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면서부터 부여받은 이름은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존재입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말이죠. 누군가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이름을 바꾸기도 합니다. 그만큼 이름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지의 이정표인 셈입니다.하루가 멀다하고 뉴스에 보도되는 각종 사건 사고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던 적이 있으신가요?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산불, 홍수,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 음주운전, 성폭행, 아동폭력 납치와 같은 비윤리적 행위 등으로 우리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는 요즘 안전·건강 그리고 예방은 우리 생활의 핵
고려인은 구소련 붕괴 이후 독립국가연합의 국가들에 거주하는 한민족이다. 이들이 사는 국가는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등 여러 곳이 있다. 약 50만 명의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다. 소련의 붕괴 이후 구소련지역에 동화되어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지난 8월 26일 봉오동, 청산리 전투를 이끈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1868~1943)의 유해가 카자흐스탄에서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우리 조상들의 가슴 아픈 슬픈 역사가 마음을 다시 아프게 해주었다.소련당국이 중일전쟁을 막기 위해서 1937년 러시아
셰익스피어는 가난한 집안의 소년가장이었습니다. 하루는 소를 잡는 도살 창을 찾아갔습니다.도살창 주인을 만나서 대뜸 여기서 일을 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주인은 아직 어려서 안 된다고 한마디로 거절했지요. 셰익스피어는 주인 바로 옆 상자에 보관해 두었던 칼을 단호하게 집어 들더니, 옆에 있던 소의 뿔을 잡고는 단칼에 소의 목을 찔렀습니다. 혼비백산한 주인은 그만 허락하고 말았습니다.2년쯤 지난 후였습니다. 자기 미래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 셰익스피어는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가족처럼 지냈던 주인에게
예전에 없던 코로나 19라는 전염병으로 온 세계가 경제적 위기를 맞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기상이변이 지구 전체에 미치는 영향도 심각하다.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생활고와 고용 불안상태가 거의 1년 반 동안 계속되고 있다. 1929년 세계 공황보다 심각한 상태다. 이를 보면서 한국농업의 농촌은 금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첫째, 인간의 생명과 관련 있는 것은 각 국가가 자급해야 한다.작년 1월 말경 일본 규슈의 세계농업유산 탐방여행 후 귀국길에 후쿠오카 공항에서 중국인들이 마스크를 대량 구입해서 귀국길에 오르는 것을 보고 이
30년간 재직했던 방송 기자직을 정년했다. 이어서 대학 정교수로 8년, 대학원 초빙교수로 5년을 강의했다. 대학에서 모두 13년간을 강의했다. 운이 좋아 또다시 중앙언론사 임원으로 3년 5개월을 합치면 모두 46년이 넘게 일한 셈이다. 이렇게 쉬지 않고 열정과 즐거움으로 일하다 보니 7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버렸다. 80의 나이가 눈앞에 다가왔다. 그러나 아직도 노인이 다 된 나이라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방송기자 땐 젊어서 현장을 뛰며 열심히 취재하고 인터뷰해 방송하면서 시간에 쫓기는 세월을 보냈다. 항상 긴장과 초조함이 잠재
오랜만에 어린 시절 고향 영암의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팔당댐 상류에 붕어찜을 잘하는 집이 있다며 함께 가잔다. 코로나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켜야 하니 4명까지만 갈 수 있다며 중앙보훈병원 앞 전철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상일동에 사는 내가 친구들을 태우고 퇴촌 팔당호 ‘마지막 어부’가 운영하는 붕어찜 전문식당으로 갔다.친구가 사전에 예약을 해두어서 곧바로 붕어찜이 식탁에 올라왔다. 낚시에서 33㎝ 이상 붕어를 낚으면 월척이라고 낙관을 하여 가보처럼 보관한다는데 정말 커다란 붕어였다. 이렇게 큰 붕어를 먹어볼 수 있다니! 모두
전남출신 농협동인 박영대 시인이 쓴 시 한 편을 읽었다. 내가 살아온 삶을 두고 쓴 시 같은 생각이 들어 몇 번을 읽고 또 읽어 밤이면 이 시를 암송하면서 잠이 들곤 했다. 그 시의 내용은 이렇다. 이 작은 빛으로/세상의 어둠을 다 밝힐 수는 없지만/길 안내는 할 수 있다는 생각에/내 생이 참 고맙다. 이 네 줄의 짧은 시가 계기가 되어 나는 단양 ‘아리산방’을 찾아 박영대 시인을 만나기 위해 7월 6일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했다. 아리산방은 박영대 동인이 퇴직 후에 마련한 책 읽고 글을 쓰는 단양 산촌의 보금자리 문학
