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 줄다리기 ②


대보름날 새 배 온 모정마을 사위들

▲ 지난 2008년 순천에서 열린 남도문화제 참가를 위해 마을에서 줄다리기 연습을 하고 있는 모정마을 주민들이 용줄을 당기고 있다.
용줄을 어깨에 메고 설소리꾼의 구성진 가락에 맞추어 상사소리를 하면서 온 마을 골목길을
누비던 줄꾼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차 신명이 난다. 용줄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기 때문이다. 동네 중앙 한복판을 관통하면서 동서를 나누는 한 골목에서 서로 마주칠 경우에는 굉장한 기싸움을 벌어진다. 마을 주민인 신상길씨(65)는 이렇게 말한다. “한 골목에서 서로 마주치면 경쟁이나 하듯이 설소리꾼들의 앞소리와 줄꾼들의 상사소리가 커졌제. 웃으면서 장난을 많이 치기도 했지만, 또한 상대를 깔보고 얕잡아보는 걸쭉한 육담을 내뱉기도 하고 서로를 째려보면서 눈을 부라리기도 했다. 초장부터 상대편의 기를 콱 눌러놔야 나중에 유리할 것이라고 다들 생각했었으니까.” 줄다리기가 동네의 단결과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친선놀이기는 하지만, 줄다리기 놀이의 특성상 한 번 경기가 시작되면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오기가 작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이 끝나면 이제 놀이꾼들은 본격적인 줄다리기를 하기 위해 마을 공터에 모인다. 그러면 미리 와 있던 풍물패가 신나게 풍물을 치면서 도착한 줄꾼들을 환영한다. 아주 큰 줄을 당길 때는 ‘알춤(마을 아래 공터)’이나 동네 앞 논에서 당겼고, 보다 작은 줄을 당길 때는 ‘울춤(마을 위쪽 공터)’에서 당겼다. 줄다리기 규모가 클 때에는 참가 인원만 해도 1,000여명이 넘었고 인근 마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왔다. 모정마을의 사위들은 설날에 처가댁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대보름 줄굿을 보기 위해 대보름날 새해 인사를 왔다. 그들은 정월 스무날까지 5일 동안이나 처가에 머무르면서 줄다리기 행사를 함께 즐겼다.

줄 사려놓고 제 지내기
마을 공터에 도착한 동쪽 서쪽 줄꾼들은 각자의 줄을 곱게 사려 놓는다. 용줄을 사리면서 설소리꾼의 앞소리에 맞추어 줄꾼들이 뒷소리(상사 뒤어 뒤어 뒤어, 뒤어 뒤어 어디어 뒤어)를 한다. 줄을 사려놓고 정성껏 제를 올린다.


“사리로 가세 사리로 가 용줄을 사리로 가
상사 뒤어 뒤어 뒤어    뒤어 뒤어 어디어 뒤어
달이 떴네 달이 떴네 월출산에 달이떴네
상사 뒤어 뒤어 뒤어    뒤어 뒤어 어디어 뒤어
밝디 밝은 저 보름달 잠시잠깐 훔쳐다가 
상사 뒤어 뒤어 뒤어    뒤어 뒤어 어디어 뒤어
 천황봉에 걸어놓고 우리 줄을 사려보세 
상사 뒤어 뒤어 뒤어    뒤어 뒤어 어뒤어 뒤어
곱게 곱게 모셔다가 올해풍년 빌어보세 
상사 뒤어 뒤어 뒤어    뒤어 뒤어 어뒤어 뒤어
사려보세 사려봐요 우리용줄 사려보세 
상사 뒤어 뒤어 뒤어  뒤어 뒤어 어뒤어 뒤어
잘도 허네 잘도 하네 우리성전 잘도 허네
상사 뒤어 뒤어 뒤어   뒤어 뒤어 어뒤어 뒤어
우리모두 힘을합처 우리서쪽 이겨나보세 
상사 뒤어 뒤어 뒤어  뒤어 뒤어 어뒤어 뒤어
우리모두 힘을 합처 우리동쪽 이겨나 보세 
상사 뒤어 뒤어 뒤어   뒤어 뒤어 어디어 뒤어
상사 뒤어 뒤어 뒤어 뒤어 뒤어 어디어 뒤어
상사 뒤어 뒤어 뒤어   뒤어 뒤어 어디어 뒤어“

줄 풀기 - <가세 가세 줄 풀러 가>
제를 지낸 다음 노래를 부르면서 줄을 푼다. 이 때 하는 뒷소리는 “가세 가세 줄 풀러 가” 이다. 줄을 풀면서 동쪽 서쪽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줄 당길 준비를 한다.


