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찌다 둘러앉아 막걸리 한사발 "카~"


     #모심과 섬김의 노동
▲ 모정마을 호수(모정지)와 지남들녘.
너른 들녘 한 가운데 위치한 마을답게 모정들녘의 6월은 그야말로 보리 베기와 모내기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달이다. “부지깽이도 들에 나와서 일을 거둔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시기이다. 지금이야 기계로 심지만, 과거에는 모두 손으로 심었다. 너른 들녘은 온통 모내기하는 사람들도 가득 찼으며, 일꾼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가 논두렁을 따라 이웃한 논으로 마실가곤 했었다. 모내기는 그야말로 일년 농사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행사이다. 모내기 날짜가 잡히면 어머니들은 오일장에 가서 일꾼들 새참거리 재료를 미리 준비했다. 모심는 날이 평일일 경우에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은 보통 조퇴를 하거나 아예 결석계를 제출했다. 막걸리 주전자라도 들어 나를 일손이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월출산에 여명이 희미하게 비치는 새벽에 일꾼들은 못자리에서 상봉한다. 아짐들은 지푸라기를 한 다발 넣은 다라이를 하나씩 가지고 와서 그 위에 앉은 채 못자리에서 모를 찐다. 남자들은 보통 지게를 지고 와서 아짐들이 쪄놓은 모를 바작에 담아 논 밖으로 이동시킨다. 그리고 다시 리어카나 경운기에 실어 모내기할 논으로 가져가서 모 타래를 고르게 흩뿌려 놓는다. 천황봉 위로 해가 떠오르기 전까지 모찌는 작업을 끝마쳐야 하루 일이 순조롭다. 심을 모를 다 찌면 그때서야 서로 옹기종기 둘러 앉아 아침을 먹는다. 논 주인은
▲ 울춤사장에서 내려다 본 모정마을과 앞 들녘.
정성껏 준비한 밥을 리어카로 실어 나른다. “고시래~!”, 고요한 아침 들녘은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인 농민들이 외치는 그 모심의 소리를 들으면서 비로소 깊은 잠에서 깨어나 단정히 좌정한다. 삶은 닭, 새로 무친 김치, 하얀 쌀밥, 맛을 넣어 끓인 미역국, 오징어채 무침, 미나리와 당근을 섞어 얼큰하게 버무린 간재미회, 등 푸른 고등어조림 등 평소에 집에서는 구경도 못할 진수성찬이 논두렁 위에 펼쳐진다. 일꾼들은 들밥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서로를 격려한다. 들길을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불러서 한 숟갈 함께 뜨기를 권한다. 요즘 사람들이 새삼 추구하고 있는 “나눔과 섬김”이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원래 손모를 심을 때는 두 종류의 못줄이 필요하다. 씨줄과 날줄로 이해하면 되겠는데, 이랑과 이랑의 간격을 표시하는 못줄과, 모를 꽂아야 할 자리를 표시하는 못줄이 있다. 먼저 이랑을 표시하는 못줄을 세로로 띄운 뒤에 두 사람이 가로줄을 들고 양쪽에서 못줄을 띄워나간다. 못줄 잡이의 역할은 모내기를 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일의 속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수시로 추임새를 넣어주면서 흥을 돋우어야 한다.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하고 일꾼들의 노래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협동과 배려의 노동
모내기는 다른 농사일과는 달리 뒷걸음질을 치며 하는 노동이다. 일이 되어가는 상황을 보기 위해서 뒤를
▲ 모내기를 기다리고 있는 마을 앞 들녘, 맞은 편 멀리 동호마을이 보인다.
자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 속담에 “눈처럼 게으른 것이 없고 손처럼 부지런한 것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 모내기가 그렇다. 모내기의 성패는 얼마나 일꾼들에게 뒤돌아볼 틈을 주지 않고 일에 집중하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보통 10명이 한 조가 되어 일을 하는데 모내기할 때는 서로 리듬과 박자를 잘 맞추어야 한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는 동작을 반복한다. 그러니까 이웃한 사람들끼리 한 번은 헤어졌다, 한 번은 만났다 하면서 일을 하는 것이다. 제일 손이 빠른 일꾼을 가운데에 배치한다. 만일 이웃한 사람의 손이 느려 모를 몇 포기 못 심는다면 손이 빠른 일꾼이 그 만큼 더 모를 심어줘야 한다. 가운데 들어간 일꾼은 엄청난 속도로 허리를 펼 여유도 없이 모를 심어야 한다, 논에 모를 꽂는 소리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못줄 잡이는 이런 상황을 잘 파악하면서 못줄을 띄워야 한다. 일꾼들이 모두 다 심을 때 까지 기다리다 못줄을 넘기면 일이 더디어서 굴지 않는다. 그래서 80%정도 일이 진행되었을 때, “자아~!” 하고 큰 소리로 못줄을 다음 이랑으로 넘기겠다는 신호를 보낸다. 못줄잡이의 재촉 신호음을 듣게 되면 일꾼들의 마음이 급해지면서 손이 더욱 빨라지게 된다. 손이 느린 사람은 못줄에 코가 걸리기도 했다.