지난 5월 23일 저녁 6시경, 자전거를 타고 구림천을 따라 죽정마을에서 구림마을 쪽으로 내려가는데 골목에서 승용차 한 대가 일단정지를 하지 않고 튀어나왔다. 차와 나는 동시에 급정거를 해서 접촉 사고는 면했지만 나는 넘어져서 다쳤다. 상대 운전자는 차에서 나와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잘 못했는가요?” “우리 둘다 급정거했어요” “그런데 아파서 못 일어나겠어요. 손 좀 잡아 주세요” “집에 데려다 줄까요?” “자전거가 있으니 그냥 밀고 갈께요”집에 가서 쉬는데 많이 아팠다. 다음날 한 시간 군내버스를 타고 목포한국병원을
요즘 은퇴한 스포츠 스타들이 각종 연예 프로에 출연해 우리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그 중에는 오히려 현역 때보다도 우리의 관심을 더 받는 스타도 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웃음은 대부분 현역시절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나는 그 중에서도 마라토너 이봉주에게 유독 관심이 간다. 잦은 출연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어색한 표정, 웃음너머 언뜻언뜻 보이는 어떤 진중함이 그의 현역시절의 삶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선수 시절 이봉주의 모습은 초라함 그 자체다. 쪼글쪼글한 얼굴, 덥수룩한 턱수염, 듬성듬성한 머리카락, 마른
영암신문 애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영암신문 창간 20주년을 영암군민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바른 언론문화 정착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으신 문배근 대표님과 임직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영암신문은 현장을 누비며 지역 소식들을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영암 지역을 대표하는 풀뿌리 언론으로 성장해 왔습니다.최근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영암신문은 각종 정보에 대한 신속한 보도와 지역현안에 비판과 합리적 대안 제시를 통해 지역민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매체로 자리매김 했습니
우리 지역 언론의 발전과 6만 영암군민 16만 향우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언제나 앞장서 주시는 영암신문의 창간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영암신문이 군민은 물론 전국의 향우들에게도 군의 소식을 생생히 전달하며 군을 대표하는 신문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문배근 대표님과 영암신문 임직원 여러분께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군의 행보가 더욱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군과 군민‧향우 사이의 소식을 전달해 주며 소통 창구가 되어줄 영암신문의 역할이 더없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앞으로도
영암신문이 지역민의 뜨거운 관심과 애정 속에 어느덧 창간 20주년을 맞이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군민들을 위한 정론지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다해오신 문배근 대표님과 임직원 여러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오늘의 신문은 내일의 역사라고 하듯이 신문 매체가 여전히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영암신문이 지역의 대표 언론으로서 정확한 정보와 다양한 소식들을 통하여 우리 영암군민들의 든든한 동반자이자 대변인이 되어주시길 당부 말씀드립니다.다시 한번, 영암
영암신문 창간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코로나19로 어려운 지역경제 여건에도 영암 발전을 위해 달려온 문배근 대표의 열정과 영암신문 임직원 여러분의 노고에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주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지역신문을 창간하고, 지역발전과 향토문화 창달에 앞장서 온 영암신문의 지난 20년은 영암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특히 마한역사를 비롯한 영암의 역사·문화에 대한 관심과 사랑, 관광 자원화를 위한 기록사업은 영암신문의 자랑입니다.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고 공정한 지역사회를 만들며, 주민이 주인 되는 진정한 지방정부 시대를
