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중길 ·시종면 출생(69) ·광주서중·일고 졸업 ·고려대 법대 졸업 ·한국삼공(주) 상무이사 ·한미제과(주) 대표이사 ·한미실업 대표(현) ·광주서중일고 재경총동창회장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최고위과정(36기) 회장 ·17대 대통령 취임준비위 자문위원

“나는 부서진 기계의 한 조각이다. 이젠 나는 떠날 준비가 됐다”<우드로우 윌슨의 임종의 말>

26세 된 죠지 지그매녁은 오토바이 사고로 목 부위 아래로 전신마비 상태가 되어 뉴저지주의 한 병상에 누워 있었다. 그 젊은이는 이제 자신의 온몸이 부서진 기계의 조각처럼 되어 버렸고 자신의 의지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 그는 언제든지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동생에게 형의 목숨을 끊어 달라고 애원하였다. 그 누구보다 형제애가 깊었던 것으로 알려진 동생은 눈물을 흘리면서 형의 소원을 엽총으로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 동생은 일급 살인죄로 고발되고 말았다.

56세의 유진 버어는 후두암 치료를 받기위해 롱아일랜드의 나쏘라는 의료센터에 입원한지 5일 뒤에 혼수상태로 빠져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생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담당의사인 빈센트 몬테마라노는 환자의 정맥혈관에 적정량을 초과한 염소산칼륨 주사로 환자의 생명을 끊어 주었다. 의사는 유진 버어의 사망원인을 ‘암’이라고 발표했으나 검찰 측에서는 고의적인 ‘안락사’라고 주장하며 의사를 살인죄로 고발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는 그 자신이 의사이기도 했다. 83세의 나이로 죽기 전 16년 동안 턱 부위의 ‘암’으로 수술을 33회나 받아 가면서 투병생활을 했다. 마침내 “심한 고통만 남아 있을뿐 이제 더 살아야 할 의미가 없다”고 그는 결심하고 최후수단을 취해 줄 것을 담당의사인 막스 슐과 합의를 했었다. 슐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나는 프로이트가 심한 고통에 빠지자 2cg의 몰핀을 주사해 주었다. 12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주사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혼수상태가 된 뒤에 다시는 깨어나지 않았다.”그렇게 프로이트는 자신이 선택한 안락사로 세상을 떠났다.

발병원인을 찾아낼 수 있는 최첨단 진단기기의 발달, 괄목할만한 의료인의 시술 발전, 경이로운 치료약품의 제조생산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능력으로는 치료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오늘날의 의사들은 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가로 고민하게 되고 한편 2400여년전에 제창된 히포크라테스 선서 “그 누구에게도 치사량 초과 약물을 투여하거나 권고를 아니한다”인 의사의 본분을 지켜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금년 1월 11일에 인공호흡기를 제거한지 202일만에 숨진 김씨 할머니는 우리사회의 바람직한 죽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를 남겨주고 떠났다. 지난 해 6월에 김씨 할머니는 대법원으로부터 ‘연명치료 중단’ 판결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받았다. 법원에서는 본인 서명만을 인정할 것을 주장하고 있지만,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게 되어 버리면 환자의 의견을 어떻게 알아 낼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존엄사에 대한 환자의 의견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의료계 가이드라인은 가까운 친족들에게도 결정권을 주자는 입장인 것 같다. 현재 의료현장에서는 연명치료 중단의 80~90%가 환자 가족의 결정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일부 윤리계에서는 안락사에 대해서 부정적이지만 환자가족의 경제사정 이유로 치료중단을 요구 하는 경우는 재정적인 부담을 누가 책임 질 것인지... 의료계를 비롯해 법조, 종교, 윤리계에서 환자의 편안한 죽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수렴해야 하고 동시에 호스피스(hospice)제도를 활성화함으로써 나 아닌 타인 가족의 존엄사 문제를 우리 모두의 가족문제로 삼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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