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떠오네 달 떠오네 월출산에 달 떠오네


남녀노소가 참여하는 대농놀이
모정마을의 정월 대보름 세시풍속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참여하는 줄다리기와 여자들만 참여하는 강강수월래가 있다. 이 중 모정 줄다리기는 약 200년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남녀노소가 참여한 대동놀이다. 여자들의 민속놀이였던 강강수월래는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박정희 시대에 단절되었지만, 줄다리기 풍습은 단절되지 않고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모정마을은 전체 형국으로 보면 원래 누운 소 형국(와우형국)이다.

그런데 멀리 언머리에서 덕진포로 이어지는 바다에서 바라보면 마치 배가 한 척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지형을 배(舟) 형국으로 파악하기도 했다. 일부 각도에서만 바라보면 마을의 한쪽 지형만 두드러지게 드러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모정마을 주민들은 주기적으로 줄다리기를 하여 땅의 기운을 눌러주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모정 줄다리기에서 줄은 배의 닻줄을 상징한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이 배 형국이어서 배 닻을 감는 형태를 하면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튼튼한 닻줄로 배를 붙들어 놓으면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모정마을 줄다리기는 한 해 농사의 풍년과 동네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의적 의미뿐만 아니라 마을의 지형과 관련된 풍수적 의미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모정마을 줄다리기는 줄의 제작과정, 줄 놀이 과정, 줄다리기 과정, 줄의 처리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줄의 제작과정-<꼰나세 꼰나세 양짝에 꼰나세>
▲ 꼰나세 꼰나세 양짝에 꼰나세. 줄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온 마을 사람들은 하나가 된다.

줄의 제작은 정월 5일부터 대보름까지 10일간에 걸쳐서 이루어진다. 가가호호에서 짚을 거출하여 마을 공터에 쌓아 놓고 그 짚으로 줄을 만든다. 줄을 만들 때 “꼰나세 꼰나세 양짝에 꼰나세”(꼬세 꼬세 양손으로 꼬세)라는 노동요를 부르면서 손발을 맞춘다. 이 때 부르는 노동요는 가락이 빠르고 경쾌하며 힘이 넘친다. 처음에는 천천히 부르다가 뒤로 갈수록 가락이 빨라진다. 이는 줄의 길이가 뒤로 갈수록 짧아지는 관계로 호흡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래와 같은 내용의 가사인데 모정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줄다리기 노동요이다.

<꼰나세 꼰나세 양짝에 꼰나세
꼰나세 꼰나세 양짝에 꼰나세
이 줄을 만들어서 꼰나세 꼰나세
무엇에 쓸꼬허니 양짝에 꼰나세
대보름날 잔치에 꼰나세 꼰나세
줄다리기 할라네 양짝에 꼰나세
잘도하네 잘도하네 꼰나세 꼰나세
우리동쪽 잘도하네 양짝에 꼰나세
잘도하네 잘도하네 꼰나세 꼰나세
우리서쪽 잘도하네 양짝에 꼰나세
오른손 받고 꼰나세 꼰나세 꼰나세
왼손 주고 꼰나세 양짝에 꼰나세
오른손 주고 꼰나세
꼰나세 꼰나세
왼손 받고 꼰나세
양짝에 꼰나세
꼰나세 꼰나세
꼰나세 꼰나세
양짝에 꼰나세>

동쪽 줄과 서쪽 줄을 따로따로 만드는데 서로 크고 튼튼한 줄을 만들기 위해 경쟁이 치열하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줄다리기를 하기 위해 조그만 하게 줄(동줄)을 만든다. 매일 줄을 만들어 줄다리기를 하다가 날이 갈수록 참여 계층이 마을 청년으로 그리고 마을 어른들로 점차 확대된다. 줄의 크기 또한 점점 커진다.

그래서 정월 14일이 되면 여러 가닥의 줄이 만들어 진다. 14일에 큰 줄이 제작되면 줄의 고 밑 부분에 ‘연목대’라 하여 긴 통나무 3개를 붙인다. 연목대는 힘센 장정들이 ‘줄 탄 사람’을 고 위에 태우기 위한 일종의 받침대이다. ‘줄탄 사람’을 ‘설소리꾼’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위에 올라타서 줄다리기 놀이꾼들을 진두지휘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용줄은 하루 밤 잠을 잔 후 대보름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 여러 가닥의 작은 줄을 다시 큰 줄로 합친다.

▲ 연목대를 용줄에 끼우는 과정. 설소리꾼이 저 연목대를 타고 앞소리를 하면서 온 동네를 돌아다닌다.
▲ 마침내 완성된 용줄의 모습. 용줄은 암줄과 숫줄 한 쌍으로 이루어진다.


■줄 놀이 과정-<상사아 듸여어 어듸여>
대보름 저녁이 되면 마을 가운데 한 골목(큰 길)을 경계로 동서로 편을 나누어 서쪽팀은 암줄을, 동쪽팀은 숫줄을 메고 양쪽 다 모두 ‘줄탄 사람’을 태운 채 동네 안을 돌아다니는 줄놀이 과정으로 전개된다. 줄을 메고 온 동네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상사’소리를 하는데, 앞소리는 고 위에 탄 설소리꾼(줄탄 사람)이 하고, 뒷소리는 줄을 메고 가는 놀잇꾼들이 하는 방식인 선후교환창으로 불러진다. 설소리꾼이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락에 전래가사뿐만 아니라 즉흥적인 가사를 붙여 부르면 줄을 멘 놀이꾼들은 “상사아 듸여어 어듸여”하는 모정마을의 전통가락으로 답한다. 줄을 메고 서쪽 동쪽 골목길을 다니면서 하는 아래와 같은 소리 또한 모정마을 줄다리기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전래 가락이다.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상사 소리를 더 크게 하소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달 떠오네 달 떠오네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월출산에 달 떠오네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하늘에는 달빛도 밝다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동쪽 사람들 많이 나와주소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하늘에는 잔별도 많다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서쪽 사람들 많이 나와 주소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저 건너 갈미봉에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비가 담뿍 몰아오네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모정뜰 저 너머에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안개끼고 비 몰아오네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동쪽줄은 용의 대장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서쪽줄은 실비암 꼴랑지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서쪽줄은 용의 대장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동쪽줄은 실비암 꼴랑지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당거나 보세 당거나 보세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동쪽 서쪽 당거나 보세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동쪽이 이기면 풍년들고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서쪽이 이기면 무병하네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동쪽이 이기면 쌀밥 먹고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서쪽이 이기면 보리밥 먹고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당거나 보세 당거나 보세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동쪽 서쪽 당거나 보세 상사아 디여어 어디어>

멀리 월출산 위로 둥근 대보름달이 불끈 솟아오르면 모정마을 줄다리기는 점점 절정을 향해 치닫기 시작한다. 용줄을 탄 설소리꾼의 앞소리에 호응하여 줄꾼들이 상사소리로 답하면서 온 동네 골목골목을 누빈다. 때로는 가까이서, 때로는 멀리서 들려오는 줄꾼들의 상사소리는 온 동네 사람들을 집 밖으로 끌어내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련하게 들려오는 그 상사소리는 태고(太古)부터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 내재되어 면면히 전해져오는 고향의 소리, 어머니의 소리였다. 어머니가 부르는 그 소리를 듣고서도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온 마을은 휘영청 밝은 달빛과 줄꾼들의 상사소리와 온동네 사람들의 떠들썩한 흥겨움으로 휩싸였다. 대동세상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계속>
글/사진 김창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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