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춤사장 울춤사장 쌍취정 원풍정 망월정… 마을마다 ‘역사 박물관’


어느 마을에 가나 마을 이름 외에 소지명(小地名)을 접할 수 있다. 큰 마을일수록 구역별로 나름대로의 특징을 나타내는 재미있는 소지명들이 많다. 모정마을 역시 큰 마을답게 많은 소지명을 갖고 있다.

알춤사장, 울춤사장, 오리샘, 방죽가, 서재, 한골목, 재너머, 서당골, 솔짓개, 돌래미, 개노미테, 장사골, 죽몰, 외양골, 초장골, 방축리, 두데미, 뒤끄테, 쌍취정, 원풍정, 망월정, 네거리, 비죽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외양골·초장골·방축리·두데미는 모정마을의 지형인 와우형국을 나타내는 이름이며, 쌍취정·원풍정·망월정은 정자가 있었거나 있는 터를 이르는 이름이다. 비죽은 바위 위에 버려진 도선국사를 감싸기 위해 비둘기가 날아간 지역을 뜻하며, 한골목은 마을을 동서로 나누며 한복판을 관통하는 큰 골목을 일컫는다. 솔짓개는 소나무가 많은 고개를, 서재는 마을 서쪽의 언덕을 뜻하는 이름이다. 개노미테는 ‘갯논 아래’라는 뜻이고 장사골은 장사가 잘되는 지역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 장사골에는 예부터 주막이나 가게가 있어왔다. 현재도 구멍가게와 떡 방앗간이 있다. 이 가운데에서 한 번 방문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유서 깊은 몇 곳을 소개한다.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던 망월정
망월정(望月亭)은 마을에서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정자이다. 저수지 절벽 위에 있어서 월출산에서 떠오르는 달이 잘 보일 뿐만 아니라 절벽 아래의 호수를 포함한 주변 풍광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원풍정과 쌍취정에서 바라보는 월출(月出)이 정적이고 시적이라면, 망월정에서 바라보는 월출은 동적이고 호방하다. 동네 어른들 말에 따르면 보름달이 뜨는 날 마을 사람들이 망월정에 모여 달을 보면서 소원을 비는 풍습이 전해져온다고 한다.

언제나 책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리던 서당골

▲ 모정마을 서당, 선명제 - 서당골에서는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서당골은 말 그대로 마을의 서당(書堂)이 자리하고 있는 지역을 일컫는다. 선명재(先明齋)라는 당호를 갖고 있는 이 서당은 1850년에 지어진 건물로 마을 청년들의 교육을 담당해왔다. 이 서당골에서는 늘 아이들이 책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마을의 원로 유학자인 김종수씨(89)는 이렇게 말한다, “원래는 죽정 월대암 아래의 문산재와 똑같은 구조의 ㄷ자형 구조였어. 한쪽 누정마루에는 행양루(行陽樓)라는 편액이 걸려있었지.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이 낡아서 양쪽 날개를 뜯어내었지.” 그래서 지금은 일자형 구조로만 남아있다. 건물은 5칸 한옥으로 팔작지붕이며 앞 뒤 툇마루와 3칸 대청마루, 그리고 양쪽 방으로 이루어져있다. 대청에는 선명재기와 중수기가 편액으로 걸려있다. 160년이 넘는 세월을 품고 산 관계로 시급하게 보수해야 할 부분이 많다. 한국전쟁 후 문산재가 없어졌다가 불과 30년 전에서야 복원된 것을 생각하면 이 선명재의 가치가 새삼 돋보인다.

줄다리기와 콩쿨대회가 열리던 신명의 터, 울춤사장
▲ 콩쿨대회가 열리던 울춤사장 전경
울춤사장은 마을 위 공터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팽나무·이팝나무·소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운치를 더해준다. 이 울출사장에서 정월 대보름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줄다리기를 하며 마을의 화합과 안녕을 소원했고, 팔월 한가위 때는 객지에서 돌아온 자녀들과 더불어서 노래자랑대회를 개최했다. 동네 꼬마들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참여한 이 줄다리기와 콩쿨대회는 농촌 공동체마을의 자랑이자 힘의 원천이었다. 콩쿨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이웃한 구림, 양장, 동호마을 청년들까지 참가하여 한바탕 신명나는 축제를 벌이곤 했었다. 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의 거센 물결에 밀려 젊은이들을 모두 빼앗겨버린 지금 울춤사장에서는 더 이상 콩쿨대회가 열리지 않는다. 줄다리기는 그래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비록 용줄은 아니지만.

