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도 밝혔듯이 현재의 문산재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여러 차례의 변천 과정을 겪었다. 문산재의 모태는 1657년(효종 8년) 창녕인 태호공 조행립(1580~1663)이 성기동에 설립했던 성기서숙(聖起書塾)으로부터 출발한다. 태호공 셋째 아들인 안용당 조경찬(1610~1678) 부친의 뜻을 받들어 성기서재를 지극정성으로 관리하고 운영했지만,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정황상 강당을 이건할 필요가 생겼던 것으로 보인다. 죽정마을 20호에 소개했던 최필흥이 쓴 강당 상량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연주인 죽림공 현징을 중심으로 동리 사람들이 모두 힘
지난 3월 31일 왕인문화축제가 열렸던 행사장을 찾았다. 4년 만에 열린 행사인 데다 벚꽃이 만개하여 행사장을 찾는 영암주민 및 외부 관광객이 줄을 이었다. 행사를 준비하는 전 군민들의 역동적인 모습에 동아시아 문명의 허브 역할을 한 고대 마한인의 모습을 본 듯하였다. 행사장에서 많은 군민을 만났다. 한결같이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이하 센터)를 꼭 영암에 유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축제 개막행사도 센터 유치기원 행사였을 정도로 영암군·의회가 혼연일체가 되어 발 벗고 나섰다. 본란을 통해 이미 밝혔지만, 마한 전문가의 관점에
삼월 단상 - 꽃이 피어야 비로소 봄이 온다삼월은 봄의 문턱이다. 마당 주변에 심어놓은 봄꽃나무마다 꽃망울이 맺히더니 마침내 순서대로 꽃이 피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매화꽃이 피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매화 봉오리를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이것들이 필 듯 필 듯하면서 그저 머뭇거리기만 할 뿐 선뜻 꽃봉오리를 펼치지 않더니 경칩이 지나자 기어코 청아한 속살을 내보였다. 대숲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매화 향기가 실려 와 코끝이 향기롭다.매화는 추운 겨울을 지내야만 향기가 맑고 속되지 않은 법이다. 매섭고
최근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를 유치하려고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의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 대한민국 국호인 ‘한(韓)’의 기원이 되는 마한을 연구하는 총본산을 서로 자기 지역에 두고자 하는 것이니 이러한 움직임을 마한 연구자로서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관심이 평소에 진정성 있게 있었다면, 마한사가 교과서에서 거의 사라지는 운명에 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사실 전남도와 영암군이 이른바 ‘마한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그것을 입법화하려 노력할 때, 다른 광역자치단체에서는 ‘OO가야사’를
문수재 중수 상량문(文殊齋重修上梁文) 하은주 삼대로부터 함께 이를 배워 오래도록 현사를 우러름이 연관되는 바요. 시, 서, 예, 악과 학문을 숭상함에 우리 유림이 보고 배워야 할 곳이로다. 봄에는 현악기를 타고 여름에는 시를 읊으며 날로 나아가고 달로 자라네.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고 때로 익히고 배우니 기쁘지 아니하며, 선비들은 밝은 스승을 따라 물어 유익한 점 더욱 점점 이루었네. 공유 우리 고을은 인재의 고을이요. 문헌이 있는 바로 성기동으로부터 서당을 이곳으로 옮겨 세웠으니 흥했다 폐했다 무상하고 문사에 올라와 강론하니
영암군이 2023년을 혁신 원년으로 선포하고 군정 전반의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농식품 산업과 농산물 유통 분야에서도 이러한 의지를 담은 구체적인 실행과제를 발표하고 본격적인 추진에 들어갔다. 지난해 민선 8기 조직개편을 통해 신설된 농식품유통과는 영암군 농산물의 시장경쟁력 강화와 농가소득 증대를 목표로 농정 혁신의 중심에서 활동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모든 것을 가공하여 최고의 가치를 키우자!”라는 혁신 비전 아래 소비자 맞춤형 농식품 가공산업 육성, 농산물 유통구조 혁신, 지역자원 중심의 생산-유통체계 확립, 지역 먹
