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 년 전, 나는 영암군 서호면에 자리한 장천초교에 입학했다. 어린 국민이 처음으로 국가를 만난 것이다. 내게 다가온 국가는 참으로 위대했다. 비록 월사금을 받기는 했지만 네모반듯한 교실에서 책걸상은 없어도 훌륭한 선생님께 공부할 수 있게 해 줬다. 때론 우윳가루, 옥수수 가루도 나눠줬고, 구호품도 선물했다. 많은 동무들과 함께 먼 길을 등하교 했다. 도갑사까지 걸어서 소풍도 갔다. 간대바위에도, 성재리 부두에도 갔다. 선생님은 신비함 그 자체였다. 변소에도 안갈 것 같은 선생님은 우리들의 하늘이었다. 선생님이 웃으면 교실이 웃
말복 더위 벗 삼아 다섯이랑 밭 붉은 고추를 딴다. 챙 넓은 모자와 마스크로 무장하기가 무섭게 열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땀샘이 일제히 포문을 열자 어느새 온몸은 땀범벅이다. 병상의 수액처럼 이마에 맺힌 땀들이 두 눈을 타고 고추 위로 뚝뚝 떨어진다. 허나 계절의 조화를 어찌하랴. 입추 지나고 나니 어김없이 가을인가. 어디에선가 하늬바람이 불어온다. 땀방울이 점차 수그러들고 눈앞이 트이니 정신이 맑아진다. 온통 빨간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저 고추들의 행렬이 장관이다. 붉은 열기에 고무되어 가장 크고 튼실한 녀석에게 ‘싹둑’ 가위를 대
폭염입니다. 연일 36도를 오르내립니다.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습니다. 거기다 코로나 확진자 수는 이천 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백신 주사를 맞았음에도 돌파 감염을 걱정합니다. 안개가 낀 것처럼 불투명합니다. 무엇하나 속 시원한 것이 없습니다. 불안합니다. 업친데 덥친 격으로 절친한 친구의 아들이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가 들려옵니다. 좋은 대학 나와 대기업에 입사해서 아들딸 낳고 행복해하던 녀석이었는데, 회사 내 업무와 왕따를 견디지 못한 모양입니다. 졸지에 며느리와 손자손녀를 감당해야 하는 친구 부부의 얼굴이 슬프게 떠
고등학교 때 했던 무전여행이 내 삶에 지렛대가 됐다. 그때가 1천960년대 초였다. 그 무렵 학생들에게 무전여행이 유행했다. 난 그때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이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친구 두 명과 함께 세 명이 제주도로 무전여행을 가기로 했다. 출발하기로 한 날 함께 무전여행을 떠나기로 한 친구가 나오지 않았다. 연락할 방법이 없어 혼자 출발했다.기차도 배도 무전여행 중인 학생이라 하면 그냥 태워줬다. 그때만 해도 인심이 참 좋았다. 목포를 출발한 배 ‘화양호’가 밤새 항해 제주항에 도착했을 때는 아침 여섯 시 가까이 됐다. 배에서
두 노인이 있었다. ‘에핌’은 부유했고, ‘엘리사’는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았다. 절친인 두 사람은 엘리사의 권유로 함께 예루살렘 순례 여행을 떠난다. 에핌은 두고 온 집안일 걱정으로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엘리사는 집안일은 잊고 그저 기쁨에 차서 걸었다. 달포쯤 걸어 소아시아에 다다랐을 무렵, 끝내 가뭄과 흉작이 들었고, 엘리사는 목이 말랐다. “곧 뒤따라 가겠다”며 에핌을 먼저 보내고, 물 한 잔 얻어 마시기 위해 한 오두막으로 들어간 엘리사, 그곳에서 그는 가엾은 사람들을 보았다. 기근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노파와 아들 내외 그
코로나 2년차를 맞는 올해는 유난히도 비가 잦습니다. 새벽에 후두둑하는 소리에 눈을 뜨면 어김없이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창유리에 방울방울 맺혀있는 빗물을 보고 있노라면, 어둠컴컴하고 어려웠던 유년시절이 슬며시 머릿속을 채워오면서 짠한 기억들이 조곤조곤 떠옵니다.어느 해이던가, 오랜 장마 때문에 다 익은 보리들이 밭에 세워진 채 썩어가는 일이 있었더랬습니다. 덜 썩은 이삭이라도 얻어내려고 후줄근하게 비를 맞으며 보리 대궁이만 베어다 말려 보리죽으로 연명하던 때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를 보면 허허로워집니다. 그리고 내가 나
인류를 변화시킨 세 개의 사과란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세잔의 사과를 말한다. 이브의 사과가 유혹의 사과라면 뉴턴의 사과는 의문의 사과이고, 세잔의 사과는 고독의 사과이다. 이브의 사과가 종교를 의미한다면 뉴턴의 사과는 과학을 말하고 세잔의 사과는 예술을 음미한다. 이브의 사과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보여준다. 달콤한 맛의 치명적 유혹을 나타낸다. 창세기에 나오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는 신이 먹지 말라고 한 열매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된다. 금지된 과일을 먹음으로써 인간은 신의 능력인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얻었지만