평산(平山) 신씨(申氏) 문각, 돈의재(敦義齋)
▲ 평산 신씨 문각 돈의재
한골목 광산김씨 문각인 사권당 바로 길 건너편에 평산신씨 문각인 돈의재가 있다. 마을 사람들이 ‘신문각’이라고 부르는 이 고택은 솟을대문인 돈의문과 4칸 한옥인 돈의재, 그리고 관리사 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평산신씨들이 모여 담론하고 학문을 논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모정마을 평산신씨는 고려 왕건의 충신 신숭겸 장군의 후예들이다. 신사임당의 부친인 신명화와도 그 뿌리가 닿는다. 17세기 후반에 입촌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약 15가구가 살고 있다. 광산김씨들과 함께 양대 문중을 형성하면서 서로 협동하고 또 경쟁하면서 잘 어울려 지내고 있다.   <모정마을편 끝>
글/사진 김창오 편집위원

※그 동안 모정마을에 관한 귀중한 자료를 기꺼이 제공해주신 광산김씨 문중과 종손 일족인 송암 김선민 국악협회장님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 모정마을 이장 김상재씨가 모정마을의 향후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활짝 웃고 있다.
[모정마을 김상재 이장]

“모정마을은 숨겨진 보물과 같다”

이제 모정마을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떠나기 전에 모정마을 이장 김상재씨(57·사진)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김씨는 젊은 시절, 수세 폐지운동을 위한 ‘군서농민회 창립총무’와 군서·서호 ‘학파농장소작 철폐위원장’을 맡아 농민운동에 헌신적으로 투신했다. 지금은 장년이 된 그에게 앞으로의 마을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우리 모정마을은 숨겨진 보물과 같다. 영암신문의 ‘영산로 따라 배롱나무 백리 길’ 덕택에 숨겨져 있던 마을의 문화·역사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점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앞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자 한다.

‘모정마을 프로젝트’라고 이름 지어도 좋을 것 같다. 우선 친환경생태마을을 만들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여러 개의 소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도선국사의 전설이 시작되는 비죽에 ‘도선국사 전설체험 탐방로’의 시작을 알리는 소공원을 조성하고, 울춤사장에는 유실된 소나무숲을 복원할 계획이다. 망월정에서 원풍정에 이르는 잿등에도 소나무를 심어 운치 있는 산책길을 만들고 싶다.

원풍정 앞에 조그마한 무대를 만들어 달맞이 공연을 마을 차원에서 개최하고, 또 쌍취정을 옛 문헌대로 복원하여 원풍정과 어우러지도록 할 계획이다. 특히 마을과 인접한 호수를 활용한 수변 생태공원이 조성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마을 사람들과 함께 울력하여 철쭉 2만주를 저수지 둑길에 식재하였다. 호숫가에 버드나무와 가로수를 더 심고 수변 산책로를 개설한다면 마을사람들의 건강과 여가에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원풍정 아래 연못을 더 확장할 계획이며 장차 망호정 마을 규모의 연못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마을 어른들과 협의 중에 있다.

우리 모정마을은 유무형의 문화유적이 풍부하다. 남도문화제에서 ‘얼’상을 받은 줄다리기 전통을 갖고 있는 마을이자 가야금산조의 창시자인 악성 김창조 선생의 수제자인 한성기 가야금 명인이 살았던 마을이기도 하다. 회문리의 가야금테마파크와 더불어 우리마을 출신 한성기 선생의 생가복원과 가야금 소공원 조성이 함께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또한 삼효자를 기린 세현문 주변을 정비하여 ‘효 테마공원’으로 꾸미는 구상도 갖고 있다. 이 ‘효 공원’은 어느 마을에도 없는 모정마을만의 특성을 잘 살린 명소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사실 올 초에 한옥을 주제로 한 행복마을을 가꾸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런데 한두 채가 부족하여 선정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더 보완해서 행복마을로 선정되도록 다시 한 번 도전해볼 생각이다. 이와 더불어 보다 안전하고 질 좋은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하여 친환경 경작지를 꾸준히 늘리고 있는 중이다. 자연, 환경, 생태와 문화가 어우러진 마을을 조성하여 가꾼다면 주변의 관광지인 월출산 구림마을과 연계하여 우리 마을은 새로운 형태의 문화관광 마을로 이름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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