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묶었다~ 풀었다~ ‘김창조의 대 이어’


  가야금 명인 한성기
“한성기(1889~1950)는 가야금 산조의 창시자인 김창조의 제자로 영암군 군서면 모정리에서 출생하였다. 한성기는 목포, 장흥, 대구 등지에 거주하면서 여러 사람에게 가야금 산조를 가르쳤다. 특히 1921년 김죽파(김창조의 손녀)가 11세 되던 해에 김죽파의 양부모(양기환)의 집에 초대되어 3년간 기거하면서 가야금 산조를 죽파에게 가르쳤다.

한성기는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난 관계로 군서면 모정리 태생지에서 결혼할 때까지 맏형 한만기와 함께 살면서 김창조 선생에게 가야금 산조를 사사하였다. 그는 가야금 연주자로 유명하여 이후에 타지역에 살면서도 마을 행사가 있을 경우에 초대되어 마을에 있는 광산김씨 문각인 사권당과 제각(선명제)에서 연주를 하였는데, 그 때마다 그의 연주를 듣기 위해 사람들이 사방에서 모여 들었다 한다. 연변대학 출판부에서 출판한 “조선민족음악가사전 상편”에 ‘한성기는 당시 첫 자리에 꼽히는 가야금 연주가로서 최옥삼을 전문적으로 맡아서 전수함’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를 보면 그는 당대 최고의 연주가인 것을 알 수 있다.”
- 가야금 산조의 창시자 김창조 선생
/ 양승희, 박철 편저


2000년에 영암문화원에서 발행한 책자에 소개된 한성기에 관한 내용이다. 나이가 지긋한 마을 주민들 또한 가야금 명인 한성기를 기억하고 있다. “가야금을 기가 막히게 탔제. 사권당이나 원풍정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면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몰려와서 들었지. 가락이 어찌나 변화무쌍하던지 듣는 사람들을 울리고 웃겼제” 마을 주민들은 옛 군서남초등학교 터에 “한옥형 가야금 전문학교”가 생겨 가야금 산조 전수에 활용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영암의 가야금 기행 - 가야금 산조 축제를 다녀와서

▲ 김창조-한성기-김죽파-양승희로 이어지는 영암 가야금 산조의 전통

영암의 너른 들녘에 나락이 영글어가고, 월출산 미왕재에 억새꽃이 허옇게 휘날리는 가을 어느 날, 가야금 명인 김창조와 한성기를 비롯한 그 제자들을 기리는 가야금 산조 축제가 열렸다. 그 동안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한 번도 관람해보지 못했던 터라 이번 만큼은 꼭 놓치지 않으리라 벼르고 벼르던 참이었다. 다행히 관람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행사장에 미리 가서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드디어 식전 행사가 시작 되면서 임이조 선생의 춤사위가 펼쳐졌다. 정지한 듯한 자세에서 고요하게 전개되는 몸짓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월출산 큰골에 운무가 피어오르는 듯, 구정봉 바람재에 세찬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듯, 때로는 버선발로 뛰어노니는 아이들의 발걸음을 보는 듯...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으랴
이윽고 이생강 선생의 대금 소리가 가슴을 훑어 내린다. 그림이나 글씨가 그렇듯, 좋은 예술 작품은 항상 변화를 내포하고 있는 법이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이른바 정중동(靜中動)이다. 고요함 속에서도 움직임이 있다. 마치 이 지구가 고요한 것 같으나 엄청난 속도로 자전하면서 태양을 공전하는 것처럼. 악기 중에서도 이 대금 소리처럼 정중동 효과를 잘 표현하는 악기는 없을 것이다. 대금을 만드는 재료부터가 그렇다. 대나무는 속이 비어있다. 속을 비움으로 해서 울림을 만든다. 머리가 혼잡할 때 대나무 숲으로 가서 걸어보라. 걸으면서 올곧게 하늘로 치솟아있는 대나무를 만나거든 잠시 걸음을 멈추고 대나무 표면에 손을 대고 느껴보라. 분명 울림소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인데, 대금을 만들 때는 대나무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아무 대나무나 막 베어서 대금을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스스로를 허락하여 악기가 되는 나무... 이것은 오직 대나무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중심을 텅 비워 스스로를 울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생강 선생의 대금 연주는 바로 스스로를 허락하여 안에 간직하고 있던 울림소리를 허공으로 틔워내는 대나무의 노래 가락에 다름 아니다. 마디 안에 수렴하여 간직하고 있던 은밀한 가락을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서는 명인의 숙련된 날숨과 들숨이 필요하다. 이생강 선생은 대나무와 호흡을 맞추어 공명한다. 애잔한 울림소리가 조그만 구멍을 통하여 낮게 깔리면, 마치 달빛 부서지는 가을 밤 대숲 속에 서 있는 듯하다. 소슬바람에 흔들리며 서걱대는 댓잎소리가 들리다 이어서 긴 탄식 소리가 들려온다. 세상을 잘못 살아온 사람들이 땅이 꺼져라 내쉬는 회한의 탄식 소리... 이윽고 그 소리는 어깨를 들썩이며 참아내는 흐느낌 소리로 변한다. 그 대금 소리를 따라 가면서 흐느껴 울다보면 어느덧 맺혔던 한(恨)이 소멸되고 대숲 사이로 불어오는 신선한 가을 바람소리를 듣게 된다. 어느 누가 이 부조리한 세상을 온전히 살아온 사람이 있겠는가? 시인 랭보는 말했다, 이 세상에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느냐고. 대금 소리는 바로 그 상처를, 한을 어루만져주는 치유의 소리이다.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
기념식이 끝나자 본격적인 산조축제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무대에 불이 꺼지고, 다시 조명등이 켜지면서 5인의 악사와 함께 박병천 선생이 흰 옷을 입은 채 등장한다. 6년 전 보성 소리 축제에서 박병천 선생의 진도 북춤을 보기 전까지는 북이 그렇게 매력이 있는 악기인 줄 미처 몰랐다. 10여 년 전에 광주 금남로에서 대구 날뫼북춤을 본 적이 있는데, 질서 정연한 고수들의 움직임과 그 웅장한 북 소리에 크게 감명 받았다. 대부분의 북이 집단놀이를 할 때 일부분의 역할을 담당하는데 비해 진도 북춤은 개인놀이이다. 그리고 양손에 북채를 들고 춤을 춘다. 보성에서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스크린으로 춤사위를 볼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 영암 무대에서는 앞자리에 앉아서 제대로 감상했다. 칠순의 나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박병천 선생의 춤사위는 여유로우면서도 힘찼다. 쌍채북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어깨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 누가 신명이 나지 않을 수 있으랴!