스스로를 혹은 다른 사람을 응원하고 격려할 때 하는 말로 ‘아자’가 있다. 그 ‘아자’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인생은 여행이다. 인생의 여행은 태어나는 순간 시작된다. 인생여행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중간 중간 목적지가 이어지고 있다. 그 때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갖게 되는 성취감이 있다. 그 성취감을 위해 쉼 없이 간다. 가면서 중간 중간에 만난 사람, 일어나는 일, 떠 올리며 생각하는 일, 그리고 느낀 것들을 감상한다. 그 과정에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다. 힘들고 슬플 때도 있다. 그 때 아자가 필요하다. 그 말 아자를 외치
네댓 살 시절, 비몽사몽 중에 눈을 뜨면 부엌으로 통하는 문지방 틈새로 낙엽 타는 냄새가 코끝을 스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부스스 잠에서 깨어 부엌으로 갔다. 엄마는 그날도 마른 솔잎을 태우고 계셨다. 곁에 쪼그려 앉아 가만히 아궁이를 응시한다. 사나흘 전 함께 뒷산에서 긁어 온 솔가리들이 파란 불꽃을 내뿜으며 타닥타닥 잘도 탄다. 싸한 새벽 공기를 뒤로한 채 연기와 온기를 함께 마신다. 다 탄 재가 아궁이에 소복이 쌓이고 솥에서는 밥이 다 될 때까지 엄마는 말이 없다. 솥뚜껑 틈으로 찰진 밥물이 뚝뚝 떨어진다. 엄마는 이내 소맷자
세월이 참 빠릅니다. 10대는 시속 10㎞로 가고, 70대는 70㎞로 세월이 간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퇴임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언 9년여를 넘기고 10년을 채워갑니다. 정말 시간이 휘리릭 휘리릭 지나갑니다. 백수(白手)란 할 일 없이 놀고먹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인 줄은 누구나 압니다. 9년여를 놀고먹었으니 백수인 건 확실합니다. 누군가 우리 백수들을 ‘거안실업회장’이라고도 한다는데, 거실과 안방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랍니다. 어쩌면 힘들고 팍팍한 노후가 될 뻔 했는데, 그래도 소원(所願)하던 강변(江邊)에 살
10여 년 전, 목포시내 학교장을 하던 때 일이다. 그 때 나는 매일 아침 수업이 시작되기 전과 퇴근하기 전, 하루에 두 번씩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을 둘러보았다. 그것이 학교장 소임의 시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이달의 노래’라고 해서 학교방송을 통해 매월 새로운 노래를 가르쳤는데, 당시 내가 근무한 학교의 11월 노래는 ‘꼴찌를 위하여’였다. 3월에도 노래가 있었고, 지난 달에도 노래가 있었는데, 마치 이번 달에만 노래가 있는 것 마냥 11월에는 교정의 아침이 노랫소리로 가득했다. 1층에 있는 교실에서부터 4층
큰 바위 얼굴, 어쩜 그렇게 사람 얼굴처럼 생겼을까? 기이하다기 보다 신기다. 다시 말해, 보통과는 다르게 유별나고 이상하다기 보다 낯선 것이어서 새롭고 신선하다.1971년 처음 월출산을 찾았을 땐 큰 바위 얼굴이 지금처럼 그렇게 생기지 않았었는데 50여 년이 지나다 보니 많이 변했구려! 늙은 것 같지는 않은데? 바람·눈·비가 그것도 하루 이틀, 한 해 두 해가 아닌 46억년 그 긴긴 세월 뒤집어씌우고 스치고를 반복하여 만들어지고 있음인지 참으로 아름답다. 사람이 만들지 않고 자연에 의해 생겨난 큰 바위 얼굴, 지구상에 둘도 아닌
인체는 자연의 축소판이다. 산과 강이 하나로 어우러져 바다로 돌아오듯이, 동맥과 정맥도 상호 작용을 하며 심장으로 귀환한다. 울창한 산림이 산소와 에너지를 선물하듯 동맥은 우리에게 산소와 영양분을 배달해 준다. 강이 대지를 감싸 안으며 바다로 흘러가듯 정맥 또한 온몸의 탄소와 노폐물을 품고서 심장으로 모인다. 산과 강은 하나다. 어느 것이 먼저랄 것도 없다. ‘산천’이라 해도 좋고 ‘강산’이라 해도 좋다. 그저 한몸을 이루면 그만이다. 산과 강이 하나가 되지 못할 때 우리의 대지는 병들게 된다. 여태껏 성장과 개발의 논리에 묻혀 산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기대수명 자동 계산기라는 앱을 받았습니다. 이 앱은 미국의 보험회사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향후 기대수명에 대한 통계적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앱이었습니다. 사는 곳, 외가와 친가 조부모의 생존 연령, 학력, 경력, 소득 등을 다루는 개인적인 자료와 본인의 건강 여부를 묻는 건강 스타일에 대한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지난 3월 칼럼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늙어가는 길이 처음 가는 길이어서 그런지 앞일이 두렵고, 뒷일은 자꾸자꾸 뒤돌아보게 된다’는 구절이 또다시 가슴을 때립니다. 다행히 앱을 구동한 결과
