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情’ 넘쳤던 초등학교… 노인들 놀이터로 변해


마지막 운동회의 슬픈 추억
▲ 옛 모정마을 군서남초등학교 터에서 대보름 용줄을 만들고 있는 마을 주민들. 예전에는 어린자녀들과 함께 뛰어놀던 ‘소통의 장’ 이었다.
모정마을에는 한 때 전교생이 700여명에 이르던 초등학교가 하나 있었다. 모정·양장·동호·지남·검주·신기동 6개마을 아이들을 위한 군서남국민학교(지금은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뀜)였다. 이 학교는 필자가 살고 있는 집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뛰어가도 선생님보다 한 발 앞서서 교실에 도착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아이들이 크면 꼭 이 학교에 보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두 아이가 취학연령이 되기 전에 폐교가 되고 말았다.

6년 전, 가을 어느 날 아침에 들려오던 마을 이장님의 비감한 방송 소리를 잊지 못한다.
“주민 여러분, 오늘은 50년 역사의 우리마을 초등학교가 마지막 가을운동회를 하는 날입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가 다 참석하셔서 마지막 운동회의 추억을 간직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운동회라니! 문득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란 단편소설이 생각났다. 주인공인 소년이 공부가 하기 싫어서 학교에 가지 않고 밖에서 놀다가 늦게 교실로 돌아왔을 때, 선생님이 야단도 치지 않고 조용히 수업을 진행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사실 ‘마지막’이라는 말처럼 사람을 슬프게 하고 또한 성숙하게 하는 단어가 또 있을까? 땡땡이꾼이던 주인공도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말 한마디에 갑자기 심각해지고 철이 들지 않았던가?

그런데 우리 마을 초등학교의 폐교는 그 마지막 수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프고 비극적이다. 마지막 가을 운동회는 학교 자체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은 수업만 프랑스어로 못하는 것이지, 학교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어린 시절의 꿈과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마을 초등학교는 아예 영원히 문을 닫는 것이었다. 직장을 찾아 도시로 떠난 젊은이들이 다시 고향마을로 대거 돌아오지 않는 한 폐교된 초등학교의 교문은 다시 열리지 않는다.

사실, 시골 초등학교의 운동회는 뭔가 독특한 것이 있다. 그것은 아이들만의 운동회가 아니다. 그것은 인근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과 교사들의 신명나는 한판 축제의 장이 열리는 곳이다. 학생·학부모·교사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웃고 뛰는 지역축제의 장인 것이다. 그래서 봄과 가을이 오면 학생들뿐만 아니라 해당 학구 주민들 모두가 운동회를 손꼽아 기다렸다.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학교 교직원과 지역민이 만나 함께 어우러지고 문화적인 욕구가 분출되는 만남의 장소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던 곳이다. 푸른 가을 하늘에는 만국기가 펄럭이고 운동장에서는 토끼 새끼들보다 더 귀여운 아이들이 쉴 새 없이 깔깔거리며 마음껏 뛰어놀았다.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 아래서는 온 동네 주민들이 막걸리와 음료수를 마시며 모처럼 고된 농사일을 잊고 어린 아이들 틈새에 끼어 하루를 즐겼던 것이다.

풍선장수, 엿장수, 솜사탕 장수들은 언제나 운동장 한 구석을 빛내는 초대받지 않은 단골손님들이었다. 아무리 가난한 집 아이들이라 해도 이날 만큼은 눈깔사탕 하나 사먹을 정도의 용돈을 탔으며, 아무리 가난한 집 아낙이라 해도 이날 만큼은 정성껏 풀 먹여 다린 한복을 곱게 차려입다. 기마전, 줄다리기, 차전놀이, 달리기, 덤블링, 오자미 던지기, 마을 대항 씨름 등 다채로운 종목이 펼쳐질 때 울려 퍼지던 함성소리와 응원소리는 학교 울타리를 넘어 온 마을에 메아리쳤다. 교사와 학부모들끼리 겨루는 이어달리기는 운동회의 꽃이었다. 때로 서로 져주는 미덕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보통은 치열한 달리기 경쟁으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씩씩함, 떠들썩함, 여유로움이 한적한 시골학교를 흠뻑 적셨다. 사람 사는 정이 시냇물처럼 흘러넘치던 풍경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운동회란다.

이장님의 간곡한 방송이 두 번이나 울렸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허전하고 착잡한 마음을 달랠 수 없어 뒷동산에 올라가 소나무 아래 앉아서 혼자 막걸리를 마셨다. “잘 가라, 내 유년의 추억을 키워주었던 마음의 고향이여!”


기간제 교사 구하기도 힘든 농촌
▲ 옛 군서남초등학교에서 인근 마을 아이들이 농악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이제 시골 지역은 면소재지에 한 개 학교만 남기고 소규모의 오지학교는 거의 폐지되었다. 작은 학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비효율적이라는 것이 폐교의 이유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은 적어도 이 나라의 교육현장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미사여구에 불과하다.

지금 농촌은 위기를 맞고 있다. 농축산물 개방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감은 그나마 몇 안 되는 젊은 농군들마저 농촌을 등지게 하고 있다. 농촌을 떠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경제적 이유뿐만 아니라 열악한 문화적, 교육적 여건을 이농의 주요 이유로 꼽는다. 이제 젊은 사람들에게 농촌은 더 이상 살만한 곳이 못되는 것 같다.

교육적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교사들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교육대학을 졸업한 이 지역 교사들은 시골학교에 근무하려고 하지 않는다. 전남에는 도서벽지가 많아 기간제교사 구하기도 힘든 현실이다. 농어촌에 근무하고 있는 현직 교사들도 경기도 등 수도권 학교로 전근을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 농촌은 교사들에게도 버림받은 땅이 돼버렸다.

결국 두 아이 모두 바로 집 앞의 마을학교를 놔두고 10리나 떨어진 면소재지 초등학교에 통학버스를 타고 다닌다. 한가롭게 여유를 부리면서 걸어서 학교에 다니던 옛일을 더듬어보면 버스를 타고 다니는 두 아이의 처지가 몹시 딱하고 애처롭게 느껴진다. 아이들 웃음소리로 메아리치던 모정마을 초등학교 운동장은 이제 촌로들의 게이트볼 연습장이 되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웃음소리 대신 어른들의 고함소리와 호통소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시골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은 젊은 놈이 시골에서 살고 있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여기기도 한다. “오죽이나 못나서 농촌에서 살까”하고...

하지만 나에게는 버릴 수 없는 꿈이 있다. 그것은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구김살 없이 자라는 것이고, 나아가 다시 아이들이 돌아와 폐교된 운동장에서 옛날 우리가 했던 것처럼 마음껏 뛰어노는 것을 보는 것이다. 즉, 마을 공동체가 다시 젊어지고 되살아나는 것을 보고 싶다. 이것이 허망한 꿈만은 아니길 조심스럽게 빌어본다.
/글·사진=김창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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