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참깨, 콩 모두 '비실비실'

자식들 줄 것도 큰 걱정

좌로부터 박기복, 박순남, 최대규 어르신이 그래도 괜찮은 고추라며 막 수확한 고추를 보여주고 있다.
"징한 놈의 비 징허요"

닷새째 비가 내리고 있는 23일 오후 금정면 금대마을앞 들녘. 농민 3명이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고 있었다. 이 밭의 주인 박기복(78)어르신은 바닥에 떨어져 흙에 범벅이 된 덜익은 고추를 손으로 가르켰다.

"태풍때 몽땅 떨어져 부렀어. 이렇게 비까지 자주 내리니 밭에 것(밭작물)이 잘 될리가 있겄어"

고추나무들은 지난 태풍 '무이파'가 쳐들어 왔을 때 바람을 맛아 마치 농약을 맞은 듯 잎들이 초토화돼 있었다. 박어르신은 이곳에서 1천평의 고추농사를 짓고 있다. 5년전부터 일이다. 지난해에는 이곳에서 고추 600근을 수확했다.

그러나 올해는 400근이 못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벌써 다섯 번째 수확을 했지만 200근을 수확하는데 그쳤다. 앞으로 잘 해도 200근을 추가로 따기는 힘들겠다고 했다. 날씨가 이렇게 좋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올 가을에 자식들에게 고춧가루를 많이 보내주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어르신의 자녀들은 다섯명이다.

박 어르신은 "좋은 것은 팔고 나쁜 것은 먹었는데 올해는 나쁜 것이 워낙 많아서 팔 것이 없을 것 같다. 간신히 김장 양념 정도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고추값이 한근에 1만 5천원까지 뛰어 올랐다. 지난해 보다 9천원 이상 오른 가격이다.

그러나 소규모로 고추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는 큰 혜택이 없다는 의미다. 자체적으로 소비할 것도 부족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 고추를 사려면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대마을 최대규(82), 박순남(79) 부부 어르신은 고추농사를 500평 정도 짓고 있다. 최 어르신 집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고추 수확량을 지난해의 절반 정도로 내다봤다. 고추밭옆 개울가에 심은 참깨는 씨알이 든게 얼마되지 않고 있다.

최대규 어르신 역시 7남매의 자녀들에게 줄 깨와 고추가 걱정이었다. 박순남 어르신은 "수확이 줄었기 때문에 고추와 참깨를 시장에서 구입해서라도 보내줘야겠다"고 말했다. 밭에서 나는 수확량이 감소해 돈을 주고 사서 자식들에게 보내겠다는 것이다.

최대규 어르신은 "올해는 고추와 참깨는 물론 콩도 여물이 들지 않았다"며 "날씨라도 도와줘야 할텐데 하루가 멀다하고 비가 내리니 걱정이 태산이다"고 한숨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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