제46대 미 대통령 집무실이 공개됐다. 트럼프가 떠나고 바이든이 들어오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짧은 5시간, 그런데도 참모들은 그 시간을 활용하여 바이든의 색깔을 유감없이 나타냈다. 영국 여왕이 선물했다는 결단의 책상은 그대로 놔둔 채 바이든 체형으로 의자를 바꾸고, 도배를 다시 했다. 벽에 걸어둔 노예제를 찬성한 제7대 대통령 엔드루 잭슨 초상화를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과학자 출신 정치가 벤저민 프랭클린 초상화로 교체하고, 장식장 장식물로는 트럼프 훈장 대신 바이든 가족사진으로 바꿨다. 5시간 만에 달라진 바이든 대통령 집무
내 부모는 늘 자기 능력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단돈 10원 남에게 빌리거나 물건을 외상으로 구매하지도 않고 사셨으며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살았다. 하지만 난 재화가 아닌 다른 한편으로는 남달리 많은 빚을 진 빚쟁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버지는 평생 금정 시골에서 사셨다. 그래서 자식들을 위해 도움이 될 만한 인맥이라고는 없었다. 그런 환경에서도 난 4개 부처 산하기관을 돌아다니며 공직생활을 했다. 그래서 난 돈보다 더 소중한 정신적 빚쟁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첫 공무원을 전
도시 생활을 접고 월출산 자락에 터 잡은 지 7년째, 아직도 ‘일반 놀이반’으로 마당을 가꾼다. 며칠 전부터는 앞마당 평탄 작업을 시작했다. 굴삭기를 동원하라는 시선들을 무릅쓰고 기꺼이 삽질을 택했다. 군대 시절 숱한 삽질의 추억들을 반추하며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갈 즈음, 무언가가 시야에 잡힌다. 6년 전 앞마당 흙 매립 당시, 작업자들과 함께 커피를 마셨는데, 그때 묻힌 일회용 커피 포장 조각들이 삽질에 힘입어 고개를 들고 씨익 웃고 있었다. 아, 묻는 것만이 절대 능사가 아니라는 준엄한 대지의 경고에 숙연해진다. 안 그래도 작
선배님들께서 들으면 가소로울 일이지만 나이가 들어가니 자꾸 생각이 많아집니다. 부쩍 어렸을 적 어울려 다니던 친구들이 생각나고, 한때 열정을 쏟아 부었던 교직을 함께 했던 동료들도 새록새록 생각납니다. 늙어가는 길이 처음 가는 길이어서 그런지 앞일이 두렵고, 뒷일은 자꾸자꾸 돌아보게 되나 봅니다.1970년 3월 덕진초교에 초임 발령을 받고, 2012년 2월 정년퇴직을 했으니 42년을 봉직, 서당개 3년이 아니라 42년 풍월을 읊은 셈이지요. 돌이켜 생각하니 내가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의미 있는 풍월을 읊다가 은퇴(隱退)한 것입니다
45여 년 전 일이다. 나는 월출산이 바라다 보이는 군서 구림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4학년을 담임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는 절대 빈곤의 시대를 겨우 벗어났고 학교는 그야말로 배움터로 학력 경쟁이 극심했다. 나는 한 아이도 빠짐없이 학력을 정착시키고야 말겠다는 오기에 가까운 마음으로 매시간 수업에 임했다. 수업시간 중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벌로 그 시간이 끝날 때까지 복도에 서 있도록 했고 그 시간이 끝나면 다음 수업에 참여토록 했다.마침, 그 날 한창 열강 중에 양해명이와 또 다른 아이가 지적을 받아 복도로 나갔다. 그
전근대 왕과 현대 대통령은 같은 통치자이지만 여러 가지로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도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왕조국가였다. 그렇다 보니 왕이 절대 권력자로 대대손손 이어져 왔다. 왕조국가의 특색 중 하나가 세습이었으며 왕의 말과 행동이 곧 법으로 어느 누구도 크게 반발하지 못했다. 그런 바탕에서 대부분 왕들이 주색을 일상으로 하고 신하들은 그 틈을 이용 우지좌지하며 부패에 만연돼 국민들의 삶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조선시대만 해도 건국 초기부터 왕실 내 부패가 하늘을 찌르듯 했다. 왕자들 간 세자자리를 놓고 피비린내를 풍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