뱃머리, 한라산을 배의 꼬리, 지리산을 돛대로 해석하고 월출산을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키라고 하면서 국운(國運)이 이곳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또 도선국사의 예언을 기록한 것으로 민간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쳐온 도선비기(道詵秘記)에는 월출산 구정봉의 기운으로 세상을 다스릴 제왕(帝王)이 나온다고 하였다.
손석우 선생은 자신의 저서 『터』에서 도선국사에 대해 설명하면서 월출산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월출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으니, 월출산은 지리산의 연맥이 승주의 봉두산, 모후산, 조계산을 일구고 그 끝머리에 앉힌 산이다. 마치 잘 생긴 희대의 대장부와 같이 위풍당당하고 창날을 세워 놓은 듯 삼엄하게 솟아 있으니 그 정기로 위대한 인물이 크게 난다.’

영암과 월출산 지명의 유래
이뿐아니라 월출산의 지명유래에도 같은 내용의 기록이 전해져 온다. 1530년(중종 25년) 이행(李荇)·홍언필(洪彦弼)에 의해 완성된 조선시대의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보면 월출산에 3개의 동석(動石:흔들바위)이 있었는데 이 바위의 기운으로 조선에 큰 사람(大人)이 나온다 하여 중국 사람들이 산에 올라와 이 바위들을 다 아래로 밀어뜨렸다 한다. 그런데 그 중의 하나가 스스로 올라와 제자리에 선 것을 보고 놀라서 ‘신령한 바위(영암:靈巖)’라 했는데, 훗날 그 바위의 이름이 산 아래 고을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동석(動石)’이라고 글씨가 새겨진 그 바위는 바로 구정봉 아래에 있다.
또 고산자 김정호(金正浩)가 1861년(철종 12년)에 제작한 우리나라의 대축척 지도인 대동여지도에 보면 영암을 표시하면서 월출산의 대표적인 봉우리로 ‘구정봉(九井峯)’을 명기(明記)하고 그 곁에 ‘동석(動石)’을 표기해 놓았다.

큰바위얼굴이 갖는 의미
월출산의 구정봉은 향로봉 쪽에서 보면 산봉우리라기보다는 작은 바위 언덕에 불과하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를 깊이 헤아리고 살아온 우리의 선조들은 구정봉을 바위로 가볍게 보지 않고 월출산의 대표적인 산봉우리로 주목했다. 국내의 문헌을 살펴보아도 구정봉을 바위로 표시한 자료가 전혀 없다. 필자가 내세운 ‘큰바위얼굴’은 바위이름이 아니라 홀연히 사람의 얼굴로 발현되어 사람들에게 꿈과 용기를 일깨워 주고 있는 웅대한 구정봉의 별칭이다. 결코 ‘큰얼굴바위’가 아닌 것이다.
큰바위얼굴인 구정봉은 월출산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월출산을 몸으로 삼아 거대한 얼굴을 세상에 드러내놓고 있다. 이 큰바위얼굴의 머리 끝에서 턱까지의 길이는 101m이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하면 이 사람의 키는 700~800m 가량 된다. 구정봉의 높이가 711m이고 큰바위얼굴은 월출산 바닥까지 그 몸이 뻗어있으며, 구정봉 자체가 사람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대한역학학회 정도명 교수는 월출산 큰바위얼굴을 보고 “기개가 있고 위엄을 느낄 수 있는 위대한 상이다. 이마 양쪽 눈썹 부위를 관상학에서 감찰관이라고 하는데, 이 부위가 튀어나오면서 눈이 하늘을 쳐다보는 상을 보면 천군만마도 호령할 것 같은 위엄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큰바위얼굴의 발현에 대한 예언적 해석을 지속적으로 지상에 발표하고 있는 후암미래연구소 차길진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암 월출산의 큰바위얼굴 앞에 선 이들은 예외 없이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근엄한 표정의 100m가 넘는 거대한 암벽 얼굴에 절로 무릎을 꿇고 싶어진다. 세계 어디서도 찾기 힘든 규모다. 더 신기한 점은 이 거대한 얼굴이 세간에 알려진 건 요 몇년 사이라는 사실이다. 풍수지리 연구가들의 발길이 끊인 적 없는 월출산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그 어마어마한 규모의 얼굴이 어떻게 얼굴을 숨기고 있었을까. 월출산 큰바위얼굴은 자유자재로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보통의 큰 바위얼굴들은 바위에 윤곽이 뚜렷하게 조각되어 있다. ……지기에 의해 결정된 바위 조각이 아니다. 거대한 바위를 스크린 삼아 하늘의 천기가 영사해서 나타나는 얼굴이 바로 영암의 큰바위얼굴이다. 그때마다 시시각각 표정을 달리한다는 점에서 다른 큰바위얼굴과 달리 살아있는 조각품이다. 신령스런 바위란 뜻의 영암(靈巖), 월출산의 큰바위얼굴이 곧 영암인 것이다. 영암의 큰바위얼굴은 천기와 지기의 오묘한 조화의 극치가 빚어낸 걸작 중의 걸작이다”

큰바위얼굴 작품집 출판이 주는 의미
금번에 작품집으로 발간한 ‘동방의 등불 큰바위얼굴 이야기’는 1981년 도립공원월출산사진전을 연 이후로 33년 만에 펴낸 우리 고장 월출산에 대한 최종보고서이다. 지난 5년간 힘들어하는 식구들을 외면하면서까지 큰바위얼굴 스토리텔링 완성에 매달린 것은 이 일이 사람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고, 우리의 영암과 글로벌 리더들을 지속적으로 배출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만천하에 알리는 막중한 일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작품집을 건네받은 후배작가가 자비로 책을 출판했다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형님, 정말 미쳤네요!” 하고 탄식했다. 맞다. 미쳐서 이 일을 했다. 내 탯줄이 묻힌 땅을 가슴에 품고, 고향의 품에서 여태 살아온 나에게 주어진 하늘의 소명이기에 끝까지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가슴 따뜻한 분들의 정성어린 도움을 받았다.
모두모두 눈물겹도록 고맙고 감사하다.  
박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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