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풍정 12경’ 일부 간척사업으로 옛 모습 잃어


▲ 원풍정에서 바라본 월출산 해오름. 도갑사를 품고 있는 미왕재 위로 막 떠오른 해가 모정마을 호수 안에 풍덩 빠졌다.
모정마을 호수가에 자리잡은 원풍정에는 정자가 마을주변의 12가지 멋진 풍경을 묘사한 시구(詩句)가 있다.

- 마을 앞 지남들녘에 내리는 밤비, 덕진포를 왕래하는 범선, 서호에 박혀 있는 도선국사 전설이 서린 백의암, 아천(아시내개)의 맑은 모래, 구림마을에서 피어오르는 아침밥 짓는 연기, 도갑사에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 선인동(도갑리의 한 마을) 풀밭에서 들려오는 목동의 피리소리, 월산에 비치어 반사되는 달빛, 모정 연꽃방죽 위로 빛나는 가을 달, 학고개(지금의 밤재) 위에서 오락가락하는 구름, 용강(영산강)에서 밤에 고기잡이하는 배들의 불빛(어화), 은적산에서 피어오르는 맑은 기운(아지랑이) - 이것이 바로 원풍정 12경이다.

이 원풍정 12경은 열두 개의 기둥 안쪽에 각각 주련으로 걸려 있다. 하지만 이 중에서 德津歸帆(덕진귀범), 雅川明沙(아천명사), 龍江漁火(용강어화)는 영산강 간척사업으로 말미암아 그 풍경을 잃었다. 원풍정 내부에는 두 개의 원풍정기와 더불어 10여 수의 한시(漢詩)가 편액으로 걸려 있다. 이 중에서 몇 개를 골라 백산 김기준 선생의 도움을 받아 번역하여 싣는다.

願豊亭 十二景 (원풍정 십이경)

指南夜雨(지남야우)- 지남의 밤비,
德津歸帆(덕진귀범)- 덕진의 돌아오는 범선,
西湖白石(서호백석)- 서호의 흰 돌,
雅川明沙(아천명사)- 아천의 밝은 모래,
鳩林朝烟(구림조연)- 구림의 아침 연기,
岬寺暮鍾(갑사모종)- 도갑사의 늦은 종소리,
仙掌牧笛(선장목적)- 선장의 목동의 피리소리,
月山返照(월산반조)- 월산의 되돌아오는 불빛,
蓮塘秋月(연당추월)- 연당의 가을 달,
鶴嶺歸雲(학령귀운)- 학고개의 돌아가는 구름,
龍江漁火(용강어화)- 용강(영산강) 어선의 불빛,
隱跡晴嵐(은적청람)- 은적산의 맑은 날에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맑은 기운)


謹次 耕隱 金容瓘 (근차 경은 김용관)

石上有亭水又淸 석상유정수우청
曾年名得願豊聲 증년명득원풍성
坐聞慣於童謠曲 좌문관어동요곡
飽食暖衣樂世情 포식난의락세정
돌 위에 정자가 있고 물은 맑은데,
일찍부터 유명하여 원풍의 명성을 얻었구나.
앉아서 들어보니 아이들의 노래 소리 익숙하게 들리고,
배부르고 따뜻하니 이 세상의 뜻을 즐기네.

謹次 農隱 金模洙 (근차 농은 김모수)

山高水碧一亭淸 산고수벽일정청
含哺老人擊壤聲 함포노인격양성
時景所睹多勝趣 시경소도다승취
登臨忽覺近仙情 등림홀각근선정
산은 높고 물 푸른데 한 정자 맑으니,
배부른 노인의 땅을 치는 소리 있네.
때로 보여주는 경치는 빼어남이 많아,
정자에 올라 임하니 홀연 선정에 가까이 있음을 느끼네.


謹次 海穰 崔永淳 (근차 해양 최영순)

特秀高亭近水淸 특수고정근수청
野翁相話有年聲 야옹상화유년성
君有新詩我有酒 군유신시아유주
時來明月最多情 시래명월최다정
유달리 빼어난 높은 정자 근처의 물은 맑은데,
촌 늙은이들 서로 풍년을 말하네.
그대에게는 새로운 시가 있고 나에게는 술이 있으니,
때 맞춰 오는 밝은 달이 매우 다정하구나.

謹次 雲湖 金容昌 (근차 운호 김용창)

山高野闊水淸淸 산고야활수청청
卜築此亭大有聲 복축차정대유성
蓮塘秋月春風裡 연당추월춘풍리
佳景悠悠萬古情 가경유유만고정
산은 높고 들판은 탁 트이고 물은 맑고 맑은데,
자리 잡은 이 정자에는 큰 명성이 있구나.
연당의 가을 달은 봄바람 속으로 묻히고,
아름다운 경치 유유히 만고의 정이네.

謹次 願豊亭韻 東龍 金容湜 (근차 원풍정운 동룡 김용식)

月岳東高又水淸 월악동고우수청
此亭豊滿特傳聲 차정풍만특전성
登臨秋色黃金積 등림추색황금적
飽腹多千歌世情 포복다천가세정
월출산 동쪽은 높고 또한 물이 맑은데,
이 정자 풍만하여 특별한 소리를 전하는 구나.
올라서 임해보니 가을빛이 황금이 쌓인 듯 하고,
배불리 먹음이 수년임에 세상의 정을 노래하네

謹次 申文永 (근차 신문영)

茅亭臨水淸 모정림수청
楣宇百年聲 미우백년성
岬寺暮鍾遠 갑사모종원
蓮塘秋月明 연당추월명
風烟欲盡地 풍연욕진지
詩酒尤多情 시주우다정
南野登豊饒 남야등풍요
農夫歌太平 농부가태평.
모정은 물이 맑은 곳에 있고,
문미에는 백년의 명성이 있도다.
도갑사의 저문 종소리 멀리서 들려오고,
연당의 가을 달빛이 밝도다.
바람과 안개는 온 땅에 다 하려하니,
시와 술은 더욱 다정하구나.
남쪽 들판은 풍요롭게 익어가고,
농부는 태평을 노래하네.

- 己丑 季秋 白山 金基俊 拙譯하다 (기축 계추 백산 김기준 졸역하다)
글·사진=김창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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