모쟁이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모를 배급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일의 전체 상황을 봐가면서 모가 모자란 곳으로 제때에 모를 가져다줘야 한다. 장난이 심한 일꾼들은 일부로 모 타래를 세게 던져서 일꾼들의 등에 맞추기도 하고 바로 앞에 떨어뜨려 물장구를 치기도 한다. 초등학교 정도의 아이들은 못자리용 큰 비닐에 모 타래를 가득 싣고 배처럼 끌고 다니면서 어른들에게 모를 배급했다.


     #인간은 흙에서 멀어질 때 타락한다
일꾼들에게 흥을 돋우는 방법의 한 가지는 노래 외에도 막걸리 새참을 눈에 잘 띄도록 논두렁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그 새참이 있는 곳까지 모내기를 하면 쉴 수 있기 때문에 일꾼들은 젖 먹던 힘까지 내서 열심히 일을 한다. 때로는 일꾼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막걸리 주전자를 살짝 뒤로 이동시켜 놓기도 한다. 일의 진척 속도에 따라서 이런 기술적인 변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렇게 정신없이 일을 하다보면 바다처럼 넓게 보이던 논배미가 어느덧 어린 모로 가득 찬다. 마지막 못줄을 띄고 거머리 뜯긴 종아리를 논으로부터 건져 올리면 마침내 모내기 일과가 끝이 난다. 거의 은적산 봉우리 위로 엷은 주홍빛 노을이 지는 것과 동시에 일을 마친다. 하루 노동을 끝낸 후 졸졸 흐르는 또랑물에 발을 담그고 미끈거리는 논흙을 씻어 낼 때의 그 기분이란! 뿌듯함으로 가슴이 벅차오고 머리가 맑아진다. 김남주 시인이 왜 “인간은 흙에서 멀어질 때 타락한다”는 말을 했는지 저절로 깨닫게 된다.


     #이미 사라진 것들, 그리하여 그리움만 더하는 것들
예전 같으면 지금은 보리 탈곡과 이모작 모내기가 한창일 시기이다. 들녘 사방에서 모내기꾼들의 흥겨운 노래 소리가 들려오고 논두렁 여기저기마다 들밥을 먹으며 정담을 나누는 농부들의 모습이 유월의 정취를 더해주었다. 막걸리 새참 들어 나르면서 들길에서 마주치던 소년 소녀들의 수줍은 눈빛은 또 어떠했는가? 모내기가 빨리 끝난 모둠이 집으로 돌아가던 중 아직 일이 더디어 힘겨워하는 이웃들을 보면 차마 그냥 지나가지 못했다. 깨끗이 씻은 발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이웃집 논에 들어가 손을 붙였다. 이것이 바로 우리 조선 민족의 마음 아니었던가? 이것이 바로 요즘 일부 젊은이들이 꿈꾸는 생태 공동체마을이 아니었던가? 이제 그 곱던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백발이 성성한 팔십대 노인이 되어버렸다. 못줄을 잡고 튕기면서 함께 농민가를 부르며 막걸리 한 사발 나누어 마시던 농부들이 서있던 그 자리를 우락부락하게 생긴 트랙터와 이앙기가 대신하고 있다. 저렇게 너른 십리평야에 사람 그림자 하나 보기 힘들다. 모두가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갔기 때문이리라. 흙을 떠나, 인정 많던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 행복하냐고...    글 / 사진 김창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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