3월 30일 대한민국 대표축제인 왕인문화축제가 4일 동안 왕인박사유적지에서 열린다. 코로나 19로 인해 중단된 지 4년 만에 열린다. 이번 축제의 주제도 ‘K-레전드, 왕인의 귀환’이다. 왕인은 기원 후 400년 무렵 일본에 건너왔다고 일본 역사서에 나와 있다. 곧 왕인은 마한 시대 인물이다. 10년 넘게 연구한 왕인박사 연구업적을 모아 최근 출간된 ‘왕인박사’는 이러한 사실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그런데도 왕인을 마한인으로 보는 데 머뭇거리는 경우가 많다. ‘백제의 왕인’ 이미지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는 까닭이다. 마치 한국
1684년(숙종 10년)에 성기동에서 강당을 이곳 월대암 아래 문수암터로 이건하여 서당을 연 후로 수많은 선비들과 학동들이 이 문산재를 거쳐갔다. 그들이 남긴 시문들이 적지 않았으리라 짐작되지만 1830년에 불이 나 대부분 소실되고 말았다고 한다. 그래도 일부가 남아서 전해지고 있는데 그 중 몇 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들이 남긴 시문을 읽어보면 그 당시 문산서재의 풍경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삼연 김창흡의 시문곡 김수항의 셋째 아들인 삼연 선생도 문산재에 올라 감회를 밝힌 시를 읊었다.敬次 三淵先生 韻 (경차 삼연선생 운)(김
한 지역이나 문화가 세계유산에 지정되면 그것의 역사적 가치는 물론, 역사관광자원화하는 데 매우 유리하다. 여러 지역에서 그 지역의 문화유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려는 이유이다. 유네스코 한국위원장을 역임하며 한국의 사찰과 서원 등을 세계유산에 등재한 경험이 있는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은 마한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준비를 서두를 것을 필자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였다.영암군에서는 이미 마한역사문화연구회를 통해 이와 관련한 학술대회를 열어 이 지역의 마한유산 가치를 학술적으로 조명해보기도 하였다. 오늘은 앞서
■ 문산서재기와 문산재 8경함양인 박귀주(1715~?, 구림대동계원)가 1769년에 쓴 문산서재기에 ‘문수재’에서 마침내 ‘문산재’라는 재호를 사용하게 된 연유가 드러나 있다. 그는 이와 아울러 문산재에서 바라볼 수 있는 여덟 가지 경치를 읊은 시를 남겼다. 이번 호에는 박귀주(朴龜冑)가 쓴 문산서재기와 문산재 8경을 소개하고자 한다. 문산서재기(文山書齋記) 문산서재는 옛 문수암이다. 월출산 서쪽에 있으며 월출산에서 가장 기묘한 곳으로 일컫는 곳이 대암 즉 대 바위다. 대 바위로부터 그 아래로는 한 산이니 층암절벽으로 이루어졌다.
도선 탄생설화에 대한 의미지난 호에 도선과 주몽의 탄생설화가 비슷한 구성요소가 있음을 언급했다. 이처럼 고려의 전신인 고구려의 건국 시조인 주몽을 도선과 비교하려 한 것 자체가 도선이 고려 사회에서 차지한 위상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스님이 기존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 과정에서 풍수지리 이론을 끌어들여 왕건의 집권을 합리화시켜주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스님은 왕건과 대립하고 있던 후백제 출신이기 때문에 그가 갖는 상징성은 더욱 컸다.국초부터 고려는 국가 차원에서 스님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했을 가능성이
태호공 조행립이 1657년 성기동에 설치했던 성기서재는 안용당 조경찬 사후에 점차 쇠락의 길을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성기서재는 1684년 월대암 아래 문수암 옛터로 이건되었는데, 그 당시의 시문을 보면 연주인 죽림공 현징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1684년 강당을 문수암 터로 이건한 직후에 쓴 것으로 보이는 죽림공 현징의 시가 남아 있어 그 당시의 정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한편 문수서재는 경인년(1830)에 화재를 만나 큰 화를 당하여 임진년(1832)에 다시 지어졌다. 이에 대하여 자세한 내용을 기록한
■ 영암 달맞이공원 조성사업영암읍 서남리 영암읍 성터 일원에 올 연말까지 도비 50% 포함 63억 원을 투입하여 월출산의 달 상징물을 겸비한 경관 보도교, 전망대, 데크로드, 바닥분수, 광장조성 등 특색있는 공원으로 조성한다.빛 연출 콘텐츠를 설치하여 영암읍 랜드마크로 활용한다는 복안이다.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할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사업부지 내 읍성 120m 구간을 복원하여 주간과 야간 대 영암읍상가를 중심으로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 마련을 위해 올 연초부터 본격적인 공사가 추진되고 있다.■ 신활력 氣충전소,