영암군민과 향우들의 든든한 벗, 영암신문의 창간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강산이 두 번 변하는 기간 동안 영암을 꿋꿋이 지키며 군민과 희노애락을 함께 해오신 문배근 대표님과 임직원 여러분의 노고에 깊은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지난해 12월 지방자치법이 개정되며 본격적인 지방분권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만큼 지역 언론의 책임과 역할이 더욱 막중해지고 있다 할 것입니다. 지역 현안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과 다양한 의견이 공유되는 공론의 장으로써 영암신문이 기능해 주시길 기대합니다.모두가 힘든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현 시기
영암신문 창간 20주년을 영암교육 가족 모두와 함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01년 창간이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역 곳곳의 따뜻한 소식을 전하고, 날카로운 비판으로 우리 지역의 건전한 여론을 형성해온 영암신문 임직원 여러분의 노고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도 지역주민과 소통하는 창구로써 지역민의 눈과 귀가 되어주고,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으로 군민의 신뢰와 사랑을 이어가기를 기원합니다.장차 영암의 미래 주역인 우리 학생들이 교육공동체의 참여와 협력을 통해 미래사회에 필요한 핵심 역량을 갖춘 민주시민으로
구정봉에 나타난 큰바위얼굴월출산의 풍경을 몇 년간 촬영하여 1981년 5월 3일부터 8일까지 남도예술회관에서 사진전을 열며 홍보를 시작한지 40년이 되었다. 월출산을 드나들며 문헌에 나타난 월출산의 현장을 답사하고 자료를 정리한 월출산가이드북을 다섯 차례 펴내면서 도립공원에서 국립공원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월출산과의 교감이 깊어졌고, 그 감동을 사진과 문학에 담아 세상에 알렸다. ‘푸르른 산내들 가슴에 안고/하늘을 우러른 봉우리 봉우리/그 모습 아름다워 구름도 쉬어 넘는/남녁의 꽃이로다 내 고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어 나라가 좌우충돌로 혼란한 틈을 노려 북한 괴뢰군은 선전포고 없이 탱크를 앞세우고 남침하여 우리의 국토를 붉은 피로 물들였다. 어언 71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1945년 8월 15일 36년간의 치욕적인 일제탄압은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원자폭탄 한 방에 끝이 나고 우리나라는 해방이 되었다. 2년 후, 1947년 제주 삼일절 기념행사장에서 말을 탄 경관이 어린이 한 명에게 부상을 입혀 도민이
우리나라가 G7 정상회의에 2년 연속 초대되었다. 게다가 자리배치에서도 G7회원국도 아닌 한국의 대통령이 의장국인 영국 다음 ‘상석’에 자리를 하였다는 것이 뉴스가 되고, ‘한국의 높아진 국격’에 관한 말들이 자주 나온다. 청와대의 공식 브리핑에서도 “한국의 G7 정상회의 참석은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의미” “G7은 선진국들 간의 협의체로 국제경제 및 정세, 글로벌 현안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회의에 책임있는 선도 선진국 중 하나로 참여하는 의미”라고 말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가 뒤흔들리고 있다. 자타가 모두 선진국이라던
얼마 전, 가수 태진아가 KBS 아침마당에 나와 ‘공수래(空手来) 공수거(空手去)’라는 새로 발표한 노래라며 혼신을 다해 부르는데 예전엔 못 느꼈던 철인들의 넉두리(?) 같은 느낌이 들었다.생각해보니 대중가요 즉 트롯의 열풍이 여타 방송사에서 경쟁적으로 노도와 같은 바람을 타고 있음은 고놈의 코로나19 때문에 이웃과 소통이 막히고 외롭고 답답한 백성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고마운 K트롯의 노랫말 속에 요즘 같은 장수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크게 가르침을 주는 지혜로운 교훈이 많이 있기 때문인가 싶다.세상의 모든 이들이 한번은 찾아
장학사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한 초등학교에서 영재학생 선발시험을 치러 채점 관리하는 밤늦은 시간이었다. 그때 지역청에서 주관해 방학동안 실시하는 영재교육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아주 높았고, 학부모들의 관심도가 컸기 때문에 학생선발부터 매우 까다로웠다. 그 담당 장학사로서는 출제, 평가, 채점, 발표, 프로그램 진행까지 신경이 많이 쓰이는 막중한 업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몸을 추슬러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어지러우며 기운이 빠졌다. 식은땀이 났다. 숨쉬기도 곤란하고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채점 업무를 처리하던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