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아이들에게 기대다


모정만추(茅亭晩秋)
▲ 모정마을 원풍정에서 바라본 월출산 달오름.

오늘밤은 달빛이 유난히도 밝습니다. 둘째 아이와 함께 차를 타고 집에 오는데 월출산 구정봉 위에 보름달이 둥실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한참 동안 차창 밖으로 달을 쳐다보다가 한 마디 합니다.

“아빠, 저 달은 우리가 좋은가 봐요. 계속 우리를 따라와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은근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린이다운 순수한 발상이자 때 묻지 않은 동심의 발현이었습니다.

“정말 그렇구나. 저 달은 우리 경민이를 엄청 좋아하나 보다. 집에 올 때까지 따라오는 것을 보니... 그렇지?”
“네, 아빠.”

말이 나온 김에 큰아들 형돈이 이야기도 하나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형돈이가 5살 때였습니다. 여름 장마철이었는데 마침 비가 그치고 난 직후 하얀 구름이 월출산을 기슭까지 덮고 있었습니다. 형돈이와 차를 몰고 영암읍내로 가고 있던 중이었는데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형돈이가 갑자기 나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빠, 산이 잠들면 구름이 덮어주지요?”
“왜 그렇지?”
“잠들면 추우니까, 따뜻하라고요.”
이 말을 듣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구름 덮인 산을 보고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아이의 마음은 하늘을 닮는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가 보구나. 정말 시인이 따로 없구나...” 아내한테 그 말을 했더니 아내 역시 깜짝 놀라는 모습이었습니다.

“시골에서 키우기를 잘한 것 같아요. 얼마나 감성이 풍부한 표현이에요? 어느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기발한 시적 표현이네요. 정말 따로 교육을 시킬 필요가 없네요. 변화무쌍한 자연 풍경이 스승이니까요.” 아내는 의기양양해서 말했습니다. 어린 아들의 순진한 말 한 마디에 완전히 감동 먹은 나는 그 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형돈이가 한 말을 일기장에 적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올 여름 장마 때 구름 덮인 월출산 풍경을 바라보던 경민이의 반응은 제 형과 좀 달랐습니다. 한참 동안 산을 바라보고 있더니 이렇게 묻더군요.
“아빠, 구름은 비가 오면 산 아래로 내려오고, 비가 안 오면 산 위로 올라가지요?”
“응 그래, 정말 그렇구나!”

가만히 들어보니 그 말 또한 맞는 말이었습니다. 같은 현상을 보고도 아이들의 생각은 이렇게 달랐습니다. 경민이의 비구름 표현 역시 아내와 나에게는 경이로움이었습니다. 순진한 우리 부부는 두 아이의 멋진 표현을 비교하면서 오랜 동안 되새김질했습니다.

▲ 추수가 끝난 모정 들녘 -들녘 건너편에 동호마을이 보인다.
그런데 오늘은 보름달을 쳐다보던 경민이가 아이다운 표현으로 또 한번 아빠를 놀라게 하는군요. 보름달처럼 환한 웃음을 지으며 밝게 대답하는 경민이의 손을 잡고 마당을 거닐었습니다. 마당가 감나무 가지에는 아직 따지 않고 남겨둔 때깔 좋은 감들이 달빛을 맞아 얼굴을 붉히고 있고, 이제 막 피기 시작한 토방 아래의 노란 국화와 금송화도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섬돌 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월인당의 가을 분위기를 한껏 돋구어주던 코스모스 꽃들도 그 세력이 이전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맵시 있는 자태를 아주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경민이는 달빛을 받아 더욱 하얗게 빛나고 있는 코스모스를 한 송이 꺾었습니다. 제 엄마한테 줄 선물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혼자 생각했습니다.

“그래, 코스모스는 언제나 그리움의 꽃이었지... 저 아이도 그것을 알고 있는 거야...”
또한 코스모스는 홀로 있을 때보다는 무리지어 있을 때, 잘 가꾸어진 정원보다는 한적한 시골길가에 피어있을 때, 소박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꽃입니다. 신작로 가에 무더기로 피어 황금빛 들녘을 배경으로 산들바람에 흔들거리는 코스모스를 보고서도 애틋한 그리움의 상념을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밤이 되어서 그런지 바깥 공기가 제법 쌀쌀합니다. 아이를 방으로 들여보내 놓고 다시 마당에 나왔습니다. 고샅 녘에 있는 시누대 숲이 달빛에 반짝거립니다. 가끔 개 짖는 소리만 가을밤의 적막을 깨뜨릴 뿐 지나가는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밤입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추수가 끝난 너른 들녘 너머로 멀리 맞은편 동네인 동호리가 내려다보입니다. 고즈넉한 마을의 가로등 불빛이 깜박거리며 쓸쓸히 가을밤을 지키고 있습니다. 반짝거리는 가로등 불빛은 저 마을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흔적입니다. 아무리 달빛이 좋고 가을 국화 향기가 진하다 해도 그 풍경 한구석에 사람이 없으면 웬지 허전하고 휑덩그레한 느낌이 드는 법입니다. 김홍도의 산수화에 항상 사람이 한 점을 차지하는 것 또한 이런 이치일 것입니다. 저 불빛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사람이 그리워집니다. 이런 밤이면 내 아무리 풍류를 모르는 목석같은 사내이지만 어찌 술 한잔 나눌 벗이 생각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함께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가을밤을 지새우던 고향 친구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없습니다. 혼자 보기에 아까운 이 아름다운 가을 달밤을 함께 나눌 벗이 없습니다. 담양에 살고 있는 농민 시인 고재종은 이 안타까운 마음을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사람의 등불 

                    고 재 종

저 뒷울 댓이파리에 부서지는 달빛
그 맑은 반짝임을 내 홀로 어이 보리

섬돌 밑에 자지러지는 귀뚜리랑 풀여치
그 구슬 묻은 울음 소리를 내 홀로 어이 들으리

누군가 금방 달려들 것 같은 저 사립 옆
젖어드는 이슬에 몸 무거워 오동잎도 툭툭 지는데

어허, 어찌 이리 서늘하고 푸르른 밤
주막집 달려가 막소주 한 잔 나눌 이 없어
마당가 홀로 서서 그리움에 애리다 보니

울 너머 저기 독집의 아직 꺼지지 않은 등불이
어찌 저리 따뜻한 지상의 노래인지 꿈인지


그 ‘따뜻한 지상의 노래이자 꿈인 등불’을 마음에 품고 방에 들어왔습니다. 고요히 잠들어 있는 두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니 정말 이 아이들이야말로 ‘사람의 등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난한 우리 부부의 희망, 우리들의 미래. 아직은 성숙하지 못하여 살아가면서 흔들리고 방황할 때 제대로 걸어 가야할 갈 길을 비추어주는 등대 같은 존재. 이 고요하고 쓸쓸한 가을밤에 그래도 이 아이들이 있어서 위로가 되고 안심이 됩니다. 문득 언젠가 동네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어른이라고 별 거 있다냐? 다 아이들 힘으로 사는 법이다.”
허허, 이 심오한 삶의 이치를 깨달아 가는 것을 보니, 이제껏 철없이 살았던 저도 마침내 어른이 되어가나 봅니다.
글/사진 김창오 편집위원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