앞서 언급했지만, 도선 스님은 당대의 평가보다 후대의 필요에 따라 훨씬 강조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그에 관한 설명이 모순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전승이 나오게 된 배경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러할 때 역사적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다. 도선 스님의 출계(出系)에 대해 “국사의 휘(諱)는 도선이요, 속성은 김 씨이며, 신라국 영암사람이다. 그 선대와 부조(父祖)는 역사에서 기록이 빠졌다. 혹은 태종 대왕의 서손이라고 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 설을 따를 때 스님은 영암지역으로 이주한 신라 중
문산재 연혁위의 문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현재의 문산재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여러 차례의 변천 과정을 겪었다. 문산재의 모태는 1657년(효종 8년) 창녕인 태호 공 조행립(1580~1663)이 성기동에 설립했던 성기서숙(聖起書塾)으로부터 출발한다. 지난 호(죽정마을 20)에 해주인 최필흥이 ‘우리 구림마을은 평소에 경치 좋은 물형이 있다고 칭해 왔어도 전고 때부터 홀로 글 닦는 곳이 없었으나, 옛날 우리 태호 조행립 공이 마음속으로 교훈할 뜻이 있어 간절하게 작흥하여 곡식, 재목을 모아 성기동에 처음으로 창건하고 선생을 모시고 학생
■ 공공디자인 진흥 및 가이드라인 수립영암군은 전국 최초로 시각적 이미지를 뛰어넘어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5감에 호소하는 군 정체성을 디자인에 담아 공공디자인 진흥계획을 수립하고 그 계획을 공공시설물에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연내 수립 완료할 계획이다. 이는 공공디자인이 지방자치의 또 다른 실현이고 정체성 홍보에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앞으로 조성하게 될 건축물이나 공공시설물 등에 공공디자인 결과물을 적용하여 외지인들이 영암의 공공시설물에 들어섰을 때 군 정체성을 확연히 느낄 수 있도록 밝고,
전라남도 ‘2월의 으뜸숲’으로 1만여 그루 동백나무 숲이 아름다운 ‘옥룡사 동백나무숲’이 선정되었다고 한다. 도선국사가 마지막 주석한 절로 유명한 옥룡사를 감싸고 있어 더 유명한 동백나무숲은 아름다운 경관을 인정받아 천연기념물(제48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숲이 있는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에 농촌체험과 도선국사 유적체험 등을 즐길 수 있는 ‘도선국사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영암출신 인물이 다른 지역에서 추앙을 받는 사례는 이례적이다. 필자는 작년 늦가을 도선국사의 창건설화가 있는 도갑사에서 열린 산사음악회를 다녀온 적이 있다. 깊
문산재 강당 상량문대범 이로부터 기술한다. 옛날 상서학교의 제도를 폐하고 행하지 않으므로 이미 교도와 훈회의 방법이 쇠퇴하여 드디어 끊기니 오직 시끄럽고 번잡하여 분화 속에 스스로 성취한 재목이 뽑혀 나온 이가 적었다.국가나 시골 마을까지도 유랑하고 포기한 부류가 많으니 옛 현철들의 세상을 개탄하는 민망한 풍속을 궁구하고 정중하게 경계를 정하여 방을 두어서 훈몽에 나아갔다.송나라 때 있었던 회암 주선생의 백록동서원에서의 강연과 같이 열고 고려 조정 때 문헌공 최충선생에 이르러 자하동에 구재를 설하였듯 계왕계래 후세에 성현의 도를 전
영암군은 영암읍 교동지구 도시개발사업을 비롯 도시재생 뉴딜사업,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등 정부의 각종 공모사업을 통한 국비 지원을 통해 지역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그동안의 사업추진 현황과 앞으로 추진계획을 부문별로 3회에 걸쳐 싣는다. ■ 영암읍 교동지구 도시개발사업영암읍 교동지구 도시개발사업은 영암읍 교동리 일원 18만 9천여㎡에 군비 388억 원이 투입된다. 2025년까지 문화시설과 스트리트몰 상가, 숙박시설 및 공원, 광장, 도로망 조성 등 작은 도시 하나가 새롭게 조성된다. 낙후된 영암읍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
월출산 억새밭에서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어찌 억새꽃 뿐이랴.너를 바라보는 내 마음도 막 흔들리더라.흔들리지 않으면중심을 잡을 수 없다.세상 모든 물상들은 흔들리며 중심을 잡나니그대, 마음껏 흔들려라.지나가는 산들바람에도거대한 태풍에도작은 한숨에도일단 흔들려라흔들려야 사는 것이다흔들려야 중심이 잡히고손님처럼, 가을처럼고요가 온다도선국사비문에 적혀있는 내용을 세 차례에 걸쳐 상세하게 소개했다. 월출산과 도갑사뿐만 아니라 우리 영암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인물 중 도선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구림마을은 도선