“가세 가세 줄 풀러 가
가세 가세 줄 풀러 가   
줄 풀러 가세 줄 풀러 가
가세 가세 줄 풀러 가   
동쪽 사람 동쪽으로
가세 가세 줄 풀러 가
서쪽 사람 서쪽으로
가세 가세 줄 풀러 가
울춤 사람 알춤 사람
가세 가세 줄 풀러 가
모두모여 줄 풀어 보세
가세 가세 줄 풀러 가
달아 달아 둥근 달아
가세 가세 줄 풀러 가
성전 가는데 비춰주소
가세 가세 줄 풀러 가
산아 산아 월출산아
가세 가세 줄 풀러 가
높으다고 자랑마라 
가세 가세 줄 풀러 가
우리 성전  나가는데
가세 가세 줄 풀러 가
달 가릴까  걱정이네
가세 가세 줄 풀러 가“
 
줄 당기기-<여어차 우여라>, <깔아>
줄 당길 분위기가 고조되면 숫줄을 치켜들고 “고 들어간다” 하면서 암줄과 숫줄의 결합을 시도한다. 몇 차례의 장난을 즐긴 다음 암줄과 숫줄을 결합시킨다. 그리고 ‘골목대(비녀목)’를 끼우자 마자 “여어차 우여라”하면서 줄을 잡아당긴다. 모정마을 줄을 당길 때 내는 함성 소리는 “여어차 우여라, 여어차 우여라, ...”이다. ‘여어차’는 호흡을 가다듬는 과정이고 ‘우여라’는 있는 힘을 다 쏟아 부으면서 내지르는 고함소리이다.

▲ 영암 실내체육관에서 군서면 32개 전 마을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줄다리기 연습을 하고 있다.

모정 줄다리기는 서쪽팀(암줄)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하는 속신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줄을 당길 때는 서쪽 동쪽 어느 쪽도 한 치의 양보도 없다. 한 번 지면 다음 대보름까지 일년을 기다려야 하는데다, 진 쪽은 일 년 동안 은근한 괄시와 무시를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모정 줄다리기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아주 재미있고 독특한 점이 있다. 줄다리기 중에 어느 한 쪽이 불리할 경우, “깔아”라는 응원대장의 구호에 따라 줄꾼들 전체가 일제히 줄을 땅에 깔고 그 위에 앉아서 버틸 수 있다. 용줄이 땅에 깔리면 어지간해서는 줄이 끌려가지 않는다. 줄 위에서 잠시 한숨을 돌리면서 기회를 엿보다가 상대방에게서 방심한 틈이 보이면 갑자기 줄을 잡고 “여어차 우여라”하면서 다시 줄다리기를 시도한다. 또한 모정 줄다리기의 승패는 어느 한 쪽의 줄 끝이 정해놓은 지점에 닿아야 결정이 난다. 줄다리기에서 이긴 팀은 진 팀에게 달려가서 “모세파기(부스럼주기)” 의식을 갖는다. 줄다리기의 승부가 나면, 승리한 쪽은 노래를 부르면서 풍물을 친다. 나중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대동놀이가 한판 어우러진다. 남녀노소가 함께 참여한 줄다리기가 끝나면, 여자들만 따로 모여 강강수월래를 했다. 줄다리기 행사가 마무리되면, 대개 마을 사람들이 줄을 조금씩 잘라서 집으로 가지고 간다.

남도문화제에서 ‘얼’상 획득
모정마을 줄다리기는 정월 대보름부터 20일 까지 계속되었으며, 2월 초 하루까지 연장되는 경우도 있었다. 벼농사의 풍년을 비는 마음을 담아서, 그리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풍수적 의미를 더하여 시작된 모정 줄다리기는 온 마을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마을의 단합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모정리 이장인 김상재(58)씨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마을 줄다리기는 후손들이 전통계승 발전시켜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농촌이 고령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전통문화유산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어려움이 많지만, 조상님들이 물려주신 소중한 전통을 단절시키지 않고 계속 유지해 나가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작년에는 순천 남도문화제에 민속놀이 부분 영암군 대표로 참가하여 우수상인 ‘얼’상을 받았다. “더욱 열심히 연습하여 대상을 받고 싶은 욕심이 있다.” 모정마을 주민들의 소박하면서도 당찬 꿈이 꼭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글/사진 김창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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