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섬에서는 고급 도자기도 발견..

정식 발굴 거쳐 경로 등 밝혀야

여수의 분청사기 가마터는 소라면 사곡리와 분계동에 대부분이 분포하고 있고 율촌면 가장리 가장저수지 인근 지역 등 총 10개소가 분포하고 있다.
여수의 도요지는 소라면과 율촌면을 중심으로 분포한다. 분청사기 가마터는 소라면 사곡리와 분계동에 분포한다.

백자 가마터는 율촌면 가장리 가장저수지 인근 지역 등에서 발견되고 있다. 현재 여수에서 추정되는 가마터는 분청사기 가마터 4개소, 백자 가마터 6개소 총 10개소가 알려졌다.

여수지역은 신석기시대의 토기를 비롯해 적지 않은 도자역사를 자랑한다. 신석기 시대 토기로는 당시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나뭇잎 토기들이 발견돼 상당한 실력을 갖춘 전문 도공들이 생활했을 가능성이 크다.

청동기 시대의 많은 고인돌을 비롯해 삼국시대에는 백제 토기를 비롯해 소가야, 대가야의 토기도 같이 발견되고 있다.

여수시 화장동 선사유적공원 내에 통일신라시대의 기와 가마터가 자리 잡고 있다. 통일신라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와요는 2기로 암기와, 수기와 토기편 등이 출토돼 당시의 역사성을 그대로 남고 있다. 

율촌면 가장리에 위치하고 있는 가장저수지 인근에는 백자가마터가 있다.
이런 토기의 기술들이 점차 발전하면서 도자기에 이어져 여수의 도자기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여수는 고려시대에 이르러 여수현이라고 불렸다. 당시 고을의 중심지는 지금의 여수시가 아닌 석창부근이었다. 이 석창에는 여수석보(석창성)가 있었다.

석창성에는 석보창이 자리하고 있었고 여수, 삼일포, 소라포 등의 3개 면에서 환곡을 보관하고 석보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지방 특산물이 집결되는 곳으로 유명했다. 이곳은 당연히 여수반도의 내륙지방과 연결하는 교통요충지의 하나였다

이런 환경은 자연스럽게 무역이 손쉽게 이어지고 이와 함께 도자기의 유입도 쉬웠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고급 청자가 각 섬지역에서도 편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여수지역은 상당한 부를 축적하면서 상업의 중심지로 주목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과정에서 여수지역에서는 분청사기의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반월리 철탑인근서 발견된 분청사기의 모습(위) 수암산 일대에서 발견된 백자 편들(중간) 인근 섬에서 발견된 강진산 상감청자의 모습(아래)
소라면 사곡리와 율촌면 반월리의 경계가 되는 지역에는 작은 계곡이 하나 있다. 이곳은 주민들에게 분계동이라고 불린다. 이곳은 분청사기의 가마터가 있던 곳이다.

바로 옆으로는 해안가가 있고 계곡을 따라 가마터가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대부분은 밭으로 개간된 상태이지만 발, 대접, 접시, 병 등 16세기의 분청사기가 출토된 곳이다. 

이곳은 바닷가를 인접해 해로를 따라 충분한 유통이 가능한 지역이었고 다른 새로운 도자기의 형태로 유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분청사기의 제작은 이어 백자로 이어졌다. 율촌면 가장리 가장저수지 인근에는 백자가마터가 있다. 가

장저수지 동남쪽을 따라 산기슭에 있었던 백자가마터는 골재사용을 위한 돌산개발로 거의 형태를 찾아보기 어렵다. 길가와 언덕 등에서 대접, 잔, 병 등 17세기 후반의 백자편들이 발견됐다.

인근 주민은 불과 40여 년 전에도 가장저수지 인근 지역에서 수많은 도자편들이 발견됐다는 것으로 보아 가장저수지 지역은 상당한 규모화를 갖춘 가마들이 자리 잡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수의 가마터가 조성된 시기는 분청사기 가마터 16세기, 백자 가마터가 17세기 후반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출토된 유물들은 비교적 다양하고 서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도자기들로 만들어졌지만 남도의 해로를 따라 도자기 역사가 진행됐다는 하나의 단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흔적으로 볼 수 있다.

■ 인터뷰> “해로 통한 도자기 역사 발굴 시급”

-도자기 연구 여수지역사회연구소 김병호 소장

수십 년간 여수지역 도자기 등의 발자취를 연구해온 여수 지역사회연구소 김병호 소장을 만났다.

김 소장은 "여수지역은 신석기 시대부터 독특한 양식인 나뭇잎 토기를 비롯해 토기의 역사가 계속 이어져 온다"며 "특히 소가야와 대가야 같이 출토 되는 등 역사적 자료가 연관된 유물들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소장은 "아직 여수지역에서 청자를 만들던 가마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며 "물류의 중심지였던 여수지역에서 무역을 통해 청자를 들여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 소장은 "화정면 제리도 등을 비롯한 각 섬지역에서 순청자 도편이 찾아냈고 특별히 당시에는 고가였던 상감청자도 다수 발견됐다"며 "당시 섬지역에 경제력을 바탕으로 청자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여수지역 도자기 역사에 대해 김 소장은 "여수지역은 아직 정식적인 발굴절차를 거치지 않아 정확한 도자기 상태를 알기는 어렵다"며 "문화재에 대한 높은 관심 속에서 도자기에 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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