박병천 선생을 보면서 또 한 가지 느끼는 점이 있다. 그것은 은근히 노년이 기다려지는 일이다. ‘사람이 저렇게 나이 들어 갈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큰 용기를 갖게 된다. 사실 60세 정년이란 말은 모욕적인 말이다. 꿈이 있는 한 정년은 없을 테니까. 나이만 젊으면서 생각은 늙어버린 청년들이 얼마나 많은가? 박 선생님의 북소리는 꿈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호되게 나무라는 죽비소리와도 같다. 세상은 꿈꾸는 사람의 것이라고...

▲ 모정마을 한성기 명인이 살았던 생가 전경.
잠시 김창조 선생과 가야금 산조에 대한 영상자료가 상영되던 중 모정리 출신의 가야금 명인 한성기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한 마을 동향인으로서 반가웠다. 앞서 언급했지만 어른들 말씀을 들어보면 동네에 큰 잔치가 있으면 꼭 오셔서 직접 가야금을 연주하셨다고 한다. 원풍정이나, 사권당에서 한성기 선생이 가야금을 연주하면 인근 동네 사람들까지 몰려와서 구경했다고 한다.

조통달 선생의 축시와 창이 끝나고 양승희 가야금 명인의 죽파류 가야금 산조가 시작되었다. 김창조-한성기-김죽파-양승희 선생으로 이어지는 산조 소리였다. 그 가야금 선율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과거라고 해서 다 같은 과거가 아니다. 단절된 과거가 있는가 하면 현재와 끈을 맺는 과거가 있다. ‘김창조’라는 과거가 ‘한성기, 김죽파’라는 매개물을 통하여 컴컴한 시공을 뚫고 한 줄기 ‘빛’, 즉 ‘가야금 선율’로 ‘양승희’라는 현재에 도달한다. 따라서 김창조는 ‘단순 과거’가 아니라 “현재완료”가 된다. 스승과 제자들 사이에 흐르는 혈연보다 끈끈한 유대감, 여기서 인간의 위대성을 본다. 인간의 대(代)가 반드시 핏줄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리라.


#소리를 묶었다 푼다
양승희 선생의 가야금은 점점 더 오묘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한 손으로는 줄을 누르고 또 한 손으로는 줄을 튕긴다. 소리를 묶었다 푼다. 듣는 이의 마음도 맺혔다 풀어진다. 갑자기 소리가 흩어졌다 다시 모아진다. 듣는 이의 마음도 흩어졌다 모아진다. 나는 가야금을 탈 줄 모른다. 물론 대금도 연주할 줄 모른다. 그러니 그냥 들을 수밖에. 마음을 툭 터놓고 가야금 선율이 가는 곳으로 따라간다. 그러다가 문득 불경스러운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만일 저 바쁘게 움직이는 손가락이 어느 한 곳이라도 잘못 누른다면, 저 황홀한 선율이 유지될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음계의 질서가 깨지고 화음이 망가질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하는 걱정은 말 그대로 기우일 뿐이다. 연주자와 가야금은 일심동체가 되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목적지까지 동행한다.

바람이 지나는 ‘바람 길’이 있듯이 소리가 지나가는 ‘소리 길’이 있다. 바람이나 소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 바람과는 달리 소리는 사람들의 가슴 속을 파고든다. 사람들은 저마다 현이 없는 악기를 마음속에 품고 있다. 이른바 심금(心琴)이다. 양승희 선생의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소리 길을 타고 관객들의 가슴 속을 뚫고 지나간다. 소리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살아온 과정이 다른 만큼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소리를 이해한다. 하지만 소리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 해도 좋은 연주는 결국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고 다양한 체험을 하나의 용광로 속에 통합시킨다. 그것은 바로 감동이다. 심금을 울리는 소리는 점점 고조되고 마침내 하나의 소리가 되어 밖으로 터져 나온다. 연주가 끝난 자리에 커다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진다.    글/사진=김창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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