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의 성씨기행 <13> - 밀양박씨편
박씨는 모두 박혁거세의 후손…영암에는 규정공파 많이 살아

삼충각 신북면 갈곡리에 있는 삼충각은 전라남도 기념물 제108호로, 충숙공 박형준(규정공파 12세)과 그의 두 아들 박효남·박호남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정려(旌閭)이다. 3부자 모두 공신으로 책록된 이들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막하에 의병으로 참전하여 3부자 모두 전사했다.
박씨는 신라때 10명의 왕 배출
박(朴)씨는 김씨, 이씨 다음의 우리나라 3대 성씨로, 옛 문헌들에는 총 310여 개의 본관이 나타난다. 그러나 2000년 조사에서는 160개 정도의 본관이 현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중에서 시조나 유래가 밝혀진 본관은 대략 70개 정도이다. 박씨 주요 본관으로는 밀양,반남,함양,순천,무안,죽산,고령,충주(이상을 ‘8박’이라 함) 등이 있고, 중국계 등 귀화 본관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박씨 모든 본관들은 박혁거세(朴赫居世)를 도시조(元祖)로 받들고 있다. 본관이 다르더라도 박씨끼리는 혼인을 피하려는 풍습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씨의 분파 분적은 1차적으로 박혁거세의 증손인 파사왕과 일성왕 대에서 이루어졌다. 파사왕의 후손에도 여러 본관이 생기고, 일성왕의 후손에도 그의 25대손인 경명왕,경애왕의 아들 대에서 여러 본관이 생긴 것이다.

박혁거세의 탄생 신화는 문헌에 따라 약간씩 다른데, 삼국사기의 내용을 보면, 옛날 진한 땅에 여섯 마을이 있었는데, 어느날 고허촌 촌장 소벌공이 양산 밑의 나정이라는 우물 곁에서 흰 말이 무릎을 꿇고 우는 것을 이상히 여겨 가보았더니 말은 간 곳 없고 불그스레한 알이 하나 있었다. 알을 깨보니 아기가 있어 소벌공이 데려가 정성껏 길렀는데 아기는 점점 준수해지고 나이 열세 살에 뛰어난 젊은이가 되었다. 이에 여섯 마을 촌장들이 모여 이 아이를 임금으로 삼고, 박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박(朴)이라 하였으며, 세상을 밝게 다스린다는 뜻으로 이름을 혁거세라 하였다. 그 후 박씨는 혁거세를 포함하여 신라 초기와 후기에 10명의 왕을 배출하였다. 즉, 박씨는 신라 왕족의 후예인 것이다. (한편 삼국지 위지 동이전 등 중국의 고서에 신라 6부족의 기원이 ‘고조선의 유민’ 혹은 ‘진나라의 유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박혁거세는 북쪽에서 한반도로 온 이주민 출신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최연소 17살 문과 장원 급제 박호
밀양박씨(密陽朴氏,‘밀성박씨’라고도 함) 시조 박언침(彦忱)은 박혁거세 29세인 경명왕의 맏아들로 밀성(밀양)대군에 봉해졌으며, 이를 연유로 해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밀양으로 삼았다. 그리고 밀양박씨에서 영암박씨,태안박씨,진원박씨,운성박씨,구산박씨,나주박씨,창원박씨,문의박씨,여주박씨 등이 분적되었다. 밀양박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61명 등 생원,진사 포함 총 1천700명에 가까운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으며, 상신 1명, 대제학 2명, 청백리 2명, 공신10명을 배출한 명문거족이다. 만 17세때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조선시대 최연소 문과 장원 급제자로 기록된 박호(箎)도 밀양박씨이며, 박의영,증영,소영,광영 4형제도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리고 밀양박씨 후궁으로는 숙종의 후궁이자 연령군의 어머니인 명빈박씨가 있다.

삼충사 밀성박씨 월암공 영암종친회에서는 지난 4월19일 영암읍 개신리의 읍천, 월계, 월파 3충신을 모신 삼충사에서 관내 유림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를 올리고 있다. 박혁거세 55세손인 월암공은 충북 옥천에서 영암에 터를 잡은 이래 현재 17대째 살고 있다.
관직자 등의 밀양박씨 인물을 보면, 명나라에 갔을 때 세자에 대한 보고를 잘하고 돌아와 태종으로부터 미두(米豆)를 하사받았고, 문장이 유려하여 이름을 떨쳤던 박강생, 세종을 도와 조선초기 음악을 정비하는데 많은 공을 세웠으며,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3대 악성으로 추앙되고 있는 박연,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사육신이 참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음독 자살한 충신 박심문, 수양대군을 도와 공신에 책록되고 여러 판서직과 좌찬성을 지낸 박중손, 무과에 장원 급제하고 판강릉부사 때 선정을 베풀어 주민의 청에 따라 임기만료 뒤에도 계속 유임된 공신 박거겸, 어질기로 유명했고 국기(國器)라는 명성을 들었으며 효도가 지극하여 모친상 때 상주 노릇을 너무 슬프게 하다가 몸을 상하여 병을 얻어 일생을 마쳤던 박훈, 생원시 장원과 진사시 아원(2위) 후 문과에 급제하여 대제학,정승에 이르렀으며, 명종이 ‘大提學兵曹判書朴忠元’이란 친필 10자를 하사하였던 낙촌공파 파조 박충원, 그는 영월군수 시절 영월 호장 엄홍도에 의해 급히 염장된 단종의 묘를 찾아 수축하고 제사를 지낸 인물로 단종묘인 장능에는 그를 기리는 정려각이 있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육지와 해전에서 많은 공을 세웠으며, 특히 해안경계에 많은 공을 세워 이순신이 장계를 올려 그를 주사조방장으로 삼았던 박종남, 3정승을 역임하고 인조반정 때 자결한 숙민공 박승종, 전주 판관을 지낼 때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유임상소로 재임되기도 하였고 서예로도 이름이 높았던 청백리 박신규 등이 있으며, ‘북학의’의 저자 박제가는 조선후기의 대표적 실학자로 국민의 실생활을 향상시킬 것을 주장하였고, 이를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하였다.
밀양박씨 현대인물로는 박충훈 전 대통령 권한대행, 박인천 전 금호그룹 회장, 박건배 전 해태그룹 회장, 박철웅 전 조선대 총장, 박순천 전 신민당 대표, 박한상 전 국회의원, 박태준, 박관용, 작곡가 박시춘, 국악인 박동진, 소설가 박종화, 원불교 창시자 박중빈 외 많은 인물이 있다.

