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정규 ·금정면 출생(68) ·조선대 법정대학 졸업 ·행정부 공무원 퇴직 ·여수국가산단 환경협의회 상임이사·고문 ·동우환경엔지니어링(주) 부회장(현) ·월간 한맥문학 수필·소설 등단 ·한맥문학가협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세계문인협회 회원
응달진 산골에는 잔설이 쌓여있고 귀 끝을 예리한 칼로 자르듯 매섭게만 휘몰아치던 칼바람과 눈보라가 기승을 부리는 추위는 아직도 물러갈 줄 모른 채 가끔 심통을 부린다.

봄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도 지난 일요일은 봄의 중턱인가 착각할 정도로 유난히 쾌청했다. 마침 어린 시절 고향에서 맞은 봄이 떠올랐다. 마음속 깊이 간직한 봄 속으로 빠져들었다. 내 마음의 창엔 아지랑이가 선명하게 아롱거리고 있었다.

가슴속에 일렁이는 아지랑이를 쫓아 논두렁 밭두렁 따라 들로 시냇가로 갔다. 시냇물에 발을 담그니 시려 올랐다.

물가 움푹 파진 웅덩이에 개구리가 움츠리고 툭 뛰어나온 두 눈을 감은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봄으로 착각한 성급한 놈이 잠에서 깨어나 세상구경 나왔다가 매서운 추위를 만난 듯싶었다. 개울가엔 개나리가 수줍은 새 아씨 젖가슴 둘러매듯 꽃망울을 칭칭 감아 맨 채 움츠리고 있었다. 남쪽 하늘아래 산골마을에서 살던 어린 시절, 봄이면 보던 풍경이다. 그 풍경을 떠올려 잠시 착각에 빠졌다. 행복한 착각이다.

사람들은 착각 속에 묻어 산다. 쉬운 것을 어렵게, 어려운 것을 쉽게, 또 행복을 불행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착각을 하며 산다. 그 순간순간이 지난 뒤에야, 아! 하고 깨우치듯 알게 된다.

“생각은 행위다. 더구나 이 세상에 어필할 수 있는 가장 성과 높은 행위다.” 라고 프랑스 소설가 졸라가 말했듯이 생각 그 자체가 곧 행위로 나타난다. 그래서 생각이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

누구나 착각이라는 모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생각을 바꾸면 그 모순에서 탈피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착각을, 그 착각을 믿고 집착하다 보면 그것이 현실로 돼버린다. 그래서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

요즘 정치권에서는 각종 중요정책을 놓고 찬반토론을 한다. 그 때마다 혈투나 다름없는 다툼이 벌어진다. 때로는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하고 몇 년을 두고 수 없이 설전을 한다. 그땐 국력이 낭비되고 지역 간, 주민 간, 분열과 갈등이 심화된다. 설전의 결과에 따라서는 국가와 국민에게 커다란 손익을 가져다준다. 물론 논란은 발전의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근간이 되기도 하지만 지나쳐서는 오히려 모순이라는 함정에 매몰된다.

다툼이 자신이나 계파의 정치적 입지 때문이 아니기를 바란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 때문이라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만에 하나 특정정당이나 계파, 특정정치인의 이익을 위해서 억지논리 또는 다수의 횡포나 또 다른 형태로 그르쳐서는 안 된다. 착각 때문에 국가나 국민이 당하는 피해가 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그것이 책임 있는 정치인의 태도다. 결과를 두고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 ‘아니면 말고’ 그런 생각이어서는 더욱더 안 된다. 이제는 국민들도 그런 정치인을 바라지도 용서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상대주장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설득력 없는 이유로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아집이다. 자신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면 상대를 비방하고 불평만 일삼는다. 더 나아가 별의별 이유로 상대를 자극한다.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논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논의석상에서 자기주장만을 지나치게 하는 태도다. 그런 자세가 문제다. 남의 의견을 듣고, 옳고 그름을 논의하겠다는 자세보다는 자신의 의견에 동의해 주기만을 바라는 편협된 생각으로 토론에 임하는 자세가 잘못 됐다. 그런 태도를 보고 있는 국민들은 몹시 식상해 한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다툼만을 일삼는 자들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 국민들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혜안을 갖는 것, 혜안을 갖는 사람이 필요하다. 왜 그것을 모르고 착각을 하고, 착각이라는 함정에 갇혀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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