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 모양의 장굴동, 원이름은 잠곡동
논 가운데 우뚝 솟은 아파트, 신주거지로


누에모양의 잠곡동(蠶谷洞)
▲ 영암읍내 쪽에서 바라본 잠곡동마을

기상대 일기예보의 부정확함을 익히 알고 있지만, 이번에도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예보가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곳에 따라 오는 곳이 있겠습니다.”라는 예보는 “오는 곳도 있고 안오는 곳도 있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너희들이 알아서 판단해라”라는 뜻으로 들린다. 태풍 ‘갈매기’때문에 강한 바람이 불고 많은 비가 내린다는 예보에 긴장을 했지만, 영암지역은 약간의 실비만 간혹 흩뿌렸다.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중부지방은 200mm가 훨씬 넘는 폭우가 내려 큰 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영암은 며칠째 찌뿌듯한 흐린 날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불쾌지수가 치솟는 오후 잠곡동을 찾았다. 이 마을은 평야지로 지형이 누에처럼 생겼다고 해서 누에잠(蠶) 골곡(谷)을 붙여 잠곡동(蠶谷洞)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장굴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장암마을 쪽으로 영암여중·고 정문을 지나 학교 모퉁이를 끼고 우측으로 350m쯤 가면, 왼편에 잠곡정이 있고 오른쪽 길가에는 마을회관이 있다. 구불구불한 길을 계속가면 터미널과 읍사무소의 중간 길과 연결된다.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왼쪽건너 논에는 모가 2자가 넘게 자라서 푸르른 모습으로 넘실대는 들이 펼쳐져 있다.

2005년에 지은 잠곡정에 가서 앉았다. 정자의 북쪽 앞으로 강진으로 가는 도로(국도 13호)가 들판을 가로질러서 지난다. 도로 밑으로 난 샛길(농로)은 저 너머에 보이는 대신마을과 이어져 있다. 한낮의 더위를 피해 동네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하나둘씩 모여 들더니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가져온 튀밥을 권한다. 한 할머니는 “조선 땅에서 이렇게 시원한 곳은 없을 거요”라며 자랑한다. 할머니는 또 “앞들에 예전에는 바닷물이 들어 왔다요. 저 앞 논가에는 당산나무가 서 있었는데, 그 곳은 섬데기(조그만 섬)였다요. 이 마을은 배의 모양이어서 그 곳에 있는 나무를 돛으로 여겨서 중하게 여겼다요. 그런데 몇해전에 비바람에 쓰러졌어라. 그 후 마을에 우환이 있어 동네 젊은 사람들이 나무를 새로 심어 놓았다요.”라고 말한다.


새터의 외로운 천씨할머니
영암여중·고와 청송드림빌 아파트 사이의 마을이 샛터다. 잠곡마을회관 못미쳐 우측으로 20m를 가면 아파트입구가 나온다. 아파트 입구 맞은편으로 난 길(잠곡동1길)을 300m쯤 가면 큰 길과 이어지고 건너편이 영암5일 장터다. 길(잠곡동1길)의 좌우로 집들이 이어져 있다. 도중에 대문을 열어놓고 따가운 햇살을 피해 그늘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만났다. 천씨할머니(82)는 자신이 앉은 의자를 내주며 손님을 대접한다. “이 마을은 제가 어렸을 때 밭이었던 곳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자 “맞소. 60~70년대부터 집을 지어서 점차 마을이 되었지라.”라고 한다. 지금은 25가구 정도 살고 있다. “이곳은 공장도 없고 회사도 없어서 먹고 살기가 힘들지라. 공기 하나는 좋소. 참! 이제는 물도 깨끗지가 못해서 나는 끓여 먹는데 젊은 사람들은 사서 마십디다.” 할머니는 지나온 세월의 잔상을 끄집어낸다. “여자들은 가르쳐봐야 소용이 없다고 해서 학교는 문턱도 못 밟아 보았소. 내 이름만 겨우 쓸 정도요. 젊어서부터 농사만 짓고 살았소. 올해는 논 두방구(9마지기)를 짓는 디 기계가 해준다고 하지만, 거름할라 풀멜라. 이것저것 할 것이 많아서 이제는 힘이 들어 못 하것소.”라며 한숨을 짓는다.

▲ 마을회관 앞 길 전경
“영감님은 30여년전에 그만 떴구만이라. 고생만 하다 돌아가셨소. 6남매를 뒀는디 ‘산 입에 거미줄 안 친다’고 애들이 어느 정도 크고 영감님과 살 때 모아둔 재산이 조금 있어 어찌 어찌해서 보내고 이제는 자식 덕에 살아가고 있다오.”

할머니의 추억을 떠올리는 말 속에는 먼저 보낸 영감님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홀로 살아남은 미안함도 묻어 나온다.

청송드림빌 아파트는 올해에 분구되어 춘양리 3구가 되었다. 이 아파트는 2005년에 150세대의 규모로 지어졌으며 젊은 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동네 할머니는 “아파트에 있는 놀이터는 이웃마을의 아이들도 와서 놀고 간답니다. 주변에 놀이시설이 없어서 이곳까지 온갑습디다.”하고 말한다.

생활의 편리함 때문에 지어지는 아파트. 하지만 마을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아파트 한 채. 이 아파트를 보면서 우리 시가지 건축문화에 대해 생각해본다. 건축은 마을이나 도시의전체적인 모습을 구상하면서 주위환경과 조화되는 개발을 해야 할 것이다. 영암의 아름다운모습도 관광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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