회문리에는 영의정 박승종 후손들
밀양박씨는 명문거족답게 단계별로 수많은 분파가 있다. 밀양박씨 분파는 크게 문하시중공파, 도평의사공파, 좌복야공파, 밀직부사공파, 판도공파, 좌윤공파 등 6大파로 나뉘며, 이 파들은 다시 여러 파들로 갈라지는데 가장 규모가 큰 문하시중공파는 은산공파, 행산군파, 좌상공파, 규정공파, 사문진사공파, 밀성군파 등으로 나뉜다. 이 중에서 규정공파가 가장 후손이 번창하여 밀양박씨의 60~70%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밀양박씨 분파는 문하시중공파 등의 6大파와 그 아랫 단계의 파들 중에서 규모가 큰 진사공파, 밀성군파, 동정공파, 밀직부원군파, 정국공파, 규정공파 등의 6개 파를 합하여 12大파로 대별하기도 한다.
밀양박씨 인구수는 2000년 조사에서 303만 여명으로 나타나 우리나라 인구의 6.6%, 박씨의 77.8%를 차지했으며, 본관별 인구 순위로는 김해김씨(가락) 다음으로 우리나라 두 번째이다. 그리고 우리 영암의 밀양박씨는 4천640명으로 영암인구의 7.7%, 영암 총 박씨의 69.4%를 차지했다. 한편 우리 영암읍 회문리에는 인조반정 때 자결한 광해군 때의 영의정 박승종의 손자 박취도 공이 입향하면서부터 그 후손들이 현재 400년 가까이 세거해 오고 있다. 분파는 규정공후 낙촌공후 숙민공(박승종)파이다. 그리고 모든 집성촌들이 그렇듯 세태에 따라 도시 등으로 이주한 주민(族人)이 많고 전입해 오는 타성도 있어 집성촌이라 할 수 있는 마을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데 밀양박씨도 마찬가지이다. 그 몇 군데 중 영암읍 대신리 족자동도 지금은 밀양박씨가 거의 없으나 규정공파 세거지 중 하나이다.

영암 인물 효자 박지검
호남읍지에 오른 우리 영암지역 인물로는 효자로 기록된 박지검이 있다. 그는 규정공파 후손으로 18살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어버이를 받드는데 지효하고 아버지 병환에는 변을 맛보아 그 경중을 진단하였고 돌아가시자 3년을 시묘 살았다. 어머니가 학질로 병이 나자 허벅지를 떼어내어 드렸고, 풍증환에는 꿈에 어느 노인이 사자를 타고 나타나 영약을 가르쳐주므로 이를 구해 효험을 얻었으므로 그가 사는 곳을 사자동이라 하였다. 그외 호남읍지에 오른 영암인물로, 박광춘은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영장참선무훈 등을 지냈으며, 박동의도 현종 때 무과에 급제하였다. 박동의의 아우 박동윤도 무과에 급제하여 봉사 등을 지냈으며, 증 한성좌윤이다.

밀양박씨 현대 영암인물로는 박준영 전남도지사, 군의원 출신으로 박영배, 박종삼, 박종선씨 등이 있고, 학계에 박강철, 박광순, 박광채, 박금철, 박기언, 박선희, 박승희, 박영일, 박원기, 박장경, 박종안, 박종오, 박평심, 박한기 교수 등이 있으며, 관계에 박건홍 전 함평군수, 박성학 전 목포시장, 박종환 전 영암군수, 박판생 전 국회 부이사관, 박희춘 전 중앙선관위 부이사관, 의료계에 박영봉 전 조선대병원 소아과장, 박원철 전 영암군보건소장 등이 있다. 또 경제계에 박일재 남영섬유공업사 대표, 박준일 우진식품 대표, 금융계에 박정재, 박기현, 박봉희 전 농협지점장, 그리고 박상설 전 세무사, 박문섭 전 영암군번영회장, 박판종 전 독립투사, 박한철 전 조합장, 박희수 전 의용소방대 영암군연합회장 등 각계의 인물이 많이 포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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